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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365": 보관용

by 꼬불이

[인터뷰365] 조규원 드라마·시나리오 작가


- AI 활용, "MBTI가 다른 보조작가 몇 명과 함께 일하는 기분"

- AI 스토리텔링 ‘창작 진입장벽의 민주화’로 누구나 스토리텔링 수월해져

- 인간–AI 협업...인간이 시작하고, 인간이 끝내는 '퐁당퐁당 방식' 이상적

- "글 마무리 AI에게 맡기면 인간미 없는 ‘노잼’ 글 됩니다"


AI스토리텔링은 인공지능(AI)이 사람과 협력하거나 스스로 이야기를 창작하는 기술 및 개념을 의미합니다. 스토리텔링 작법서 '4줄이면 된다'의 저자 이은희 감독이 AI스토리텔링에 관심 있는 다양한 분야의 인물을 만나 4가지 주제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응답을 듣는 새로운 형식의 인터뷰 시리즈를 선보입니다. <편집자주>




인터뷰365 이은희 인터뷰어(/감독 겸 작가) = 어느 날, 최근 펴낸 저서 ‘4줄이면 된다’를 바탕으로 북 워크숍을 마친 뒤 밝은 미소와 장난기 가득한 얼굴의 한 남성이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그는 “기성 작가들도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는 말이 너무 공감됐다”고 말했다. 그는 알고 보니 2009년 KBS 드라마 ‘아이리스(IRIS)’와 2019년 MBC 드라마 ‘이몽’을 집필한 조규원 작가였다.



이 북 워크숍은 AI 스토리텔링 수업의 일환으로, ‘코어의 힘’을 기르기 위해 진행된 자리였다. 이미 저명한 기성 작가가 AI 스토리텔링을 배우기 위해 직접 워크숍을 찾아다니는 열정은 무척 인상 깊었다. 다양한 대화를 나누며 알게 된 것은, 조규원 작가는 이미 AI를 스토리텔링의 보조 도구로 활발히 활용하며 여러 가지 실험을 통해 확장적 가능성을 탐색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와의 만남을 통해 실제 작가들이 생성형 AI를 어떻게 활용하는지 생생하게 들어보았다.



- 작가의 길은 어떻게 걷게 됐나요. 현재 근황도 궁금합니다.



"‘스토리’라는 일은 만화에서 시작했습니다. 대본소용 만화 스토리를 쓰면서 출발해 출판만화를 거쳤고, 이후에는 애니메이션과 영화 시나리오 작업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런데 저는 늘 ‘침몰하는 배에 올라탄 듯한 위기감’을 느끼곤 했습니다. 그래서 드라마 '서동요'에서 보조작가로 일하며 ‘스토리’라는 일을 다른 방식으로 이어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지상파 드라마 '이몽'을 집필하면서도 다시 한 번 큰 위기를 체감했고 이어서 넷플릭스가 국내에 들어오는 모습을 보며 또다시 위기감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최근에는 한·일 합작 OTT 드라마 극본 작업과 더불어, ‘한국방송작가협회 교육원’에서 작가 지망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병행하면서 동시에 완전히 새로운 콘텐츠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습니다."



Ⅰ. 여정과 경험

- "AI, 스토리텔링 보조 도구로 활발히 활용...정보수집·캐릭터 설정에 도움"

- "낮아진 스토리텔링 진입장벽...더 높은 완성도 커트라인 요구될 것"

- AI 스토리텔링 분야에서 어떤 경험과 성과를 이뤘는지요?



"제가 느낀 가장 큰 성과는 ‘아이디어 확장’과 ‘자료 조사 효율성’입니다. 얼마 전부터 저는 브런치를 통해 ‘트리트먼트노블’이라는 작업을 공개하고 있습니다. ‘트리트먼트노블’은 문체의 아름다움보다는 스토리라인을 강조하는 글로, 쉽게 말해 트리트먼트와 소설의 중간쯤에 위치한 글입니다. 드라마를 위한 회별 트리트먼트를 조금 더 디테일하게, 소설처럼 풀어보려는 저만의 새로운 글쓰기 도전이지요.



