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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연우 Mar 06. 2022

울진 산불

손가락이 아프다

울진에 큰 산불이 났다. 시뻘건 산불이 고향 산천을 집어삼키는 모습 뉴스로만 전해 보면서 내 부엌 수돗물이라도 양동이에 받아서 화재현장에 들이붓고 싶은 심정이다. 최초 발화지점을 지도로 살펴보니 상경할 때 7번 국도 죽변을 앞두고 좌회전해서 36번 국도 접어든 우측 지점에 위치해 있다.      


교통량이 많은 그곳 도롯가에 

‘산불 조심 기간’ ‘산불 집중단속’ ‘당신이 버린 담배꽁초 불씨가 된다’ 

‘이곳은 금강송 보호구역입니다. 담배를 피거나 던지면 무기징역에 처합니다.’

이런 경고 문구 플래카드가 내걸려있긴 했던 걸까? 과태료를 부과할 수 없는 이유는 한번 불이 붙으면 천문학적 피해 규모를 개인이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울울창창 송림이 우거져 자자손손 물려주는, 우리의 보배 국유림이 펼쳐진 그 산자락에 말이다. 울진(蔚珍)의 울(蔚)은 풀이름, 아름답다, 숲, 성하다, 초목이 우거진 모양을 뜻하며 진(珍)은 보배이다. 아름다운 숲을 간직한 보배라는 지명이 예부터 전해 내려왔다.      


6일 오전 8시 기준 산불 영향 구역은 1만 2317ha, 축구장 1만 7250개 면적이라고 한다. 여기에 주택 창고를 포함한 시설물 388곳이 불에 타버렸다. 평생 터전을 잡고 살던 집, 기와지붕이 거북 등껍질처럼 땅바닥에 송두리째 내려앉은 모습을 망연자실 바라보는 한 노모의 뒷모습이 가슴 아프다. 가서 손이라도 맞잡아드리고 싶다. 누구의 잘못으로 이런 끔찍한 벌을 받아야만 하나.     


산불은 금강송 군락지 500m 근처까지 번진 상황이라고 한다. 소광리는 2247ha 면적에 수령 200년이 넘은 노송이 8만 그루 자라고 있다. 군부대 인력도 투입돼 진압에 나서고 있다는데 인원을 더 투입해서라도 오늘 내로 주불, 잔불까지 잡았으면 한다. 속이 새카맣게 타들어 갈 지역 주민들을 봐서라도 국가 역량을 총동원했으면 한다. 먼 불구경이 아닌 서울 시내 남산 관악산 삼각산 북한산 도봉산이 동시다발 불에 탄다고 가정해보면 실감 날 것이다. 울진 금강송은 경복궁 짓는 재목으로 쓰였다.   

   

잿더미로 변한 내 고향의 산을 지금으로선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사시사철 언제라도 생명력 넘치는 생생한 초록색을 지키며 꿋꿋하게 서 있던 소나무들 아닌가. 낙엽 활엽 교목 앙상한 강원도 산을 지나 소백산 자락을 지나 고향에 다가가면 한겨울에도 변치 않는 상록수 소나무들이 부모님처럼 옛 친구처럼 반겨주었다. 그 품에 안겨 언제나 안도했었다. 

“드디어 고향에 당도했구나!”     


불영계곡 바위 절벽 아찔하게 걸터앉은 소나무들은 키는 작아도 흐트러짐 없이 의연하다. 어떤 난관에도 굴복하지 않고 살아가는 그들을 바라보면 험난한 인생 여정을 어찌 살아가야 하는지 모범답안을 얻게 된다. 자신이 있어야 할 곳에 자리를 지키고 살아가는 일은, 인내를 가지고 역경을 극복하며 다정한 햇빛과 바람을 사랑하면서  빗물을 머금어 뿌리내리는 것. 곁눈질한다거나 비교는 금물. 나에게 약간의 인내심이 있다면 저 훌륭한 소나무들에게 배운 걸 테다.      


긴 협곡을 벗어나면 7번 국도와 나란히 달리는 파란 바다를 마주하면서 내 눈가에 얹혔던 모든 시름을 날려버린다. 푸른 소나무와 동해는 내 혼을 굽이치는 줄기세포(Stem cell), 솔바람 소리 파도 소리 내 몸 어딘가에 언제라도 들려오는 비밀 통로가 있음을 고백한다.     


맑고 푸른 소나무와 동해는 내 고향의 자랑거리, 나아가 우리 대한민국의 아름다운 자연을 수식하는 으뜸이라 자부하는 찬란한 춘삼월 새봄을 내미는 솔순들의 본격적인 행진을 앞두고 믿기지 않는 화마가 강풍을 불쏘시개 삼아 광활한 솔숲을 제집 아궁이처럼 태우다니…… 화상 입은 손가락처럼 욱신거린다. 도대체 어디가 얼마나 타들어 간 걸까. 벌건 민둥산에 어린 소나무를 심어서 그만큼 키우자면 얼마나 긴 세월이 필요하며, 아름다운 솔숲을 홀랑 잿더미로 태워버린 변명을 후손들에게 뭐라 할 건가?     


