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추

by 남연우

_남연우




엎질러진 물을 주워 담으려고

안개가 밀려온다


늘 비슷한 기울기로 물을 따르고

물컵은 같은 자리에서 물을 흘리고

통점을 건드리는 눈물샘은 시간이 지날수록

낮은 하향곡선을 그린다


습관적으로 여는 창문이

무거운 둔탁음을 내며 풍경을 지우고

발목을 휘감은 안개는 길을 삼키고

노쇠한 목소리로 부대끼는 갈대들은

떠날 준비를 한다


처마 아래 농익은 곶감,

마른 시래기 몇 올 걸어둔 채

황급히 수의를 입고 떠난 노인들의 향기

찬찬히 사그라드는 계절


떨어진 벼 이삭을 쪼며

검푸른 깃털에 윤기를 내는 까치들은

목탁 구멍 속 어두운 기다림을

쓸쓸하게 두드린다


서로의 등 그늘에 괴는 찬바람

탐스러운 사과를 내어준 나무도 혼자 서 있고

홀딱 털린 감나무도 등불을 끄고 칩거에 들어갔다


강가에는 안개에 잠긴 빈 나룻배

삐거덕삐거덕 노 젓는 소리

놋숟가락 삐딱하게 걸린 문고리 열어

소란한 물결 떠내려가다 보면


어둑한 하늘에 점선을 긋는 철새들의 길이 보이고

반짝 기우는 빛을 활활 태우는 맨드라미

붉은 꽃길 따라서

다시 혼자가 되어도 좋다




image.jpg 집 앞 나무들이 물들어 수척해지고 있다, 한 해 잘 살아온 나뭇잎들이 떠날 준비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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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jpg 두번 째 핀 철축꽃들, 작은 나뭇잎도 붉은 꽃을 함께 피운다, 유독 이 나무만이 그러하다, 감성적인 나무를 칭찬하였다 .. 떠나는 가을을 애도한다




가득 찬 물컵은 스스로 물을 버립니다

무거운 열매를 매단 나무도 애써 키운 과실을 툭 떨굽니다

차고 이지러지는 보름달도 그러합니다

비우는 소리는 가볍습니다

바람도 그 소릴 싣고서 가뿐히 떠납니다

어깨 위에, 발걸음에, 매단 삶의 무게를 비웁니다

이 가을에

할 일이라곤 겨울채비를 서두르는 것이며

약볕 아래

가끔 묵상에 잠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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