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의 마지막을 장식한 추억은 갑작스러운 입원과 수술이었다.
24일 저녁, 복통이 시작되었다. 저녁 8시, 먹은 것을 게워내고 저녁 9시에는 잠을 청했다. 그러나 이내 아픔 때문에 잠에서 깼다. 몸을 움직이자 놀랍도록 심한 통증이 느껴졌다. 함께 있던 애인에게 응급실에 가야겠다고 말하고 차를 타고 가장 가까운 종합병원으로 향했다.
다행히 크리스마스이브의 밤에도 응급실 접수처는 열려 있었다. 상황을 설명하니 먼저 채혈을 하고 소변검사를 했다. 본격 병원 체험 시작이었다.
시키는 대로 여성 건강 의학과까지 긴 복도를 지나 걸어갔다. 한동안 기다리니 젊다 못해 앳된 느낌의 의사가 왔다.
초음파를 했는데 이상이 없으니 집에 가라는 안내를 받았다. 집에 가서 진통제 먹고 따뜻한 물로 목욕이나 하라고.
진료실을 나와서 복도에서 기다리던 애인에게 그 이야기를 했다.
애인은 황당하다는 반응이었다. 여성 의학과에서 이상이 없으면 내과나 다른 과로 가야지 집에 가라는 게 무슨 소리냐고 한다. 애인 말이 맞는 것 같았다.
훗날 애인에게 참 고마웠던 게 이때 이 의사의 말을 듣고 고분고분 집에 갔더라면 죽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던 것이다.
다시 기다리니 내과, 외과 의사가 총 출동했다. 다 젊은 의사들이었다. 크리스마스 밤의 근무는 젊은 사람들 몫으로 돌아가는 것일까.
시간은 금세 흘러서 새벽 1시가 되고 2시가 되었다. 배를 다시 초음파로 봐주는데 누웠더니 어깨에 격통이 느껴져서 나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타이레놀을 수액으로 맞고 있었음에도 효과가 없어서 매우 강력한 진통제를 맞았다. 옥시코돈이라고 했다.
젊은 내과 의사는 어깨 통증이 쓸개가 원인이 아닌지 의심되고 수술을 해야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수술이라는 말을 들으니 머리가 멍해졌다. 나는 평생 몸에 칼을 대 본 적이 없었다.
초음파로 보니 복부에 물이 차 있다고 CT를 해야 한다고 말한다.
새벽 2시, CT에 동의한다는 서류에 사인을 하고 난생처음 이러한 검사를 받아 보았다. 검사실은 어둡고 차가웠다.
새벽 3시 넘어 애인은 집에 보내고 혼자 있던 내게 의사가 말했다. 이상하단다. 여성의학과 쪽 문제가 맞으니 다시 그쪽으로 가란다.
또다시 어둡고 긴 복도를 지나 아까 그 여성의학과 의사가 있는 방으로 갔다. 의사는 "당신이 아직도 병원에 남아있어야만 해서 미안해요. Es tut mir leid, dass Sie noch hier bleiben müssen."이라고 말했다.
다시 초음파를 했다. 젊은 의사는 고개를 갸우뚱하는 눈치였다. 그러면서 몇 번이고 미안하다고 말했다. 독일인들은 미안하단 말을 잘 안 하는데…
이번에는 더 높은 의사까지 왔다. 그는 내게 난소낭종이 파열된 것이라고 확실히 이야기를 해 주었다.
다음날 아침, 배정된 병실에 누워있는데 간호사가 와서 복강경 수술이 필요하니 준비하라는 말을 했다.
침대에 누운 채로 복도로, 엘리베이터로 밀려갔다.
수술실에 도착하자 언뜻 보아도 4명 이상의 의료진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집도의로 보이는 나이 지긋한 여성분은 속삭이듯 말했다. "무서워하지 말아요. 우리가 잘할게요. Haben Sie keine Angst. Wir passen uns gut auf Sie auf." 다정한 말투였다.
사실 내게 걱정이나 두려움 같은 건 없었다. 있었다 해도 육체적 고통, 통증이 너무 컸기에 수술로 이것이 나아진다면... 안심할 수 있는 기분이었다.
수술대에 올라갔다. 몸을 감싸는 따뜻하게 덥혀진 담요가 인상적이었다. 마스크가 씌워졌다. "일단 신선한 산소가 들어갈 거예요. 그러고 나서...." 거기까지 들었을 때 의식이 점점 흐려졌다. 다음에 이어진 말은 기억나지 않는다.
의식이 돌아오니 집중 병실이었다. 주변은 시끄러웠고 간호사, 의사들이 바쁘게 오가는 곳이었다.
내가 수술을 받았으며, 몸에 상처가 나 있으며 뭔가 이런저런 의료장치가 몸에 연결되어 있다는 게 느껴졌다.
어쩐지 눈물이 났다. 서럽거나 슬퍼서 나는 눈물이 아니었다.
모르는 사람들이 나를 살리려고 애써 줬다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고마워서 눈물이 났다.
눈물이 줄줄 흘렀지만 소매로 닦을 수가 없었다. 내 왼팔에는 수액이 연결되어 있었고 오른팔은 혈압을 재는 기계가 연결되어 있었다. 그래서 고개를 돌려가며 베갯잇으로 눈물을 닦았다.
다음 날 어느 의사가 와서 내 수술에 대해 설명해 주셨다. "복강 출혈이 1.3리터나 있었어요. 이런 경우는 매우 드문데요!" 라며 감탄하듯이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내가 피를 1,3리터나 잃었다고? 그런 것 치고는 내 상태가 크게 어지럽지도 않고 매우 멀쩡하게 느껴져서 신기했다. 수혈도 받지 않았다고 한다.
얼마 후 애인이 데리러 와 줘서 퇴원 절차를 밟았다. 움직일 때마다 수술자리가 아팠으나 천천히 걸음을 떼면 걸을 수는 있었다.
급하게 오느라 안경을 잊었기에 사흘 내내 안경 없이 지냈다.
안경 없이 본 병원 속 세상에서는 모든 것이 흐리멍덩하고 몽롱하게 보였다. 그 흐릿한 시선으로 보면서도 의료진들이 일하는 모습에 감탄을 했다.
어떻게 저렇게 프로페셔널하게, 차분하게, 착착 일을 할 수가 있는 걸까.
나도 간호사가 되면 저렇게 할 수 있을까?
하지만 애써 생각하지 않으려 했다. 확신이 없었기에…
그러던 어느 날 면접을 보러 간 병원으로부터 간호사 아우스빌둥의 합격 통지가 날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