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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시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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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연우 Nov 09. 2022

멋진 걸음



노신사가 걸어간다

빛바랜 갈색 구두

쌓인 낙엽을 툭툭 차며 걷는다     


왼발과 오른발 사이 

헛도는 불협화음이 사립 문짝 삐거덕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낸다     


진리를 탐구한 학자풍 은발이

권위를 떠받친 기우뚱한 어깨 위로

걸음을 옮길 때마다

우수수 부대끼며 떨어진다     


우디 계열 고독한 향수 내음

한 그루 흔들리는 나무가 걸어간다          



아버지는 뿌리가 굳으려 한다

땅을 두드리는 지팡이를 먼저 한 걸음 

내보낸 후

천천히 이끌리듯 걸으신다     


울긋불긋 페르시아 양탄자를 깔아놓은

이 가을 우주 공간에 직립     


하현달

그믐달

붉은 달

초승달

상현달

보름달     


단 하루 서너 시간 다 보여주는

파격의,

멋진 걸음을 보고 싶다    

 

전 생애를 망토 입은 배경으로 끌고 가는

아버지의 뒷모습이

안개에 스며 흐릿해질지라도…     


언젠가는 누구나, 걸음을 멈춘다

걷는 날들이 기적이다!          






               

이 무렵 깔리는 페르시아 양탄자입니다

노신사가 걸어갑니다

진회색 반코트를 입은 등에는 백팩

밝은 갈색 구두를 신고서

낙엽이 쌓인 아침 거리를 걸어갑니다

조금 구부정한 어깨

빠른 속도로 걷지만

왼발 오른발의 리듬이 일정치가 않습니다

어디선가 박자가 헛돌고 있습니다

눈치 빠른 낙엽들이 그 틈으로 파고듭니다

바람 때문일까요

불규칙한 걸음의 진폭 때문일까요

들뜬 은발이 낙엽처럼 흩날립니다

그는 흔들리며 걸어가는 나무입니다


그러나

그는 아직 힘이 남아 있습니다

그분을 보면서 아버지가 생각났습니다

아버지도 힘차게 걷는 분이셨는데..

지금은 지팡이에 의존하십니다

걸음이 느립니다

달팽이보다는 조금 빠릅니다

전에 살던 아파트에는 마주 보는 산봉우리가 있었죠

아버지가 다니러 오셔서

꼭대기까지 성큼 올라가셨던 그런 날이 그립습니다


어제 개기월식을 보셨나요?

천왕성 엄폐현상을 거느린 개기월식을 보려면

한반도에선 향후 200년 안에 볼 수 없다고 합니다

진귀한 우주쇼였죠!


한 사람이 걸어가는 뒷모습은

살아온 전 생애에 대한

배경을 거느립니다

그 모습이

개기월식 순간의 오묘한 변화로써

한 달이라는 시간을 압축한

달의 생멸과 흡사하다는 생각입니다


아버지는 향수를 좋아하십니다

낙엽보다 진한 향수 내음을 바람결 스며내며

이 우아한 가을이 마련한 양탄자 위로

멋지고 중후하게 걸어가는

아버지를 보고 싶습니다...


우리는 언젠가 자신의 걸음을 멈추는 날이 옵니다

걷고 싶어도 

단 한 걸음도 떼기 힘든 

그런 날이..


폼생폼사,

멋지게 걸어보세요!

11월이 다 가기 전에...






어제 개기월식 모습입니다 우주의 신비로운 질서를 거실 창 너머 우러러보다가 그만 압력밥솥 저녁밥이 누룽지가 되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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