첫 시도는 우주정거장에서 2년째 혼자 지내는 한 남자의 이야기였습니다. 우주 환경, 생명 유지 시스템, 심리적 고립감, 과학적 디테일 등 방대한 자료 조사가 필요했는데, 예전 같으면 보조작가를 두고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했을 겁니다. 하지만 AI를 활용하니 기본적인 정보 수집과 1차 정리가 비약적으로 빨라졌습니다. 검증은 여전히 제 몫이었지만, 전체 소요 시간이 크게 줄어든 거죠.



또한 캐릭터 설정에서도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예를 들어 AI에게 “특정 트라우마를 가진 40대 남성 주인공의 내면적·외면적 장애를 연결하는 구체적인 설정”을 요청하면, 심리학적 근거와 다양한 변형안을 제시해 줍니다. 제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관점에서 캐릭터의 모순과 딜레마를 날카롭게 짚어내기도 했습니다. 마치 MBTI가 다른 보조작가 몇 명과 함께 일하는 기분이랄까요."



- 그 과정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나 순간이 있으셨다면 소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새로운 드라마의 캐릭터를 개발할 때였습니다. 처음에는 전형적인 ‘복수에 사로잡힌 주인공’을 구상했는데, AI에게 “관객은 이해할 수 있지만 결코 공감해서는 안 되는 악인의 조건”을 물었습니다.



그러자 “목적은 선하지만 방법에서 선을 넘어서는 캐릭터”라는 답을 내놓았죠. 이를 바탕으로 브레인스토밍을 이어가 탄생한 캐릭터가 ‘불치병에 걸린 딸을 살리기 위해 장기 매매 조직을 운영하는 아버지’였습니다. 사랑이라는 순수한 동기에서 출발했지만, 무수한 무고한 피해자를 양산하는 모순적 존재였던 거죠.



놀라운 건 AI가 이 캐릭터의 심리적 합리화 과정까지 단계별로 제시했다는 점입니다.



1. 첫 번째 희생자에 대한 죄책감

2. 딸에 대한 책임감으로 인한 자기 합리화

3. 점진적 도덕적 마비

4. 최종적 괴물화



이 논리적 여정을 보며 저는 곧바로 한 인물을 떠올렸습니다. 바로 제가 가장 좋아하는 드라마 '브레이킹 배드'의 월터 화이트입니다. “가족을 위해 마약을 제조하는 고등학교 화학교사”라는 설정 말이지요. 누군가는 “AI가 결국 기존 캐릭터의 변주만 만든 것 아니냐”고 실망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오히려 확신을 얻었습니다. 사람을 감동시키는 보편적인 플롯은 몇 개 되지 않는다는 제 생각이 증명된 셈이었으니까요."



- AI 스토리텔링이 대중과 산업에 미친 가장 큰 영향은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AI 스토리텔링이 가져온 가장 큰 변화는 ‘창작 진입장벽의 민주화’라고 생각합니다. 과거에는 스토리텔링이 재능과 경험, 그리고 방대한 지식을 요구하는 전문 영역이었죠. ‘작가’라고 하면 “우와~” 하던 시절이 있었잖아요. 하지만 이제는 의지만 있다면 누구나 AI의 도움으로 스토리 구조와 캐릭터 개발에 접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는 한국방송작가협회 교육원에서 수강생들을 가르치면서 그 변화를 직접 목격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기초적인 스토리 구조와 캐릭터 설정을 만드는 데만 몇 달이 걸렸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AI의 도움 덕분에 몇 주 만에 캐릭터 아크를 설계할 수 있습니다.



물론 진입장벽이 낮아진 만큼, 앞으로는 오히려 더 높은 완성도의 커트라인이 요구될 것입니다. 기본적인 수준은 AI가 대신해주기 때문에, 결국 철학·심리학·문학·인간에 대한 깊이를 담은 작품들이 인공지능 시대에 더욱 빛을 발할 거라 생각합니다. 특히 장르물에서는 전문 자료 조사와 고증 작업에서 AI의 역할이 절대적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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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작가입니다. '한국 방송작가협회 교육원' 강의중. 글쓰기에 꼭 필요한 핵심작법을 정리해 포스팅. 새로운 글쓰기 시도 중인 작가 '꼬불이' 의 잡스러운 공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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