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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연우 Nov 12. 2021

두근두근 검진 결과 통보

11월, 어느 하루는 긴장되고 두근댄다. 평정심으로 다스리는 잔잔하고 평화로운 물결 위에 돌멩이 하나 툭 던져진 듯 파동이 인다. 납덩이를 매달아 무거운 내 심장이 가볍게 요동친다. 하얀 서류봉투를 받아 들고서.     

한해 막바지에 이르러 뭐 잘못 산 건 아닐까?


식생활, 운동, 라이프 스타일, 마음가짐까지도 되돌아보게 만든다.

통렬히 뒤돌아보게 만드는 반성의 힘, 그건 몇 장의 영상 사진과 실험실에서 살펴보는 내 몸에 들어있는 체액 분석이다. 내가 무엇을 먹고, 얼마나 땀을 흘리고, 바지런히 관절을 움직이고, 숨을 헐떡거리며 폐활량을 가동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지표들이 엑스레이를 투시하듯 고스란히 드러나는 결과를 통보받는 날.

    

말 그대로 통보이다.

내 감정이 번거롭게 가미될 필요가 없는, 그냥 읽고서 접수하면 되는 사무적 통지 사항.

그런데 왜 심장이 떨리는 걸까.

혹 질병이 내 몸에 집을 짓고 있는 건 아닌지 긴장감이 여울목 바위에 부딪는 물살같이 일렁인다. 자연스런 흐름이 자정작용하듯이 흘러온 대로 흘러가면 순탄하지 않겠나. 다만 나이 들어가니까 이전에 안 먹던 비타민을 챙겨 먹는다.

    

일주일 전 사물함 앞에서 검진 맞춤복으로 갈아입었다. 똑같이 생긴 옷을 입는 그 순간부터 개성은 몰개성이 되고 피검자가 되어 순서를 기다린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두꺼운 폴리 소재 옷으로 바뀌어 덜 춥게 됐다는 것, 스마트폰 앱으로 검진 순서와 마침표를 자동 기록해주는 것.     


예비된 환자 같은 이 느낌이 싫다. 그나마 북적이지 않아서 여유롭다. 오만한 검진자는 위내시경 맘모그래피 구강검진을 목록에서 미리 제외한다. 내 몸은 내가 잘 안다고 자부한다. 가벼운 속 쓰림은 위염이 있을 테고, 소화불량은 없으니 괜찮을 것이다. 고선량 방사선 투과도 거부한다. 내 몸 내가 잘 아니까. 채혈하는 팔꿈치 안쪽 정맥이 깊숙이 숨어있다. 남들 파랗게 돋은 혈관이 내게는 안 보인다. 고무줄 묶은 주먹을 쥐락펴락 한참을 용쓰고 찾아낸다.      


이번에는 따스한 옷 덕을 봤다. 혈관이 이완되어 내가 정확히 가리키는 지점에 주삿바늘을 찌르자 피가 단번에 주사기로 흘러간다. 미숙한 사람을 만나면 몇 번이고 주삿바늘을 쑤시는 수모를 안 겪어서 다행이다. 한 시간 만에 검진이 모두 끝났다. 내 개성을 고스란히 간직한 내 옷을 입게 되어 마음이 편안해진다. 로비 의자에 파묻혀 아직 끝나지 않은 남편을 기다린다. 프로포폴 마취에서 막 깨어나 가수면 상태에 빠진 사람들이 주위에 여럿 있다.      


주사 한 방에 정신줄을 놓게 되는 병원은 막강한 인체 실험실 같다. 이 공간에선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똑같은 옷을 입고 육체적 진단과 치료만 수행된다. 평등한 곳이다. 정신의 밀도와 함량 및 구조를 살펴보는 검사는 아직 없으니 비정신적 장소이다. 다만 뇌의 노화를 추정하는 영상은 살펴볼 수 있다. 병리적 소견이 아닌 다음에야 건강한 정신이 담긴 사진을 찍어주는 기술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건강한 정신은 무엇으로 알 수 있을까. 말과 행위를 보면 안다. 그 사람이 구사하는  마음씨를 보면 알게 된다. 따스한 사람인지, 냉혹한 사람인지, 얼마만큼 이기적인지 말과 행동에 묻어난다.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사람들은 저마다 이기적이다. 내가 있어야 남도 있는 세상이다. 내가 살아야 남도 살리는 수가 있으니까. 그런데 말이다. 미력하나마 할 수 있음에도 안 하는 사람들이 많다. 부모에게 향하는 효, 길을 가다 어려운 사람을 만날 때, 저 멀리 아프리카 아이들에게도.     


