간호사 아우스빌둥 지원
간호사가 되겠다는 건 굳은 결심 같은 게 아니고 그냥 느낌이었다. 내 인생이 그렇게 흘러가리라는 느낌
그리고 내 느낌은 늘 그런 건 아니지만 잘 맞는 편이다.
한편으로는 당장 어디 병원에 가서 면접을 봤는데 떨어질 수도 있겠거니 싶었다. 그러면 그걸로 된 거다.
시도는 해 봤으니 후회는 없을 테고 다른 곳에 다른 길이 열릴 거라고 생각했다.
그림 일거리가 줄어 들어가자 처음에는 알바를 찾았다.
그런데 알바가 구해지지 않았다.
이 나이에 경력도 없이 일을 할 수 있는 곳이 독일에서도 역시 많지 않았으며
내가 서비스 직을 했다가 얼마 안 가서 그만두었다는 걸 이력서에 다 솔직히, 공백 없이,
빽빽하게 써놨으므로 고용주의 입장에서도 신뢰가 가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살아오며 꾸준히 한 일이란 그림을 그려온 것 정도였고
내가 중간에 그만두지 않고 달성한 일은 사실 미술 대학교를 졸업한 것 정도였다.
그것도 중간에 휴학할까, 그만둘까 고민한 순간도 많았으므로 졸업한 게 신기할 지경이다.
알바에 지원해도 연락이 오지 않거나, 연락이 와서 면접을 봐도 그 후로 연락이 오지 않는 일이 반복되었다.
이렇게 살 수는 없다고 어느 순간 생각했다.
구인 광고 페이지를 열었다 하면, 늘 보이는 간호사, 요양사 자리...
간호사가 되면 직장은 언제 어디서건 구할 수 있는 것 같았다.
그렇다 해도 40년 넘게 살며 간호사가 되겠다는 생각은 희미하게나마 해 본 적이 없었다.
아니, 있었어도 주사기와 바늘과 피를 무서워하는 나로서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이야, 하며 3초 만에 생각의 저편으로 치워버렸을 것이다.
그런데 왜, 어느 날 구인광고를 보다가 간호사가 되겠다고 생각한 건지 정확히 알 수가 없다.
그만큼 내가 궁지에 몰려서 뭐라도 해서 내 인생을 바꿔야겠다고 생각한 걸지도 모르겠다.
간호사가 되기 위한 길을 알아보았다.
독일에서는 대학교육을 통해서 아니라 아우스빌둥이라는 제도를 거쳐
간호사 면허를 취득한다는 것 정도는 막연히 알고 있었다.
아우스빌둥이란 직업학교를 다니며 이론을 배우고 업체나 회사에서 실습을 하며
3년 동안 하나의 직업을 배우는 제도이다.
회사에서 실습을 하면 일을 한 걸로 쳐주어서 소정의 월급도 나온다.
하지만 그 월급은 아주 적은 것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간호사 교육 중에는 실습생임에도 한 달에 1200유로(2026년 초 현재 환율로 한화 200만 원) 넘는 월급이 나오는 게 보통이고 그게 점점 오르고 있는 추세라고 한다.
그만큼 사람을 구하기 힘들다는 반증인 것 같기도 하다.
이 금액은 세전이므로 세후에는 받는 돈이 당연히 줄지만, 그래도 3년 동안 교육을 받으며 버틸 수 있을 듯한 현실적인 금액으로 느껴졌다.
우리 도시 외곽의 병원에서 간호사 교육생을 모집하는 광고를 발견했다. 이름도 몰랐던 병원이다. 아우스빌둥은 보통 가을에 시작하지만, 이 병원은 봄부터도 사람을 구하고 있었다.
병원 인사과에 전화를 했다. 궁금한 게 있으면 이제 전화부터 한다. 내가 10년이나 여기 살면서 현지화되었다는 걸 느끼는 순간이다.
인사 담당자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제가 간호 아우스빌둥에 지원하고 싶은데 3월부터 시작이 가능할까요?"라는 질문을 했더니
"지금 독일에 있나요?"라는 의외의 질문이 돌아왔다.
"네, 저는 여기 근처에 사는데요."라고 했더니 매우 반기는 기색으로
"그러면 문제없어요. 외국에서 직접 지원하는 경우 에는 행정 일로 시간이 걸리는데
이미 독일에 사는 거라면 아주 좋네요!" 이러는 거였다.
지원 동기서를 쓰고 필요한 서류, 이력서와 졸업증명서, 10년 전에 친 독일어 시험 성적표 등등을 병원 홈페이지 양식을 채워 업로드했다.
언제 연락이 올까 싶었는데 24시간 만에 이메일로 연락이 왔다. 일주일 후인 면접 날짜를 알려주며 말이다.
이렇게 순조롭게 흘러간다고? 의아할 정도였다. 면접날을 들뜬 마음으로 기다리니 시간은 잘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