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과응보를 가르쳐주다
십자화과 채소 배추도 꽃을 피운다.
둥글게, 둥글게 속 알맹이를 채우면서 자신의 우주를 만들어나간다.
배추벌레가 다가와서 부드러운 잎을 뜯어먹으면 먹히는 대로 생채기 나고 비바람에 뿌리째 흔들리면 발버둥 치면서 잔뿌리를 땅속으로 뻗어 내리고 기온이 뚝 떨어져 한파가 닥치면 오들오들 떨면서 한 겹 더 외투를 장만하느라 안간힘 쓴다.
지난 9월 초 스물 두 포기를 심은 배추가 일곱 포기 남았다.
두 세 포기는 포기랄 것도 없이 발육이 부실하다.
할아버지가 키우는 옆 밭 배추는 백여 포기 튼실하게 무럭무럭 자란다.
나의 가을 텃밭 로망은 푸른 배추들이 넘실거리는 초원을 만들어 보는 것이었다.
그 배추로 김장을 담그면 내년까지 뿌듯함이 지속될 것만 같았다.
본전을 뽑고도 남는 장사이다.
그런데 이게 뭐람..
시월 초순 고구마를 수확한 이후 텅 비어버린 밭에 초록색 배추섬이 앙증맞게 여기저기 둥둥 떠있다.
작은 체구 둥근 초록색 머리 퍼질러 앉은 배추를 보면서 늦가을 이슬 맞고 조금만 더 자라주길 인내심으로 지켜봤다. 우량한 옆 밭 배추와 비교되는 몰골을 봐선 무슨 구실을 할 수 있으려나 의구심이 들었지만..
11월 말 기온이 갑자기 영하로 떨어졌다.
배추들 살집을 조금 더 키우려는 생존전략에 비상이 걸렸다.
에어 포켓 뽁뽁이 비닐을 가져가서 방한 옷을 입혀주었다.
떡 벌어진 겉잎은 제외하고 알배기만 입혀서 허리를 날씬하게 묶어주었다.
투명 패딩을 입은 배추들 패션이 재밌다.
누가 보면 작황도 부실한데 별 쇼 다 한다고 혀를 찰 것 같다.
옆 밭 배추들이 속으로 그럴 것이다.
"쟤네 좀 봐, 키도 작은 애들이 이상한 옷 입고 뚱뚱해 보여. 킥킥^^"
"야~ 놀리지 마, 너희들은 이런 옷도 없으면서 까불지 마. 이게 최신 유행 패션이라는 거야. 얼마나 따스한지 모르지?"
다른 밭들은 수확이 끝나 휑뎅그렁한데 잘 키운 옆 밭 배추는 어찌 된 셈인지 수확할 기미가 안 보인다.
다 얼게 생겼다.
며칠 지나지 않아 옆 밭 배추들은 하나님 은총이 가득한 교회 플래카드를 덕지덕지 입은 채 이상한 기도를 하고 있었다. 키가 큰 배추 세 이랑이 일렬로 쭉- 기다랗게 흰 가림막으로 가리어져 가관이다.
저 푸른 옆 밭 배추들은 세상과 차단된 속앓이를 하고 있었다.
투명한 비닐 속에서 일곱 포기 우리 밭 배추들은 온기를 내쉬며 새록새록 건재하다.
뽁뽁이 안에 주렁주렁 물방울이 그득하다.
어머 배추들도 입김이 생기나 보다.
이건 숨을 내쉬고 있다는 생존 증거 아닌가.
영하 4도 떨어진 새벽 냉기를 잘 감당하며 얼지 않고 살아있어 다행이다.
다음 날은 영하 6도 떨어진다고 하니 더 이상 내버려 둘 수가 없다.
방한 옷을 벗겨서 뿌리를 뽑고 겉잎은 뜯었다.
이만큼이라도 자라주어서 고맙다.
남들보다 늦게 심어서 해충약 한 번 안 뿌리고 알아서 견뎌 주었으니 고마울 따름이다.
11월 30일, 아직 가을이다.
땅거죽에는 냉이 비슷한 지칭개들이 지천이다.
