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울증이 있는 사람의 고민
건강 검진을 받으러 평소에 다니는 가정 병원에 갔다.
간호학교에서 교육을 시작하려면 “이 사람은 건강상 문제가 없고 간호사로 일하는 데 지장이 없다” 는 의사의 확인서를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수많은 예방 접종을 맞았다는 증명서 역시 필요했다.
내가 신경 쓰였던 것은 의사의 확인서였다. 나는 과연 건강한가?
의사 선생님은 내 조울증 이력을 다 알고 있었다.
나는 약 8년 전부터 조울증 (양극성 장애) 약을 복용하고 있다. 양극성 장애는 조증이 심하고 우울 증상은 덜 한 1형, 그리고 조증이 비교적 가볍고 우울 증상이 깊은 2형으로 나눠진다. 나는 2형 조울증을 앓고 있다.
“그럼요, 간호사가 될 수 있고 말고요. 병이 있다고 해서 직업 면에서 차별을 받아서는 안 돼요.”
확신이 없었던 나에게 의사 선생님은 단호하게 이야기했다.
“아프면 언제건 병가를 내고 쉬면 돼요.”
아, 여기는 독일이구나. 다시 한번 느꼈다.
그래도 내게는 망설임이 있었다.
간호사로 일한다는 것은 짐작하건대, 여러 사람을 대해야 하는 환경, 돌발 상황, 육체적 정신적인 스트레스, 불규칙한 근무를 다 감당해야 한다는 것…
고도 민감성 성향인 데다 조울증까지 있는 내가 할 수 있을까? 조울증에는 규칙적인 생활 패턴과 수면 또한 중요하다.
늘 찾는 정신과 담당 선생님에게도 내가 간호사가 되고 싶다는 말을 했다. 그러자 선생님의 반응은 내 예상을 뛰어넘었다.
“조울증이 악화되는 것 같으면 건강상의 이유로 야근을 할 수 없다는 증명서를 써 줄게요.”
그런가. 그런 안전장치도 만들 수 있는 건가.
그렇지만 웬만하면 병이 있다는 이유로 물러서고 싶지는 않다. 일단 일을 시작한다면 다른 동료들이 하듯이 주어진 일을 주어진 만큼 소화하고 싶다는 마음이다.
이런저런 기대와 걱정이 뒤섞인 마음을 안은 채 간호학교와 병원에 여러 군데 지원을 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반응이 전부 미적지근했다.
어느 곳은 아예 답장조차 없었고, 어떤 곳은 서류가 부족하다며 반려되었다. 어떤 곳은 이미 자리가 다 찼다고 한다.
면접을 불러 준 곳은 처음 면접을 본 그 병원뿐이었다. 그나마도 거기 면접은 망친 것 같았다.
다시 처음부터 천천히 찾아볼까. 다시 생각해 볼까.
그러던 중 처음 면접 본 병원에서 합격 소식이 들려왔다. 너무나 의외였다.
오래 고민하지 않았다.
크리스마스 입원 중에 보았던 간호사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재빠르고 자연스럽게 모든 일을 소화하는 게 인상적이었다. 침대에서 한동안 꼼짝 못 했던 나를 도와준 그분들이 참 고마웠다.
나도 그렇게 될 수 있을까? 아마도…
별다른 근거도 없지만 간호사가 된다는 것은 내 인생에서 꼭 경험해봐야 하는 일, 거쳐가야 하는 관문인 것 같았다.
문득 물살을 타고 흘러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게 내 길인가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