내 집 냉장고에서 남아돌다 쓰레기로 버려지는 음식을 볼 때마다 미안한 마음 든다. 지구촌 여기선 버려지고, 어느 궁핍한 지역에선 못 먹어 아사하는 이 불공평. 하느님과 부처님도 해결 못 한다. 인류애를 실천하는 사람들이 조금씩 해결할 수 있다. 요즘 사람들은 너무 많이 먹어서 자기 몸에 병을 만든다. 높은 BMI 지수(체질량지수), 고혈압, 당뇨, 고콜레스테롤혈증, 요산이 쌓이는 통풍, 심혈관계 질환 등등.     


실내생활이 늘면서 확찐자가 늘었다고 한다. 손가락 터치 한 번에 문 앞 배달되는 음식의 유혹은 얼마나 집요한가. 음식이 사육하는 실내생활이 감옥 아닌 감옥이 돼버렸다. 나는 철이 덜 들었다. 정신에 상주하는 철은 들었는데 몸에 철(Fe)이 덜 든 빈혈이다. 지하 광산에 들어간 카나리아처럼 산소 결핍을 남들보다 먼저 알아챈다. 컨디션이 안 좋은 날 사람들 북적이는 영화관에 들어가면 계속해서 산소를 달라는 신호, 하품을 한다.      

육식을 안 좋아한다고 고백하였다. 짐승의 생명을 거두어 마련한 살덩이가 마뜩잖다.

그래서 이 모양인가. 검진 결과는 계속 빈혈을 경고하였다.

내 몸을 잘 살리기 위하여 어쩔 수 없이 한우를 사러 가야겠다.      


검진이 끝나고 나면 병원 근처 올림픽 공원으로 간다. 필수 코스이다. 거기서 체내에 남아있는 프로포폴 성분을 신선한 공기를 마시면서 배출하고 정신을 차린다. 몽촌토성 유적이 발굴되는 언덕이 몽글몽글 곡선을 그리는 그곳. 언덕과 나지막한 동산을 따라서 걸음을 옮기면 삐까번쩍 도읍지 서울이 저만치 볼품없이 밀려나고 오동나무 패밀리가 사는 천혜의 요새는 꿈을 꾸듯 몽환적이다. 몇 번을 다녀갔지만 이전에 못 본 묘역을 보았다.      


충헌공 김구 묘역이 남향 햇빛을 받으며 동산 위에 자리 잡고 있었다. 조선 숙종 때 우의정을 지낸 분으로 노론과 소론의 대립을 완화하려고 노력하였고, 노산군(단종)의 복위를 주장하여 숙종이 노산군의 왕위를 추복하게 하고, 노산군의 비인 정순왕후 묘를 능으로 추봉하게 하였다. 불교와 도교에 대해 깊이 연구하였으며, 필법이 힘차고 문장이 간결하였다 전해진다.

     

생전에 선업(善業)을 두텁게 지어 사후에도 저리 복 받는 걸까.

원불교대사전에는 몸·입·뜻으로 짓게 되는 열 가지 선한 업을 십선계(十善戒)·십선도(十善道)라 하였다.

다음과 같다.     


- 살생을 하지 않는 것

- 도둑질을 하지 않는 것

- 음행을 하지 않는 것

-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

- 꾸미는 말을 하지 않는 것

- 험담을 하지 않는 것

- 이간질하지 않는 것

- 탐욕을 내지 않는 것

- 화를 내지 않는 것

- 삿된 견해를 갖지 않는 것    

 

반대로 행하면 악업(惡業)이 되는 것이다.

사람들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에 사철 햇빛의 영광 속에 강직한 소나무들 호위받으며 조선 왕릉 부럽지 않은 사랑을 받고 있다. 그분의 후손들이 얼마나 정성 들여 보살필지 짐작되었다.      


언덕을 내려오는 길에 유적 발굴 현장 펜스를 타고 피어난 나팔꽃들이 줄 타 오른 창문에 기대어 일찍 찾아온 추위를 원망하는 기색이다. 오각형 얇은 꽃잎 입술이 부르텄다. 별 무늬를 또렷이 간직한 꽃들은 나팔을 불다가 지쳐버렸다. 이제 그만 오르렴. 새벽 기상 쨍그랑 깨어질 하늘이 아니야.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살아왔잖아. 네 생애는 한 편의 시가 든 시듦, 안녕.




햇빛을 쬐는 수많은 꽃들 중에 이 꽃이 눈에 확 들어왔다, 창문에 기대어 바깥 풍경을 내다보는 시들어가는 여인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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