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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dantino Oct 02. 2024

A에게

세상으로 나아가는 20살 딸에게 아빠가 띄우는 편지

    아빠다.


    유난히도 더운 여름이었다.    밤 늦게 알바 마치고 들어오는 네 모습을 볼 때마다 아빠 마음은 안쓰러움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어른들의 세상에 나아가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고 노동의 댓가를 받아오는 네 모습이, 아빠는 너무 자랑스럽기도 하다.   돈을 버는 것은 세상을 알아갈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또한, 자기자신의 능력과 취향을 포착할 수 있는 명쾌한 방법이기도 하다.   아빠는 안쓰럽지만, A의 행진를 응원한다.

    

    세상으로 나아가고 있는 네게 "세상"에 대한 아빠의 생각 몇 가지를 내놓아 본다.  


    첫째, 살아보니 세상은 꽤 부조리하더라.   그런데 세상은 원래 그런 곳이더라.   사람도 그리 이성적인 존재가 못되더라.   사람들은 그런 곳에서 그냥 살아가는 것이다.   부조리에 잠깐 투덜거릴 수는 있겠으나, 원망이 앞서면 자신의 멘탈만 망가진다.   이러저러해도 세상은 충분히 재미있고 멋진 곳이다.   뜻을 품어보고 펼쳐가며  당당하게 한 번 살아볼 만한 그런 곳이 세상이다.   잘난 사람 못난 사람 큰 사람 작은 사람, 더군다나 암컷과 수컷이 반반 나뉘어 살아가는 것도 다소 웃기면서 재미있는 일이다.   세상을 조금 내려다보고서 품에 안아보시라.   


   둘째, 세상에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이 나뉘어져있는 것이 아니더라.   한 사람 안에 천사와 악마가 공존한다.   어떤 상황에서는 천사가 되고  다른 상황에서는 악마가 된다.   사람을 쉽게 판단하면 안되는 이유다.   사람을 만날 때는 상대방이 그의 좋은 면을 꺼내 쓸 수 있도록 사려깊게 배려해야 한다. 


    셋째, 세상과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더라.   세상에 통할 수 있는 균형적인  생각을  갖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   세상에 없는 것을 만들어내어 세상에 통하게 하는 것은 더더욱 힘든 일이다.  그래서 겸손해야 하고, 자신의 내면을 늘 거울로 들여다보아야 한다.   늘 책을 가까이 해야 함은 물론이다.    


    

    학업에 부담스럽지 않을 정도로 알바하는 것은 A에게 많은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다만, 월급 액수와 근무 일수에 너무 연연하지 않았으면 한다.   다양한 세상을 체험할 수 있는 통로로 알바를 생각해주었으면 좋겠다.   흔히들 하는 알바가 아니라, 영어를 활용할 수 있는 일, 법률이나 투자에 관계된 일을 찾아보는 것도 좋아보인다.  


     20대에는 어떤 실험을 해도 괜찮다.  A는 도덕적 경계선이 분명히 서 있으니 사고를 친다해도 나쁜 사고는 아닐 것이라고 아빠는 생각한다.  20대 때의 경험과 실패는 향후 80년 동안의 큰 인생 자산이 될 것이다.   대학 입학 후 올A학점 받으려고 노심초사하지 않아도 된다.   학점의 노예가 되어 20대에 경험해봐야 할 많은 것을 놓치는 건 너무나 큰 손실이다.   무엇을 달성한다는 것도 중요하지만, 늘 자신의 성장을 도모해 나가는 태도가 더욱 중요하다.   아빠 주변을 보더라도 20대에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가 참 중요하더라.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기 바란다.   예쁜 연애도 해보고.     


    대학 시절에 해야 할 공부는 전공 외에 영어와 세계사이다.   세계 GDP의 2% 비중인 대한민국에만 매달리면 나머지 98%를 놓치게 된다.   토익이나 토플도 중요하지만, 세계의 젊은이들과 기탄없이 대화하고 소통할 수 있는 언어 능력이 더 중요해 보인다.  음악이나 미술을 전공하든 경제학이나 법학, 공학을 전공한다해도 세계사는 필수다.   세상이 이런 모습이 된 내력을 알아야 현재가 보이게 되고 앞날을 나름 가늠해 볼 깜냥도 생긴다.   대학을 졸업한 후 직업을 가지는 무렵부터는 심리학 공부 해보기를 권해본다.   사람 공부가 중요한 까닭이다.  


    암기의 시대는 이미 지나간 지 오래고, 문제 해결력의 시대도 저물어가는 분위기이다.  바야흐로 질문과 호기심의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   새 것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도 생각의 균형점을 잃지 않는 것은 기깔나는 일이다.   당연한 것을 당연하지 않게 생각해 보는 것, 사람들의 상식을 비틀어보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다.  


    가정에서 장녀로서의 역할도 생각해주기 바란다.   줄 것이 많은 사람이 어른이다.   돈이든 지혜든 사랑이든 줘야 어른이다.   엄마의 집안일도 조금씩 도와주었으면 좋겠다.   요리는 강추다.   창조적인 작업이니.  


     이제 청소년 딱지를 떼고 어른들의 세상에 나온 우리 딸.   의존하고 지시받는 나에서 벗어나, 당당한 어른으로 자립하는 모습을 아빠는 기대한다.   아빠는 A의 응원단장이 되고자 한다.   아빠는 후진국에서 태어난 사람, A는 선진국에서 태어난 사람이다.   후진국 사람이 선진국 사람에게 훈수하는 것이 아이러니해 보이기는 하다.   아빠가 가진 개인적인 생각이라 생각해주면 되고, 아빠의 생각을 조금 삐딱하게 바라봐주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생각한다.  


    사랑한다.  그리고 응원한다.


    A의 응원단장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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