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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박 Jul 03. 2018

여동생이 쓰는 편지

영화 <오션스 8>, 나도 오빠만큼 하지?


 쿨한 여자도 나오고, 사람을 잘 다루는 리더도 나온다. 흑인도 나오고, 동양인도 나온다. 물론 모두 여자다. 하지만 이 사실이 <오션스 8>의 전부가 되면 안 된다. 일단 케이퍼 무비인 만큼 재미가 있어야 할 것. 과연 <오션스 8>은 '뜨거운 감자의 숲'을 헤쳐 들어가 재미라는 성공을 거뒀을까?






보석, 돈, 그리고...

 욕심 많은 뉴욕의 8인들이 까르띠에의 목걸이를 훔치기 위해 뭉친다. 손 씻은 사람도 단박에 합류하게 만들어버리는 꽤나 높은 금액. 1천5백억 원 상당, 50년 동안 금고에 갇혀있느라 빛을 보지 못한 이 엄청난 다이아몬드 뭉치를 잘 훔칠 수 있을까? 물론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주인공들이 무사히 목걸이를 훔치기를 바란다. 하지만 인물들의 대화나 각자의 능력을 발휘해 난관을 헤쳐나가는 모양새가 썩 쿨하지 않다.


 저 여자들이 돈을 보고 모였다고 하지만, 리더 격인 데비에게는 다른 꿍꿍이가 있어 보인다. 그런데 그 숨은 목적이 오빠 '대니 오션'이 이미 써먹었던 반전이라면 그것은 유치한 감정 놀음이 돼버릴 뿐, 어떠한 의미도 갖지 못하게 된다. 하지만 제작진이 그걸 해냈다. 데비의 큰 그림을 별 것 아니게 만들었다. 마지막에 나오는 반전도 그다지 놀랍지 않다. 너무 쿨해지려고 하면 결국 360도 돌아 제자리가 되기 마련이다. 뭐든 적당히 해야 쿨하다.

 

 목걸이를 훔치고, 세상 부러울 것 없는 돈을 가지게 된 그녀들. 그 돈으로 뭘 할까? 누군가는 오토바이를 타고, 누구는 감독이 되고, 누구는 좋은 집을 샀다. 그것은 돈이 있으면 좀 더 편하게 이룰 수 있는 것들이지, 그녀들이 평생 못할 일들은 아니었다. 어쩌면 이 도둑들에게는 돈보다는 도둑질하는 그 자체가 더 쾌감을 느끼게 하는 '목적'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돈과 그로 인한 자본주의로부터의 자유는 부상일뿐.








볼거리를 볼 권리

  여성이 떼로 나오는 영화를 볼 때, 우리가 은연중에 기대하는 장면들이 있다. 영화 <여배우들>은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기싸움하고, 더 말라보이고 싶어 하고, 험담을 한다. <오션스 8>에서는 다프네 클루거를 연기한 앤 해서웨이가 그런 기대를 채워주는 듯하다.

 그게 아니라면, 전시된 보석들과 마네킹들의 고전 의상들이 볼거리가 돼주어야 하는데... 글쎄. 별로 감흥이 없다. 50년 동안 금고에서 잠자고 있다던 문제의 목걸이도 꽤나 쉽게 실물을 볼 수 있었고, 목걸이를 훔치는 과정도 너무 쉬웠으니, 가지게 되어도 별로 흥미롭지가 않다.

 하지만 이 영화의 진정한 볼거리는 여성들의 기싸움이나 화려한 보석들이 아닌, 짜릿한 도둑질이어야 할 텐데. 이 영화는 이도 저도 아니게 됐다. 도둑질이 짜릿하지 않고, 속여야 하는 대상들도 너무 순진하다. 그러니까 그 어느 것 하나 기대를 충족시켜주지 못하는 것이다.

 "남자가 끼면 문제가 복잡해져"같은 대사 하나로 모든 걸 퉁칠 수 없다. 일단 영화가 재밌어야 저런 대사도 멋있게 보이지!







여동생이 오빠에게 쓰는 편지

 오션스 가문에 도둑의 피가 흐른다. 피할 수 없으니, 즐기기로 한 오션스 남매. 오빠인 대니 오션의 뒤를 이어, 데비 오션도 한 탕 성공한다. 데비는 오빠의 그늘을 좋아했을까, 싫어했을까. 출소한 후 그리고 도둑질에 성공한 후 찾은 게 오빠의 묘지인걸 보면, 오빠를 꽤나 좋아했겠지. 이 영화는 여동생이 오빠에게 보내는 사랑의 편지이자 도전장일지도 모른다. 나도 오빠만큼 하지? 

 그러니까 다시 말하면, <오션스 일레븐>에게 보내는 <오션스 8>의 존경의 오마주이자 당당한 도전장인 것. 그리고 이 영화를 볼 세계의 수많은 소녀들에게 보내는 격려인 것이다. 그 의미는 좋지만, 아쉽게도 이번에는 오빠의 손을 들어줘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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