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가 아닌 이사 날

by 물사자

타지에서 혼자라는 사실을 깨닫고 외로움을 느끼는 순간은 언제일까?

아플 때? 그것도 그렇다. 나를 돌봐주는 가족이 없다는 사실이 사무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에게는 무엇보다 이사하는 날이 그러했다.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날이기에 타국에 툭 떨어져 혼자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실감하는 게 이삿날이다. 이사 업체의 도움을 빌린다 해도 뭔가 쓸쓸한 구석이 있다.


그래도 이번 이사는 혼자가 아니었다.




이사를 하게 된 사정은 이러하다. 나는 2년째 시내 중심에 위치한 넓고 쾌적하고 마음에 드는 투룸 집에 살고 있었다. 작업실로 쓰는 방 따로, 잠을 자는 침실 따로 공간이 분리되어 있었으니 집에서 작업을 하는 내게는 최적의 조건이었다.


그런데 외주 일거리가 줄어들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내 지갑 사정보다 높은 월세를 내기에 급급했고 넓은 집을 따듯하게 유지하려면 난방비가 만만치 않았기에 겨울이 되자 춥게 살아야만 했다. 그렇게 돈 걱정을 하다 보니 이 집에 산다는 게 마음 편하지 않았다.


게다가 내게는 빚이 있다. 이렇게 솔직하게 밝히는 게 부끄러운 마음이 들어서 잠시 망설였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빚을 진다. 나 역시 그런 처지가 되었다.

매달 은행 빚을 분납하려면 돈을 아껴야 하니 줄여야 할 지출은 역시 월세였다.


간호 아우스빌둥에 합격하자 병원 근처의 집부터 알아보았다. 그런데 그 근방에는 혼자 살 만한 집 많지 않았고 허리띠 졸라매야 할 사정으로는 아주 저렴한 곳을 알아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런 매물은 나왔다 해도 번개같이 다른 이의 차지가 되었다.


병원에서 운영하는 기숙사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 희망의 빛 한 줄기를 발견한 듯했다. 부랴부랴 담당 부서에 전화를 하니 단 한 방이 남았다고 했다.

바로 그 주에 방을 보러 갔다. 방은 작았지만 개인 욕실이 딸려있는 게 마음에 들었다. 다만 주방은 공용 공간이 따로 사용해야 한다고 한다.


게다가 월세는 단돈 180유로. 직원 복지 차원인지 매우 저렴한 데다 수도, 전기, 난방비까지 모두 포함이었다. 앞뒤 생각할 틈도 없이 당장 계약하자고 했다. 나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시내의 정든 집을 떠난다는 사실이, 내가 경제적으로 실패해서 작은 기숙사 방으로 이사 가야 한다는 사실이 순간순간 뼈 아프게 다가오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감상에 빠져 있을 여유조차 없었다. 각종 행정 일을 처리해야 했고 이삿짐을 정리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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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는 애인의 차로 하기로 했다. 더 큰 차를 렌트하면 어떻겠냐고 하자 시내의 비좁은 거리에 주차하기 힘들 거 같다며 내키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애인의 SUV로 몇 번에 나눠서 왕복하며 짐을 옮기기로 했다.


한 가지 문제점은 작은 기숙사 방에 내 투룸에서 나오는 짐들이 다 들어가지 않는다는 거였다. 그림을 그리고 책과 가까이 사는 사람에게 미니멀리즘은 어렵다. 할 수 없이 작은 임대 창고를 빌리는 걸로 해결책을 찾았다.


이 많은 짐을 어떻게 다 운반하나 속으로 걱정이 많았는데 의외로 애인의 차에는 한 번에 많은 짐이 들어가서 창고에 한 번, 기숙사까지는 두 번 왕복을 했다.


“짐을 이렇게 포장하면 안 되지. 박스마다 물건을 가득 채워서 테이프로 단단히 밀봉을 해야 해.”

애인은 내 어설픈 포장 솜씨를 보고 틈틈이 잔소리를 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시간 동안은 묵묵히 나를 도와주었다. 당연히 본인이 해야 하는 일이라는 것처럼, 그걸 말로 설명할 필요조차 없는 것처럼.

하지만 누가 내게 당연히 해 줘야 하는 일이라는 건 이 세상에 없다. 애인이 참 고마웠다.


병원 기숙사로 향하는 길, 우리는 처음 보는 도로를 달렸다.

“이 근처는 와 본 적이 없네? 날씨가 따뜻해지면 여기 주변에 놀러 다니자.”

이 지역 토박이인 애인이 말했다.


이사를 마치자 아직 해가 짧은 2월 말의 저녁은 캄캄했다. 우리는 요리를 할 기운도 사라져서 케밥 집에 가서 적당한 음식을 테이크아웃 해서 먹었다.


‘우리’라는 단어가 주는 울림이 얼마나 좋은가. 새로운 출발을 응원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또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독일에 처음 왔던 무렵의 외로웠던 이사를 떠올리니 새삼 그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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