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시와 나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남연우 Nov 25. 2022

골목 첫 번째 집



도로변에서는 안 보이는

햇살 한 자락 귀에 걸고

환하게 웃는 집     


창문에 붙은 집 이름을 한 글자씩

흰 벽에 필사하면서

라탄 바구니에 담긴 오후 시간을

둥우리 알 부화하듯 품고 있는 그 집     


회전목마를 탄 인형들이

꾸벅꾸벅 졸다 깨다 빙글빙글

늘 봄 튤립에 물을 주는

한 여자의 꿈이 자라는 집   

  

제페토 할아버지의 구두 위로

두툼하게 톱밥이 쌓여갈 동안

피노키오의 코가 길어지는 내막을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 집    

 

댕강 부러진 연필심으로

고장 난 시간을 수선하는

골목 첫 번째 집     


한 발짝만 들여놓으면 되는데

한 박자 화살표를 그만 놓쳐서

큰길을 따라 걸었다     


골목에 숨은 

두 번째, 세 번째 추억도 

모른 채 지나쳤다


대로변이 좋은 줄만 알았다     

그저 큰길을 따라 걸었다

첫눈이 내리고 있었다





 2022. (남연우) all rights reserved.     



지인 라탄 공방이에요



지인이 라탄 공방을 오픈했다기에

술술 풀리는 휴지 한 꾸러미 들고서

찾아갔지요


인근에 주차를 하고

길을 건너서 바로 목적지가 있다는데

안 보이는 겁니다

전화를 했지요

"또봉이 치킨집에서 위쪽 아래쪽 어디로 가요?"

"음, 혹시 뒤돌아보실래요.."


저만치서 지인이 손을 흔듭니다

얼마나 반갑던지요^^

오랜만에 만났거든요!!


공방은 도로변에서 불과 한 걸음

골목 첫 번째 집이었어요

그런데 그 한 걸음을 꺾지 못하면 안 보이는 집이었죠


햇살은 어찌나 쨍하게 내리비치는지..

창가에 놓인 바구니들

소품 인형들 목마 모두 모두 행복해 보였어요!


창문에 붙은 공방 이름을 오후 햇빛이 실내 벽면에

그대로 필사하는 회색 글자가

너무 멋있었답니다


선반 위에는 피노키오가 앉아있었어요

아마 피노키오 코가 바닥에 점점 길어지는 그림자를 던지고 있었는지도..

시에서 말한 -내막을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 집-은

자신을 속이는 마음의 집이겠죠


골목에는 숨은 이야기들

추억들이 많은데

언제부터인지 앞만 보며 걸은 것 같아요

직진하는, 막힘없는 대로가 좋은 줄 알고서..


그저 큰길을 따라 쉽고 편하게, 의미 없이 걷고 있는 건 아닌지?

첫눈이 내리는 날엔

추억이 숨 쉬는 골목으로 한 걸음만 옮겨 보아요

거기 지난 내 모습이 그려져 있을 테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멋진 걸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