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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y Aug 07. 2024

[번외] 너의 손 _ 1

네 아빠가 처음으로 화를 냈던 날. 

남편은 큰소리를 내는 사람이 아니다.

적어도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연애 6년 결혼생활 5년,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한 번도 내게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낸 적이 없었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랬다.

해야 할 말은 하지만 항상 이성적이고 차분하게 의사 전달을 하는 편이다.

나와는 정반대의 사람. 


언젠가 내가 물어본 적이 있다.

가장 가깝게 느낄 수 있는 사람, 가족 혹은 절친에게도 짜증내거나 화를 낸 적이 없었냐고.

나처럼 (친정) 엄마랑 싸우거나 짜증 내 본 적 있었냐고.

남편은 적어도 자기 기억 속에서 타인에게 그렇게 해 본 적은 없다고 말했다. 물론 30년 넘는 인생 한 번도 그러지 않았다는 건 아니지만, 어느 정도 나이를 먹은 뒤로는 '거의' 그런 적이 없다고 했다.

누군가에게 부정적인 감정을 표현하고 나면 마음이 불편해져서란다.


그런 남편이 최근 나에게 큰 소리를 낸 사건이 있었다.




아이가 태어나고 매 순간이 도전이고 과제이긴 하지만, 그중에서도 겁나는 도전은 바로 '손톱깎이'였다.

태어난 뒤로 쭉 손싸개를 해둬서 손을 볼 일도 잘 없었다. 병원에서 퇴원해서 조리원에서 2주, 정부 지원 산후도우미 서비스를 통해 만난 관리사님과 3주, 총 5주 동안 아이를 씻기는 일도 거의 내가 하지 않았기 때문에 손, 그리고 손톱을 자세히 볼 일 조차 없었다. 그런데 관리사님이 떠나고 난 뒤 바로 내 눈에 들어온 건 언제 자란지도 모를 날카로운 손톱이었다. 

저렇게 조그만 손톱이 이토록 날카로울 수 있다니!!

한시도 지체할 수가 없을 것 같아 유튜브와 블로그 등을 통해 신생아의 손톱깎이 방법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신생아의 손톱은 종이 같은 느낌이라 손톱깎이가 아니라 손톱가위로 자르되, 둥글게가 아닌 일자로 잘라내야 하고, 양 옆은 갈아주는 게 제일 좋은 방법이라고 했다. 

그렇게 글로 눈으로 배운 뒤 선물로 받아뒀던 새 손톱깎이 세트를 열어 조심스럽게 다듬기를 시도했다. 하지만 처음은 실패. 주먹을 쥔 아이의 손을 펼치기도 무서워서 결국은 실패하고 말았다.

다음 날, 아무리 생각해도 그냥 둘 수 없다는 생각에 다시 도전. 

두 번째는 나름대로 성공이었다. 정말 종잇장 같은 손톱이라 아이가 잘 때 조심스럽게 가위로 자를 수 있었다. 

열 손가락 중 절반을 성공적으로 자르고 난 뒤, 너무 자신만만했던 걸까. 

아이가 깨기 전에 얼른 끝내야 한다는 마음으로 속도를 내다 그만..

아이의 오른쪽 새끼손가락을, 작아도 제일 작은 그 새끼손가락을 가위 끝으로 잘라 버리고 만 것이다. 


잘 자고 있던 아이가 움찔.

그리고 눈을 번쩍 뜨더니, 

울음을 터뜨렸다.


그 와중에도 '설마...' 하고 부정하려 했지만, 

아이의 손가락에서는 피가 나기 시작했다.

깜짝 놀라 옆에 있던 가재수건으로 꾹 눌러 지혈을 시도했지만 

아이의 울음소리만 커졌고, 피는 멈추지 않았다. 


결국 아이와 함께 펑펑 울어버린 나.


주방에서 설거지를 하던 남편이 안방에 있던 약과 밴드를 가져다줬지만 밴드와 약을 손에 쥐고도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남편이 그런 날 보며 소리쳤다. 


"울고만 있으면 어떡해! 얼른 약 발라줘야지!!"


그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든 나는 약을 바르고 밴드를 붙여주었다. 다행히도 피는 곧 멎었고, 아이의 울음도 이내 잦아들다 다시 잠이 들었다. 




잠든 아이의 얼굴을 보며 나 역시 마음이 조금씩 진정되었고, 그러자 문득, 큰소리를 낸 남편에게 슬슬 화가 나기 시작했다. 

내가 울고 있으면 본인이 아이 손에 약도 발라주고 밴드도 붙여주면 되는 건데!!! 왜 나한테 화를 낸 거지???


그날 밤, 아이가 완전히 밤잠에 들고 남편과 단 둘이 남은 시간. 한참을 남편의 얼굴을 째려보다 물었다.


"어떻게 나한테 그렇게 화를 낼 수가 있어?"


그러자 남편의 대답은 뜻밖에도...


"나도 너무 당황해서....... 미안..."




맞다.

나만 엄마가 처음인 게 아니라,

남편도 아빠는 처음이다.


그 사실을 잊고 살았던 나는 매번 혼자 힘들다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그도, 분명 나처럼, 매 순간이 도전이고 두려움이였을거란 생각을 하자 오히려 처음으로 큰소리를 낸 것이 반갑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우리, 함께,

초보 엄마, 아빠임을, 인정하고, 

함께 으쌰- 하고 힘을 내어 잘 키워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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