십여 년 전 여름휴가 때 아이들을 데리고 금강송 군락지에 간 적이 있다. 옛날 보부상들이 미역과 소금을 지고 내륙으로 다니던 십이령 고갯길도 근처에 있는 곳이다. 귀족의 상징, 하늘과 인간을 이어주는 보석, 신비로운 보랏빛 2월 탄생석 자수정 광산을 품은 그 골짜기에 접어들자 저절로 행복 호르몬 세로토닌이 펑펑 샘솟았다. 아름드리 소나무를 안고 교감하며 환히 웃는 사진 모습에는 순간의 해탈이 담긴 ‘뒤센의 미소’가 담겨 있었다. 거울을 보고 아무리 연습해도 이 미소를 지을 수가 없다. 오직 몇백 년 소나무의 품에 안겨야만 나오는 천연 미소가 그토록 행복하게 만들어주었다. 화마가 제발 그 근처에 얼씬도 하지 말기를!     


겨울철 소나무 아래 떨어진 솔가리는 화력이 좋아서 아궁이 군불 지필 때 먼저 불길을 열어주었다. 이번 겨울 가뭄은 유독 심했다. 바싹 마른 솔숲에 우연히 떨어진 불씨 한 점이 온 산을 태우고 걷잡을 수 없이 번진 불길 천재지변이라고는 여겨지지 않는다. 강풍주의보가 내려졌어도 울진에는 이렇게 끔찍한 대형 산불이 일어난 적 없었다. 염분과 수분기 가득 머금은 해풍이 이런 못된 장난질을 하진 않을 테니까. 울진의 산들은 바람이 심호흡하고 거칠게 넘어가는 고산준령이 없다. 그저 나지막한 산들이 일출을 열어주었다.    

 

이 글을 쓰는 창문 너머 소나무들이 바람에 솔깃 솔깃 솔잎 귀를 기울인다. 솔방울을 잔뜩 매달고 솔향을 풍기면서 하늘을 떠받치는 우듬지 위로는 새들도 따끔거려 내려앉길 거부한다. 비스듬히 뻗은 나무줄기에 앉기를 좋아한다. 까치도 다녀가고 빨간머리 딱따구리는 칠판에 분필을 찍듯 부리를 쪼는 연습을 하다 날아가고 눈 내리는 날에는 멧비둘기들이 지친 날개 쉬어갔었다. 어쩌다 딴생각을 하는 내게 따끔하게 솔침을 찌르는 솔잎선생, 그 어떤 나무보다 고귀한 자태로 정신적으로도 가르침을 준다. 부드러운 봄바람을 데려오느라 성정이 까탈스럽고 메마른 바람아, 제발 멈춰다오!     


도시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모른다. 산과 들 바다를 배경으로 태어난 한 사람을 키우는데 고향이 어떤 절대적 영향을 미치는지를. 얼마나 든든한 백그라운드인지를. 비록 가난하고 힘겹게 자라났지만 부유한 도시에서 태어나 자란 누군가의 삶을 부러워하지 않는다. 맞바꾸고 싶지도 않다, 다시 태어난다 하더라도. 늘 푸른 내 고향 육지와 바다로 가벼이 꼬리 치며 회귀하는 어종이다, 나는.     


인간에게 불을 가져다준 프로메테우스같이 돌산에 서서 간을 쪼아대는 고통을 당하는 소나무들의 검은 화형식을 멈추어다오. 누가 멈출 수 있을까. 바람이 잦아들어 공무원 군인 민간인 모두 모두 힘을 합쳐 잔불을 진화해주시길 바랍니다. 아, 어찌 볼까나. 처참한 그 모습을…… 내 남은 인생 다시는 이전의 울창하고 푸른 숲을 잃어버렸다.  향기로운 추억에 그을음이 나더니 흉측하게 훼손돼버렸다. 검은 화염을 내뿜으며 진노한 북녘 하늘을 바라보는 부모님 눈가에도 수심이 가득하다. 


우리는 왜 항상 잃고 나서 후회를 할까?

손에 든 보배를 보배인 줄 모르고서 놓치고서 후회한다. 인간과 자연이 조화로운 환경을 지켜나가는데 안전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안전은 눈에 띄거나 드러나지 않는 공기와 같다. 소중한 존재들은 우리 곁에 머물러있는 동안 무엇을 요구하거나 티를 내지 않는다. 성숙한 사회일수록 그 가치를 알아주고 아끼고 세심한 보살핌을 실천해야 함에도 많이 부족했다. 미리미리 안전장치를 마련하지 않은 그것, 엄격한 법 규정을 제정, 집행하지 않은 그것. 담배꽁초를 던지거나 말거나 그것이 아주 위험한 행위라는 걸 인식하지 않는 사회 전반에 걸쳐 느슨한 규범들이 발화 원인이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쳐 무슨 소용이랴. 

한밤중 불이 활활 타오르던 그 시각 울진읍 정림2리 우사를 뛰쳐나간 소들은 날이 밝자 모두 외양간으로 돌아왔다는데… 불타버린 송이 포자는 생성이 어려워져 앞으로 30년간 회복기를 거쳐야 한다는데… 이젠 추석 고향 밥상에 울진 송이버섯 올라올 일 없게 되었다. 이슬 맞은 향미를 영영 그리워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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