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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펭귄 Oct 29. 2020

다시 잇기2

남편의 타즈매니아 #2


2018년, 2019년 타즈매니아의 주도 '호바트'는 호주 전국에서 가장 높은 집값 상승률, 렌트비 상승률을 기록했다. 바꾸어 말하면 이때까지 집값이나 렌트비가 호주 본토보다 상대적으로 낮았다고 할 수도 있다.

조용했던 호바트에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주정부의 정책으로 호바트는 사업 이민자의 유입률이 늘어났고, 타즈매니아의 깨끗한 환경이 알려지고 관광지로 주목받기 시작하면서 본토 사람들이 집을 구매하기 시작했다. 수요는 높았지만 호바트의 집은 한정되어 있었다. 마치 한국의 제주도처럼 관광객이 갑작스럽게 늘어나면서 중국인이 땅을 사들였던 형태와 비슷할 수도 있겠다. 

호바트의 집값은 무섭게 올라가기 시작했다. 집주인들은 관광객이 늘어나자 렌트 대신 에어비앤비로 수익을 올리기 원했다. 렌트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었으므로. 그 결과 호바트의 공실률은 낮아질 대로 낮아진 상태가 되었다. 당시 남편과 나는 이런 현실을 전혀 모르고 호바트로 향하며 집과 직장을 구할 생각에 들떠 있었다.


우리의 기대는 첫 번째 하우스 인스펙션부터 깨졌다. 집 앞에 장사진을 이루고 있는 차와 사람들을 보면서 우리는 뒤통수를 맞은듯했다. 멜버른에서 집을 구하러 다닐 때 보다 더 많은 숫자의 사람들이었다. 우리가 집을 보고 돌아갈 때도 집을 보려고 새로운 사람들이 계속 밀고 들어왔다. 우리는 도시 외곽으로 눈을 돌려 집을 찾아다녔지만, 경쟁률은 절대 낮아지지 않았다.


남편이 호바트에서 공부하던 시절, 그때는 렌트 신청서도 지금처럼 복잡하지 않았고 렌트비도 비싸지 않았다고 한다. 렌트를 하려던 사람도 지금만큼 많지 않아서 집을 구하는 일은 별로 어렵지 않았다고 했다. 시간은 지구 상 거의 모든 것을 변화시킨다. 사람과 장소도 그렇다. 사람은 각자의 길을 따라가고, 장소는 장소대로 운명을 따라 변해간다. 남편이 호바트를 떠난 후 자신의 시간을 보내며 새로운 경험과 함께 변했듯, 호바트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둘이 다시 만났을 땐 서로 전혀 모르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남편과 내가 집을 보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어느 물가 벤치에 그냥 말없이 앉아 있었던 기억이 난다. 나는 호주 정착이 이렇게 어렵냐는 생각을 했다. 남편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자신의 기억에 배반당한 느낌일까.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느꼈을까. 남편은 호주에서 태어나 현지인으로 살다가, 호주를 떠나 10년 동안 한국에서 외국인으로 살았다. 호주 생활 10년 공백이 이제 다시 이어지려고 하고 있었다. 나도 경험해 본바 끊어진 것을 연결하는 작업은 무엇이 되었든 힘들었다. 나는 대학 입학 후 2년을 방황하다 자퇴를 하고 8년을 더 방황하다가 재입학을 해서 결국 졸업을 했다. 재입학을 하면 처음 입학했을 때의 학번을 다시 부여받는데, 이 때문에 웃픈 상황이 꽤 많이 생겼다. 교양 수업 첫 시간에 담당교수님들은 출석을 부르다가 내 차례가 되면 출석부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내 학번을 믿을 수가 없다는 듯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며 나를 일으켜 세워 물어보는 일이 다반사였다. 가장 다루기 힘든 부분은 공백기 동안 내세울 만한 일을 하지 않았다는 자격지심이었다. 내 선택을 후회하진 않았지만, 막상 학기 내내 학과 사무실에서 조교 생활을 하고 있거나 다른 위치에 있는 입학 동기를 대하는 일엔 늘 용기가 필요했다.


호바트에서 2달을 머물다 결국 남편과 나는 남편의 친가가 있는 '버니 Burnie' 로돌아왔다. 인구가 겨우 2만 명 정도인 버니는 부동산 사정이 여유로웠다. 우리는 생각보다 집을 쉽게 얻었고 직장도 구하며 그때부터 어느 정도 안정을 취할 수 있었다. 남편이 말하길 버니는 변한 게 별로 없다고 했다. 내가 보기에도 모든 시골이 그러하듯 이곳은 옛날 분위기가 화석처럼 남아있는 듯 보였다. 덕분에 남편은 한국에서 한동안 잃어버렸던 스몰토크의 감각을 서서히 되찾으며 현지인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지금 나는 남편이 한국에서 외국인으로 살았듯 호주에서 외국인으로 살고 있다. 한국 드라마를 보는 건 꽤 중요한 유흥거리다. 아 요즘엔 저런 옷을 입는구나. 이런 사회 분위기가 있구나. 드라마를 통해 현재의 한국을 상상한다. 분명 드라마 속 한국은 현실이 아닐 텐데도 그리워한다. 남편이 다시 호주 사회에 적응하는 과정을 보니 나도 한국에 나중에 돌아가면 쉽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알아두자. 드라마 속 한국도 내 기억 속의 한국도 미래에 마주칠 한국이 아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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