키가 큰 나무들은 잎을 모두 떨구는데 땅에서는 새 생명들이 출현하여 겨우살이를 시작하는 이 무렵 유독 눈길을 끄는 나무들이 있다. 뒤늦게 불그죽죽 물든 단풍나무들과 해진 연초록잎 너울거리며 찬 바람에 을씨년스러운 수양버드나무들이 탈의를 미루면서 가는 가을 옷소매를 붙잡고 늘어진다.
미련이 남는 모양새다.
붙잡는다고 가는 걸음을 되돌릴 수 있을는지..
못 이기는 척 한 며칠 머물지도 모른다.
기다려줄 테니 아쉬운 마음 접으라고..
이렇게 끝까지 푸른 옷을 감아쥐고 천천히 벗으면서 이듬해 봄 제일 먼저 연둣빛 물이 오르는 버드나무껍질은 아스피린 원료가 되는 강인한 생명력을 지닌 채 생긴 모습 그대로 계절의 변화에 민감하게 순응한다.
겨울이 시작되는 12월 첫째 주말 텃밭 배추는 덤으로 끼워서 미루던 김장을 해치웠다.
마트에서 산 덩치 좋은 배추들에 비하면 귀염둥이 텃밭 배추들은 작은 체구에도 불구하고 노란 알배기가 들어있어 더 깜찍했다. 올해 김장이 더 각별한 건 고향 부모님께 보내드리기 때문이다.
올해부터 엄마는 김장을 담그지 않기로 하셨다.
구순이 될 때까지 자식들에게 당신 피눈물 같은 김장을 만들어서 보내셨다.
부모 등골 휘어지는 줄 모르고 빨대 꽂은 자식들은 그 김장 국물을 쪽쪽 빨아먹었다.
일찌감치 철이 든 셋째 딸은 서른 초반부터 '김장독립 선언'을 하였다.
맛이 있건 없건 내 손으로 만들어 먹었다.
이젠 집에서 직접 배추 절이는 것도 잘할 수 있게 되었다.
시중에서 구입하는 절임배추는 맛을 내는 데 한계가 있었다.
아무리 갖은양념을 만들어 버무려도 극복할 수 없는 뭔가 아쉬운 맛을 느끼면서 몇 년 전부터 대형 비닐백을 이용 간편하게 절이는 노하우가 생겼다. 올해는 짜지 않으면서 아삭하게 잘 절여졌다.
우리 집 김장 양의 약 1/4 해당하는 16.7kg 김치를 제일 큰 김치통에 담아서 어제 우체국 택배로 보내드렸다. 우체국 창구에서 잘 들어 올리지 못해 아르바이트생의 도움을 받아서 낑낑대며 부쳤다.
뿌듯하다..
부모님이 내가 만든 김치를 맛있게 드시는 모습 그려본다.
난쟁이 배추 수확을 끝으로 풍뎅이 텃밭은 제 역할을 다한 뒤 장엄한 마침표를 찍었다.
멀칭 비닐도 깨끗하게 수거되었다.
이리저리 어지러운 발자국을 찍으며 태초의 맨흙으로 돌아간 10평 크기 밭, 내 소유는 없어졌지만 뿌린 대로 키워주는 위대한 흙을 보면서 인생 공부가 되었다. 열 개 심어서 서른 개 내어주는 작물이 있고 열 개 심어서 서너 개 내어주는 작물이 있었다. 자연의 이치대로 새들도 나눠 먹으며 감사한 시간이었다.
인과응보(因果應報), 알 수 없는 전생 선악 인연의 과보를 떠나서 '원인과 결과는 서로 물고 물린다'는 뜻이다. 욕심 내어 섣부른 결과를 기다리기보다는 사람의 도리를 다하고 하늘의 명을 겸허하게 기다리고 수용하는 자세를 배웠다. 한 해 초보 농사도 이러할진대 장기간에 걸쳐 진행되는 인생 농사는 어떠해야 하는지 가늠해 본다.
고운 마음, 착한 마음을 내어서 씨앗을 뿌려야겠다.
뿌리고 기다리면 언젠가는 예쁜 꽃을 피워주리라..
무성한 꽃밭은 아닐지라도 어디선가 향기로운 한두 송이 꽃 내게로 선뜻 다가올 것이다.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겨울 하늘을 나는 새들의 입김과 거리를 걷는 사람들의 입김이 어우러져 새하얀 눈꽃이 피어나는 한 해 끝으로 눈발이 날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