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타즈매니아#1
내가 타즈매니아에 오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이곳이 남편의 고향이기 때문이다. 남편과 나는 한국에서 만나 결혼하고 살다가 호주로 건너온 경우다. 만남 초기에 남편에게 왜 한국으로 왔냐고 물어봤는데, 철학을 전공한 남편은 태극기를 보고 우리나라를 도교의 나라로 생각했다고 한다. 음과 양이 조화를 이룬 국기가 무척 아름답다고 느껴져서 꼭 와보고 싶었다고 했다. 막상 한국에 도착하니 건물마다 빨간 십자가가 걸려 있어서 적지않이 당황했다고도 했다.
사실 남편을 알게 되기 불과 한 달 정도 전 즈음, 나는 도서관 여행 섹션에서 타즈매니아에 대한 책을 빌린 적이 있었다. 타즈매니아로 이민을 간 어떤 한국 사람이 적은 책으로 타즈매니아의 독특한 환경, 동식물, 자신들의 라이프스타일을 멋진 사진과 함께 엮어서 낸 책이었다.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름다운 자연환경이었다는 인상이 남아 있었다. 이후 남편을 처음 만나고 이야기를 하다가 남편의 고향이 타즈매니아인걸 듣고는 어! 나 거기 어딘지 알아. 오리너구리랑 타즈매니아 데빌이 사는 데잖아하고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나중에 남편도 호주 벽지인 타즈매니아를 아는 사람을 만나서 조금은 놀랬다고 했다.
남편은 나를 만나기 전부터 이미 한국에서 오랫동안 일하고 있었다. 그래서 한국문화가 익숙한 상태이면서도 동시에 한국인 특유의 유연하면서도 빡빡한 근무환경에 지쳐있기도 했다. 지친 남편은 결국 고국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고, 기나긴 상의 끝에 이주를 결정했다.
처음 우리가 정착하려고 목표로 삼았던 곳은 타즈매니아가 아닌 호주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 멜버른이었다. 대도시라 쉽게 직업을 구할 수 있을 거로 생각했고, 우리가 키우던 개 몰리를 계류장에서 데려오기에 가장 가까운 도시였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우리는 멜버른에 정착하지 못했다. 결정적으로 우리에게 가장 어려웠던 일은 집을 구하는 일이었다. 렌트를 신청할 때 신청자는 자신의 직업과 연봉, 어떤 때는 은행의 잔고까지 집주인에게 모두 오픈해야 하는데, 금방 호주에 돌아온 남편으로선 신청서에 딱히 집주인의 마음을 끌 만한 좋은 조건을 적을 수가 없었다. 우리에겐 대형견까지 있었으니 우리 가족의 렌트 신청서는 틀림없이 항상 뒷전으로 밀려났을 것이다. 우리의 사정과는 별개로 매력적인 도시로 알려진 멜버른은 유학생과 이민자에게 인기가 많아 부동산 렌트 시장은 언제나 북새통이었다. 집주인들에겐 항상 우리보다 좋은 조건의 신청자가 차고 넘쳤을 거다. 당시 우리는 남편의 직장동료 집에서 얼마간 돈을 내고 쉐어를 하고 있었고, 집을 구하러 다니는 기간이 길어지자 우리도 초조해지고, 집주인도 초조해하기 시작했다. 공교롭게도 그는 집을 팔려고 내놓은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막다른 골목에 점점 다가가는 느낌이었다.
집을 구하러 주말마다 도시의 외곽을 돌아다니던 남편은 거의 10년 만에 돌아온 고국이 자신을 환영하지 않는다는 인상을 받았을지도 모르겠다. 일례로 남편은 호주로 돌아와 메디케어(건강보험)를 신청했는데, 해외에서 장기간 체류한 사람으로 분류되어 입국 1년 이후에나 다시 가입이 가능했다. 제도적으로는 정부의 방침이 이해되긴 했지만, 당사자인 남편은 혹시 다치거나, 교통사고가 나게 될까 봐 압박감에 시달렸던 것 같다. 호주에서 보험 없이 병원에 가는 것은 공중에 돈을 휙 뿌려버리는 행위와 비슷했으므로.
당시 남편은 초조하고 침울해 보였다. 하루에 사계절이 있다고 일컬어지는 변화무쌍한 멜버른의 날씨도 한몫했는지도 모르겠다. 결국 남편은 자신이 대학 생활을 했던 타즈매니아에 있는 호바트로 돌아가자고 했다. 호바트는 멜버른과는 비교되지 않을 만큼 렌트가 쉽다고 이야기를 했다. 캠퍼스 생활을 했던 곳으로 돌아갈 생각에 약간 들떠 보이기도 했다. 새로운 시작과 도전. 남편은 희망에 부풀었고 설레했다. 나도 당연히 찬성했다. 하루라도 빨리 집 없는 불안한 마음을 떨치고 싶었고, 책에서 본 오랜 기억 속의 타즈매니아는 맑고 아름답고 신비로운 곳이었다.
남편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결정적으로 남편이 기억하던 호바트의 사정은 10년 전이었으므로.
그리고 세상의 거의 모든 사람은 한 번 즈음은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책에서 하곤 다르네!’ 타즈매니아에 대해서 나 역시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