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나리오 작법서 파헤치기
시학. 드디어 TOP10 의 마지막인 시학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The Poetics’ '시학' 은 기원전 335년경에 쓰였다. 2,300년이 지났다. 하지만 여전히 모든 드라마 이론의 원점이다.
로버트 맥키가 읽었다. 블레이크 스나이더도. 크리스토퍼 보글러도. 시드 필드도. 존 요크도.
그들이 발견한 것들. 3막 구조, 캐릭터 아크, 카타르시스, 플롯의 통일성.
아리스토텔레스가 이미 다 썼다. 기원전에.
‘시학’은 26장으로 구성됐다. 얇다. 하지만 농축됐다. 모든 페이지가 핵심이다.
원래는 두 권이었다. 비극론과 희극론. 하지만 희극론은 사라졌다. 전쟁으로. 화재로. 시간으로.
지금 우리가 갖고 있는 건 비극론뿐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철학자였다. 플라톤의 제자. 알렉산더 대왕의 스승. 그는 아테네에서 비극을 봤다.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 아이스킬로스. 당대 최고의 극작가들. 그리고 분석했다.
“왜 이 비극들은 관객을 울리는가?”
과학자처럼. 해부학자처럼 파고들었다. 그리고 발견했다. 패턴과 법칙을.
그리고 기록했다. 그것이 ‘시학’ 이다.
‘시학’ 의 가장 강력한 한 방.
“비극은 연민과 공포를 통해 카타르시스를 만든다.”
무슨 말일까?
비극은 우리를 울린다. 하지만 그 눈물은 치유이자 정화다.
우리는 주인공이 고통받는 걸 보고 연민을 느낀다. “불쌍해.”
우리는 주인공이 실수하는 걸 보고 공포를 느낀다. “나도 저럴 수 있어.”
그리고 주인공이 파멸하거나 깨달을 때. 우리는 정화된다. 카타르시스.
“그래, 인간은 불완전해. 하지만 그것도 인간이야.”
이게 비극의 목적이다. 오락이 아니다. 치유다.
또 ‘브레이킹 배드’
월터 화이트.
우리는 그에게 연민을 느낀다. 폐암. 가족. 무력함.
우리는 그가 선택하는 걸 본다. 마약. 거짓말. 살인. 공포를 느낀다. “나도 저런 선택을 할 수 있어.” 그리고 마지막. 월터는 죽는다. 스스로 선택한 길의 끝에서.
우리는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권력은 부패한다. 선택엔 대가가 있다.”
치유됐다. 정화됐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그대로.
또 ‘왕좌의 게임’
네드 스타크. 명예로운 사람.
우리는 그를 응원한다.하지만 그는 참수당한다. 시즌1 9화.
우리는 충격받는다. 연민과 공포. “선한 사람도 죽는구나.” 그리고 시리즈는 계속된다. 복수. 배신. 죽음. 재탄생. 마지막. 브랜 스타크가 왕이 된다. 예상 못 한 결말.
우리는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권력은 아무도 예상 못 한 곳에서 온다.”
아리스토텔레스가 2,300년 전에 말했다. “비극은 예상을 뒤엎지만 필연적이어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비극의 6가지 요소를 제시한다.
플롯 (Mythos) - 가장 중요하다. 사건의 배열.
캐릭터 (Ethos) - 행동하는 사람들.
사상 (Dianoia) - 주제. 의미.
언어 (Lexis) - 대사.
노래 (Melos) - 음악. 분위기.
장면 (Opsis) - 시각적 요소.
이 순서가 중요하다. 플롯이 첫 번째다.
“캐릭터는 행동을 통해 드러난다. 하지만 행동은 플롯을 만든다.” 맥키가 말한 “구조는 캐릭터다”의 원조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롯을 세 가지로 나눈다.
단순 플롯 (Simple Plot) - 반전 없이 직선으로 간다.
복합 플롯 (Complex Plot) - 반전(Peripeteia)과 발견(Anagnorisis)이 있다.
고통의 플롯 (Pathos) - 주인공이 파멸한다.
가장 좋은 건? 복합 플롯이다.
