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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펭귄 Apr 11. 2021

반려견을 위한 나라는 있나요?

몰리와 함께 한 지 8년이 지나가는 지금 나에겐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란 말보다 ‘반려견을 위한 나라는 없다’란 말이 좀 더 그럴듯하다. 남편과 내가 이주를 결정하게 된 이유는 많이 있었지만, 몰리에 대한 문제도 무시하지 못할 만큼 컸다. 


몰리를 데려오고 좋은 주인이 되기 위해 나는 EBS의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를, 남편은 미국의 ‘독 위스퍼러’를 시청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앉아, 기다려 같은 단순한 명령과 실외 배변을 쉽게 성공시키며 뿌듯함을 느끼고 있을 때, 찬물을 끼얹듯 우리를 좌절시켰던 건 다름 아닌 산책할 때 길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이었다. 

TV를 보며 개 주인의 매너를 교정할 수 있는 정보를 받았지만, 정작 내가 산책하러 나가 마주치는 행인 한명 한명의 매너에 대해선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외국인과 골든리트리버라는 눈에 띄는 조합은 길가 사람들의 눈길을 더욱 잡아끌었는데, 에피소드는 매일매일 끝없이 생겼다. 신호등이 있는 건널목을 건너려고 초록 불을 기다리는 사이 뒤에서 슬그머니 다가와 귀엽다며 몰리에게 초콜렛을 주는 사람. 길가의 다른 개 배변을 가지고 우리에게 와서는 치우라고 항의하며 소리치는 사람. 다짜고짜 개를 만지려고 해서 그러지 말라고 주의를 시키면 남편에게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고 면박을 주는 사람. 개가 귀엽다며 우리 집 앞까지 따라와 집을 확인하고 가는 사람.. 세상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많았다.  


마치 예정되어 있었던 일처럼 우리는 호주로 이주를 결정하고 몰리의 검역 절차를 시작했다. 호주는 엄격한 동식물 검역으로 유명하다. 반려동물은 호주로 데려오기 위해선, 동물병원을 통해 피를 뽑고 그 피를 호주로 보내서 유해한 병균 보유 여부와 면역력을 판단 받아야 한다. 평균적으로 6개월의 검역 기간이 걸리고, 대부분은 호주 정부의 입국허가를 받기는 하지만, 가끔 부적격 판단이 내려지기도 한다. 그러고 나서 일단 동물이 비행기를 통해 호주에 입국하면, 멜버른 외곽에 있는 계류장으로 보내져 15일 동안 격리되었다가 최종적으로 유해 병균이 없는지 확인받고 주인에게 돌아갈 수 있다. 

남편과 나는 이 과정을 통과하기 위해 700만 원 가까이 감수해야만 했다. 이주를 위해서 남편이 멜버른으로 먼저 가 직장과 집을 구하고, 그사이 난 한국에 남아 몰리의 검역을 마무리하기로 했다. 그래서 거의 6개월간 나는 몰리의 아침, 점심, 저녁 산책을 혼자서 감당해야 했고, 몰리는 몰리대로 다이어트의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 검역을 도와주던 수의사님이 25kg을 기준으로 비행기 수화물 가격이 올라간다며, 이 무게를 넘어가면 백만 원 가까이 비용이 올라가니 할 수 있다면 25kg을 유지해달라고 했다. 당시 몰리는 27~28kg이었다. (사람이 2kg을 빼는 것도 힘든데, 먹성 좋은 청년 강아지 2kg을 빼라니요.)


시간은 흘러 흘러 6개월이 지나 각자에게 지옥같이 험난했던 생이별 끝에 드디어 나와 몰리는 멜버른으로 들어와 남편과 눈물의 재회를 했다. 이후 어찌어찌하여 버니 Burnie에 자리잡게 되면서 나에겐 이곳이 지루하고 외로운 장소가 되었지만, 몰리에겐 견생을 즐기며 살기엔 최적의 장소가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 집 앞뒤엔 차가 다니지 않는 산책 다니기 쉬운 널찍한 학교 운동장과 공원이 있고, 합법적으로 개를 풀어놓을 수 있는 바닷가가 차로 10분 거리에 있기 때문이다. 

요즘 몰리는 우리 집 맞은편 길에 사는 '보'라는 포인트 종 할아버지 개에게 푹 빠져있다. 그 집 앞을 지나갈 때마다 꼭 서성거리며 '보'의 냄새를 추적하고 결국 자기 쉬야를 남긴다. 개에겐 쉬야가 페이스북이나 근황 토크 같은 것. 어쩌다 길에서 보와 마주치면 몰리는 달려가서 꼬리를 흔들며 옆에서 헥헥거린다. 하지만 보는 힘 빠진 눈으로 앞만 응시하고 있을 뿐이다. 가끔 보는 주위를 다 무시하고 길에 떨어진 오리 똥을 주워 먹고 있다. 몰리의 취향이 상당히 의심스럽다.


반려견을 키우기에 완벽하고 평화롭게만 보이는 이곳에도 반려견으로 인한 분쟁은 존재했다.  이상한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고 인류의 이런 면은 참 보편적이므로. 남편과 나는 종종 몰리가 죽고 나면 다시는 반려견을 키우지 말자고 이야기한다. 개가 싫어서가 아니라 개로 인해 종종 마주치는 평화 파괴주의자가 두렵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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