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접을 가는 길은 멀었다.
집에서 조금 떨어진 기차역에 걸어가서 30분에 한 대밖에 다니지 않는 기차를 탔다. 그러고는 버스로 환승을 했다. 구글 지도를 보고 꽤 외곽이라는 것을 짐작했으니 직접 가 보니 생각보다 멀다고 느껴졌다.
버스에서 내리자 이건 소도시도 아니고 마을이라고 해야 할까. 쓸쓸한 느낌의 동네였다. 일찍 해가 저무는 겨울의 오후라서 더 그랬던 것 같다.
게다가 면접 장소인 간호학교는 다시 한동안 걸어가야 하는 위치에 있었다. 들판을 지나 언덕을 걸었다.
도착을 해서 안내 창구에 면접을 보러 왔다고 전하자, 잠시 기다리라며 종이와 펜을 내주었다.
인적사항을 쓰라는 건가, 하고 자세히 살펴보니 그건 시험문제였다.
“당신은 현재 공원에 있습니다. 자전거를 타다 넘어져 피를 흘리는 사람을 목격했습니다. 이 상황에서 무엇을 해야 할까요?”
“독일의 현 보건부 장관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다음 문장에서 맞춤법이 틀린 곳을 찾아내어 고치시오.”
“999 나누기 3은 몇입니까?”
“10000밀리미터는 몇 리터입니까?”
상식을 테스트하는 문제들이었다. 가끔은 이런 초등학생 수준의 질문을 하나 싶기도 했고 답을 모르겠는 것들도 있었다. 어쨌거나 검색 같은 건 하지 않고 성의껏 답을 적어 내려갔다.
그러고 있자니 나이가 지긋한 두 여자분이 오셨다.
한 분은 간호학교의 교장, 다른 한 분은 외국 학생들의 서포트를 해 주는 행정직원이라고 본인을 소개했다.
먼저 내 소개를 했다. 여기까지는 막힘 없이 말을 했고 분위기가 좋았다.
그러고 나서 교장 선생님은 내게 여기는 어떤 병원인지 아냐고 질문하셨다.
나는 약간 당황했다.
병원이... 뭐 하는 곳이냐니요. 나는 인터넷에서 읽은 병원에 대한 소개를 기억하려고 노력했으나 사실 자세히 읽지 않았던 거였다. 질문은 여기가 뭐에 특화된 병원인지 알고 왔냐는 얘기였다.
"재활치료요...?" 내가 머뭇거리며 대답하자,
"그렇지요. 재활치료도 하지만 여기는 의식이 없거나 상태가 중한 환자들을 집중치료하고 연명치료하는 데 중점을 둔 병원이에요."
교장 선생님은 사뭇 친절하게 설명해 주셨다.
하지만 나는 속으로 '왜 이런 것도 자세히 모른 채 왔을까!' 너무나 후회가 되었다.
그냥 우리나라의 세브란스 병원 같은 종합병원이겠거니, 하고 갔던 것이다.
그렇게 설명을 이어가는 교장님의 말투는 친절했지만 그 밑바닥에는 이런 것도 모르고 왔냐는 약간 한심하다는 마음이 깔려있었을 것 같다.
하지만 그 후에도 겉으로는 분위기 좋게 대화를 이어나갔다.
내가 과거에 복지시설에 일했던 경험도 이야기하고 아우스빌둥을 시작하면 어떤 시스템으로 수업을 하고 실습을 하냐, 그런 실용적인 이야기들을 했다.
그런데 이야기를 하다 보니 문제가 하나 더 있었다.
나는 여기서 당연히 아동 간호사 자격을 취득할 수 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여기에는 그 과정이 없다는 거였다.
나는 간호사 중에서도 어린이 간호사가 되고 싶다고 어렴풋이 생각하고 있었다.
이렇게 큰 병원인데 아동 간호사 과정이 아예 없다니, 나는 이것 또한 모르고 갔던 것이다.
"괜찮아요, 저는 어느 과정이건 열려있어요."
그 어색한 상황을 무마하려는 시도였을까. 나는 그렇게 웃는 얼굴로 대답했다.
집에 돌아오며, 아, 면접 망했구나 싶었다.
이 병원은 시내의 대학 병원보다도 월급을 많이 주는 편이었다. 다달이 500유로나 더.
그냥, 그래서 다른 곳보다 우선해서 지원한 거였다.
왕복으로 넉넉잡아 3시간 가까이 걸리는 길이었다. 집에 오니 피로가 몰려왔다.
이게 맞는 길일까? 단 한 번의 면접으로 내 마음에 옅은 그림자가 드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