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아우스빌둥 시작

간호학교 입학식

by 물사자

기숙사로 이사해 보낸 첫날은 의외로 편안했다.

밤에 빨리 잠이 든 건 이사로 몸이 지쳤던 까닭도 있겠지만 아침에 일어나보아도 새 방은 전혀 어색한 느낌을 풍기지 않았다. 비록 좁지만 나만의 둥지가 새로 생긴 것 같았다.


월요일 아침, 드디어 간호학교 입학식이다. 기숙사에서 학교까지 도보로 20분 거리였기에 느긋히 나가면 되겠지 하다가 너무 여유를 부리고 말았다. 급기야는 지각하지 않으려고 종종걸음을 빠르게 옮겨야만 했다.


아침 햇빛이 비스듬하게 들어오는 교실에는 이미 대부분의 학생들이 앉아 있었다. 아, 다들 성실하게도 미리미리 와 있구나. 속으로 잠시 감탄을 했다.


책상 위에는 신입생을 환영하는 선물이 놓여있었다. 병원의 로고가 그려진 에코백, 다이어리, 조그만 과자 봉지, 작은 열쇠고리. 가운데 놓인 엽서에는 “진심으로 환영합니다”라고 쓰여있었다. 정성이 느껴지는 선물을 보니 긴장했던 마음이 다소 녹는 듯했다.


8시가 되자 몇몇 선생님들이 교실에 입장했다. 그중에는 면접 때 만났던 간호학교 교장선생님도 있었다.

그런데 분위기가 내가 상상한 거랑 너무 달랐다!



지난 한 달 동안 문득 한밤중에 잠에서 깨면 ‘내가 간호사가 될 거라고? 정말로?’라는 생각이 치밀어 올랐다. 그만큼 겁이 났다. 완전히 미지의 세계였기에. 게다가 독일의 대형병원에 딸린 직업학교는 뭔가 차갑고 딱딱하고 까다로운 규율대로 움직여야 할 것만 같은… 막연히 두려운 이미지가 있었다.


그런데 선생님들의 분위기는 하나같이 화사했고 신입생들을 마주하게 된 게 기쁜 표정이었다. 면접을 보았을 때는 다소 엄격한 인상이었던 교장선생님 역시도 밝은 미소로 인사말을 했다.


우리 반 담임선생님, 연한 갈색 머리카락에 검은 원피스 차림을 한 크리스틴은 시작부터 의욕이 넘쳐 보였다. 살짝 긴장한 거 같기도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크리스틴 선생님은 신입 교사였다.




독일의 간호사 아우스빌둥은 3년 과정의 직업 교육이다. 3년 동안 2100시간을 이론 수업을 듣고, 2500시간 동안 병원과 시설 등에서 실습을 이수해야 한다.


내 인생에서 천이라는 시간 단위로 뭔가를 헤아려본 적이 있던가? 합쳐서 4600시간이라는 무게가 어마어마하게 느껴지지만 만약 3년 동안 차근히 밟아나간다면 어느새 내가 해냈구나,라고 말할 수 있는 날이 올까?


우리 신입생들을 위한 3년 계획은 이미 촘촘하게 짜여 있었다. 교육 일정표를 받아보니, 2029년에는 내가 간호사가 되는 것인가 하고 막연하게나마 현실감이 느껴졌다.




곧 다른 선생님들은 퇴장하고 담임 선생님 크리스틴, 부담임인 파울 그리고 우리, 스무 명 학생들이 교실에 남았다.


한동안 다소 사무적인 행정적인 안내와 교칙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하지만 파워포인트 자료는 꽤 정성 들여 만든 인상이 물씬 풍겼고 중간중간 학생들에게 자기소개를 할 기회를 주면서 너무 지루하지 않게 하려는 배려가 돋보였다.


오후가 되자 부담임 선생님 파울은 학생들을 이끌고 학교 건물을 안내해 주었다. 직업학교라고 하지만 병원의 별관의 일부가 학교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을 뿐, 독립된 건물이 있는 게 아니었다. 그리고 건물 내부는 가뜩이나 구조가 복잡한데 곳곳에 내부 공사까지 하고 있어서 통행로가 제한되어 있었고 길 찾는 데 애 먹겠다 싶었다.


특히 흡연이 허용된 뒷마당으로 가는 길은 미로 같아서 너무 외우기 힘들 것 같았다. 나는 담배를 피우지 않으므로 그냥 깨끗하게 기억에서 지워버렸다.


넓은 잔디밭에 다다르자 두 선생님은 우리에게 말했다.

“여기서 같이 단체 사진 찍어요.”

햇빛을 정면으로 받았기에 저마다 다소 찡그린 얼굴의 사진 한 장…


“안 되겠네, 다른 각도에서 다시 찍어요.” 크리스틴 선생님이 말했다.

그녀는 꽤 멋들어진 미러리스 카메라를 목에 걸고 있었다. 그리하여 햇빛을 등져서 다소 어둡게 찍히지 않았을까 예상되는 사진을 한 장 더 촬영했다.


만약 3년 후에 오늘의 이 사진을 본다면 어떤 느낌일까?


덧붙이자면 반에서 제일 나이 많은 것은 나로 밝혀졌다. 당연한 건가.

나이를 크게 신경 쓰는 건 아니지만 한편으로 갓 스무 살이 된 학생에 비해 내게 남겨진 시간은 적다.


그 시간을 얼마나 가치 있게 쓸 수 있을까?

나 잘할 수 있으려나?


입학식 날 받은 환영 선물


(글에 등장하는 인물 이름은 모두 가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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