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시와 나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남연우 May 12. 2022

숲속은 그대 향기



초대장을 받았습니다

그늘을 여러 겹 덧대어 깁는 녹음 사이로

초여름 꽃들이 피어나는 요즘

한 번 다녀가라는

꽃내음 가득한 초대장을 받았습니다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을

블라우스 소매 주름 부풀려

핑크베이지 니트 모자를 쓴 나는

붉은 참죽나무가 서 있는

녹슨 돌담문을 걸어 들어갔습니다     


봄꽃들이 기다리다 지쳐

발등 위로 툭툭, 굵은 눈물방울 떨구는 모습

미안합니다

뒤늦게 찾아온 나를 용서하세요  

   

숲속 초입부터

만병초, 노란 랜턴 불빛 목련들이

멀어지는 봄을 애타게 비추고 있습니다    

 

매화헐떡이풀, 퀸 오브 하츠 풀꽃들은

어찌나 사랑스럽던지

바탕화면에 심어두었어요     


당신이 잠든 태산목 뒷동산에서

올해 처음 개구리 소리를 들었습니다

물이끼 갈아입은 초록색 바위, 동의나물 꽃들이

함초롬 피어난 아주 작은 연못이었어요     


둥근 걸음을 멈추고 서서

나무들이 걸러낸 직사광선이

산비탈 양치식물에 걸터앉더니


오월의, 풀잎 나뭇잎 꽃들이 게워놓은

은밀한 향기 스며듦과 함께

돌계단을 천천히 걸어 다가오는

그대를 보았어요     


망각의 이상향

무의식을 짓누른 물안개에 갇혀

숲속을 헤매다 길을 잃은 나는

엷은 옥빛 바다를 맨발로 거닐며 

수평 물결 떠밀려 온 새하얀 조가비를 줍습니다    

 

뒤따라오는 그대는 휘파람새 소리

아왜나무 가지를 스쳐

몽마르뜨 언덕 칠엽수 아래

치자꽃 흰 등나무꽃을 내밉니다    

 

작별을 암시하는 닛사나무에 이르러

악수를 청하셨나요

손가락에 남은 온기

시들어가는 수선화 잔향을

유리병에 고이 모셔둘게요

     

다음 초대장은

얼룩진 하늘이 빗물을 따르는 어느 날

보자기를 둘러쓴 미지의 여인이 되어

낙엽에 묻혀 꿈을 꾸듯

다녀가겠습니다  







시간의 얼굴이 아름다운 오월, 천리포수목원에 다녀왔습니다.


석등 랜드스케이프


옐로 랜턴 목련
매화헐떡이풀(노란꽃), 퀸 오브 하츠(파란꽃)
개구리가 사는 연못
진한 향기가 스민 동산

                     

매자나무 꽃
몽마르뜨 언덕 마로니에 (칠엽수)
미국 칠엽수, 흰 등나무 꽃
수평 물결 젓는 낭새섬
겹벚꽃, 만병초
닛사나무





















매거진의 이전글 달무리 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