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꾸는 동안

by 남연우


여섯 시간 걸려 고향에 내려가니 추수를 앞둔 들녘이 환하다.

태풍이 비껴간 들판은 시름이라곤 모르는 충만함으로 기름지다.

일자로 쭉 뻗은 들길을 걸어본다.

만석꾼 대지주가 된 듯이 느릿느릿 뒷짐지고 익을수록 고개 숙인 알곡에게 겸손함을 배운다.


이 너른 들판에 사람이라곤 안 보인다.

이따금 큰 농로를 자동차들만 바삐 지나간다.

마을길도 마찬가지 찾아오는 이도 없고 지나가는 사람 보기 힘든 실정이 되었다.

어쩌다 자식들이 찾아와도 집 앞에 차를 대고 드나드니 얼굴을 통 볼 수가 없다.

인심 좋던 시골이 도시와 다를 바 없는 메마른 바람이 분다.

어릴 적 보던 강산은 유구한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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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걷다가 반가운 이를 만났다.

인적이 드문 이 들길에 어릴 적 보았던 죽마고우라고나 할까.

엄마가 흰 수건을 쓰고 밭을 매는 동안 풀잎을 따서 돌 위에 콩콩 찧어 소꿉놀이를 하며 놀았는데 그때 내 눈가에 붉은 열매들이 어느 계절 계속해서 들어왔다. 그 열매들은 타원형으로 길쭉하게 생겼고 줄기는 넝쿨같이 옆으로 뻗어 자랐다. 얘네들은 우리 집 밭두렁에서 이사도 가지 않고 오래오래 살았기에 모를 수가 없었다.


입에 넣으면 시큼한 맛이 톡 터져서 단맛을 좋아하는 아이들은 좋아하지 않는 맛이었다. 몇 개 따서 가지고 놀다가 버렸다. 이 약용식물의 유용한 효능을 어른들은 외면하였다. 알았다면 따서 말려두었다가 약차로 끓여 마셨을 것이다. 적어도 씨앗을 받아서 뿌리고 더 번식하는 일에 신경을 썼을 것이다. 구기자도 밭 기슭 토양의 조건이 맘에 들지 않았는지 늘 그 모습으로 단출하게 살았었다.


그 후 밭은 논으로 개간되었고 흔적 없이 사라졌다.

유년시절 내가 알고 있던 우리 밭 자리에서 조금 내려온 곳에 그 시절 구기자가 보란 듯이 자라고 있음에 너무 반가웠다. 흙속에 파묻힌 씨앗은 긴긴 어둠 속에서 꿈을 꾸었다. 몇십 년 동안 꿈을 꾸었다. 그리고 마침내 여러 해 전 길가에 푸른 싹을 틔웠고 오늘에 이르러 내가 보는 붉은 열매를 맺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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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극지대 빙산에 갇혀 꿈을 꾸는 것과 같다.

모든 것들이 죽은 듯이 보이는 검푸른 지대에선 눈을 감아야만 한다.

눈을 뜨면 살벌한 주위 환경이 무섭고 시선을 아프게 찌른다.

두 눈을 감고 시냇물이 졸졸 흐르는 봄날 연분홍 꽃들이 피고 지고 흩날리는 천국을 상상해 보면서 냉기를 누그러뜨리다 보면 온기가 서서히 찾아온다. 영하 10도, 영하 5도, 영하 1도, 아직 언 손이 차갑다. 더 따듯한 꿈을 꾼다. 드디어 0도에 이른 꿈은 해빙하게 되고 오랫동안 무의식에 갇힌 꿈이 현실이 되어 나타난다.


대나무는 처음 5년간 땅속에 뿌리를 내리는 동안에는 눈에 띄지 않지만 이후 6주 만에 지상 30미터 높이로 자라난다고 한다. 눈에 보이는 세계는 눈에 보이지 않는 거대한 세계가 떠받친 잠시잠깐 결과물이다. 시간의 차이만 있을 뿐 언젠가는 무너지고 사라지게 될 환상일지도 모른다.


우리의 언행도 생각이 빚어낸 잠재의식의 결과물이다.

수없이 많은 그 생각이 그 말과 그 행동을 하게 만들었다.

그러니 자신의 언행에 책임을 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며칠 전 식당에서 칼국수를 주문하고 기다리는데 감청색 우아하게 생긴 물잠자리가 방충망에 걸려 허우적거리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사람으로 치자면 정장을 쫙 빼입은 멋쟁이 잠자리였다. 폼 구겨지게 출구를 찾지 못해 날개를 접었다 폈다 오르내리며 계속 발버둥 쳤다. 물잠자리가 괴로워하는 모습을 안 보려야 안 볼 수가 없을 텐데 창문 바로 앞에 착석한 사람들은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못 본 척했다.


그쪽 테이블 의자 등받이와 창문 간격은 비좁은 편이었으나 물잠자리를 탈옥시키지 않고선 내 목구멍에 칼국수가 술술 넘어갈 것 같지 않았다. 맞은편에 앉은 남편에게 방충망을 열어주라고 말했다. 주위 눈치를 보던 남편은 채근하는 내 등쌀에 못 이겨 건너편 테이블 창가로 다가가서 방충망을 조금 열어젖혔다. 떠밀리는 방충망에 뒤로 밀리던 물잠자리는 허둥댔다. 남편이 손으로 훨훨 갈길을 인도하자 녀석은 바람이 통하는 바깥 출구를 향해 힘껏 날아갔다. 그 모습이 마치 누가 잡으러 올 것처럼 꽁무니를 내빼며 줄행랑치는 모습이었다. 기온이 떨어지기 시작하는 선선한 저녁에 불빛과 온기가 있는 식당 출입문으로 들어와서 하룻밤 갇힌 것 같다.


내 가족 일이 아니고선 무정한 사람들이 그깟 물잠자리 한 마리에게 온정을 베풀 리 만무하다.

이 세상 만물은 서로 공생하며 숨결을 나누어 가지는데 그 이치를 아는 이 몇이나 될까.

평소 가지고 있는 생각 신념 가치관이 그 사람의 인생길을 만들어 간다.

이것은 물질의 있고 없음을 말함이 아니다.

나만의 행복을 누리는 아주 작은 통로이다.


베란다에서 키우는 바위솔 모체에서 작은 새끼들이 올망졸망 자라났다.

마침 여름 무더위를 지나며 녹아내린 다육식물 빈 화분에 바위솔 새끼들을 이식하였다.

옮겨 심은 지 한 달이 지났건만 통 자라날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아, 바위솔 아기들은 지금 달콤한 꿈을 꾸고 있다.

엄마 젖을 빨면서 꽃들을 구경하고 나비들을 쫓아다니는 햇살 따스한 꿈을.

하룻밤 꿈에 뿌리 한 톨 자라나고 어느 날 아침 일어나서 보면 어딘가 달라져있는 모습, 키가 자란 모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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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jpg 우리 집 바위솔 아기들, 아직 꿈을 꾸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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