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시와 나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남연우 Aug 30. 2022

원피스를 입은, 8시 15분



그 여자가 나타나는 시각은 아침 8시 15분


타박타박 잰 걸음걸이 옷가게 쇼윈도 앞 

속눈썹이 자라는 마네킹같이 꽃무늬 민무늬 

물방울 원피스를 매일 갈아입고 지나간다   

  

밀짚모자 흰 크로스백 메고서

카리브 해변으로 가는, 출근길이 명랑하다


그 시간 그 구역 붉은 신호등에 갇혀 

그녀를 바라보는 일은 아침 습관     


차 막히는 월요일

여름이 여름스러운 그녀의 시각을 놓치면

셔츠 단춧구멍을 잘못 꿴 오차를 맞추느라

허둥댄다     


찬 이슬 매단 강아지풀이 꼬리를 내린 

오늘은 긴소매 옷으로 갈아입었을까?


초침 소리 발자국을 찍으며 그녀가 걸어온다

허리에 리본을 묶은 원피스를 입었다     


잔뜩 흐린 하늘을 어색하게 차광한 밀짚모자

코스모스 꽃잎이 어룽거리는 시폰 원피스

그녀의 여름은, 언제 그칠지     


밤새 지친 별 단풍들이 수북이 쌓인 거리

원피스 위에 카디건을 걸친 여자가

걸어가는 아침 8시 15분 


바로 그날, 여름 끝 가을 시작








매일 아침 8시 15분 걸어가는 여자를 봅니다

언제나 원피스에 아이보리색 밀짚모자

흰 크로스백 메고서

가벼운 걸음걸이

어디 해변에라도 가는 모습으로


마네킹이 옷을 갈아입는 옷가게 앞을

그녀도

매일 원피스를 갈아입고 지나갑니다

색깔 무늬 디자인이 조금씩 달라도

길이는 무릎 바로 아래

찰랑거리며


그녀와 만나는 장소는

일치합니다

그곳에 도착하면 신호등에 갇혀 차도 멈추고

그 시각은 8시 15분


매일 마주치니까

언젠가부터 기다리게 되더라고요

처음엔 의식하지 않았는데

습관의 법칙은 이렇게 무의식 중에 형성됩니다


지난주부터 아침 기온이 18도 

옷을 갈아입었겠지?

기대하며 지켜보았어요

서늘한 날씨에도 아랑곳없이 그 차림 그대로..

안 추운가?

이제 해변 직장에 갈 기분도, 기온도 아닌데


아마 낙엽진 길을 걸어야

그녀 옷차림이 바뀌지 않을까?


비 내리는 오늘 먼저 그 블록에 도착

그녀가 지나가길 기다립니다

오질 않아요

"이상하다"

차가 밀려 20분이 되던 시각 신호등이 바뀌려 할 때

드디어

모자를 벗고 와인색 카디건을 입은 그녀가 걸어옵니다

못 알아볼 뻔하였답니다

경쾌한 특유의 걸음걸이 보고서 알아보았어요


역시나 원피스를 입었습니다

좀 더 화려한 꽃무늬 원피스를 

오늘이 바로 여름 끝.

가을 시작입니다

(그녀의 원피스 사랑 못 말립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처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