“최고의 비극은 행운에서 불행으로 반전되며, 발견의 순간을 포함한다.”
‘오이디푸스 왕’ 을 보자.
오이디푸스는 왕이다. 행복하다. 테베를 구하려 한다. 하지만 발견한다. 자기가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했다는 걸.
반전. 발견. 파멸.
완벽한 비극.
‘밀리언달러 베이비’
매기 피츠제럴드. 권투선수. 꿈을 이룬다. 챔피언이 된다.
반전. 더티 파이트. 목이 부러진다.
발견. 프랭키가 말한다. “Mo Cuishle. 내 피. 내 심장.”
그녀는 죽음을 선택한다. 프랭키가 돕는다.
고통. 파멸. 하지만 존엄.
카타르시스. 우리는 운다. 하지만 치유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하마르티아(Hamartia) 를 강조한다. 비극적 결함. 오역이다. 정확하게는 “실수” “판단 착오”.
주인공은 선하다. 하지만 완벽하지 않다. 실수한다. 그 실수가 파멸을 부른다.
“주인공은 극도로 선하거나 악하지 않아야 한다. 평범한 사람이어야 한다. 그래야 관객이 공감한다.”
또 ‘대부’
마이클 코를레오네. 전쟁영웅. 선하다. 가족 사업(마피아)과 거리를 둔다.
하지만 실수한다. 아버지를 지키려다 살인을 저지른다.
하마르티아. 그 실수가 그를 마피아 보스로 만든다.
파멸? 영혼의 파멸이다.
마지막 장면. 케이가 문 밖에 서 있다. 문이 닫힌다. 마이클은 돈 코를레오네가 됐다. 하지만 인간성을 잃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페리페테이아(Peripeteia) 를 말한다. 반전.
“행동이 반대 방향으로 바뀌는 순간. 예상치 못했지만 필연적이어야 한다.”
왜 안나오나 했지? ‘록키’ 다.
록키는 아폴로와 싸운다. 질 거라고 모두 생각한다. 하지만 15라운드까지 버틴다. 반전. 예상 밖. 하지만 필연적이다. 록키는 훈련했다. 의지가 있었다.
판정은 진다. 하지만 진짜 승리는 그의 것이다.
반전 안의 반전. 아리스토텔레스가 좋아할 플롯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아나그노리시스(Anagnorisis) 를 말한다. 발견. 인식.
“무지에서 앎으로의 전환. 주인공이 진실을 깨닫는 순간.”
지겹지만 오늘이 마지막 ‘그래비티’ 를 보자.
라이언 스톤. 딸을 잃었다. 삶의 의지를 잃었다. 우주에서 죽으려 한다. 하지만 코왈스키의 환영이 나타난다. 그녀는 깨닫는다.
“살아야 해. 딸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발견. 인식.
그녀는 지구로 돌아온다. 해변에 선다. 걷는다. 새로운 삶.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발견의 힘.
아리스토텔레스는 통일성을 강조한다. 시간, 장소, 행동의 통일.
“비극은 하루 안에 일어나야 한다. 한 장소에서. 하나의 행동을 따라.”
이게 고전적 통일성의 원칙이다. 너무 엄격하다. 현대 영화는 대부분 안 따른다.
하지만 정신은 남았다. “플롯은 집중돼야 한다. 산만하면 안 된다.”
맥키가 말한 “주인공은 하나다”의 원조.
보글러가 말한 “모든 씬은 주인공의 여정을 따라야 한다”의 원조.
스나이더가 말한 “A 스토리와 B 스토리”의 원조.
오랜만에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러닝타임 122분. 거의 실시간에 가깝다. 텍사스 사막. 한정된 공간. 루웰린 모스의 여정. 하나의 행동. 돈을 훔친다. 쫓긴다. 죽는다.
시간, 장소, 행동의 통일. 엄격하진 않지만 집중됐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인정할 만한 플롯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관객의 역할도 말한다.
“비극은 관객을 위한 거다. 관객이 연민과 공포를 느껴야 한다.”
이게 내가 강조하는 세 번째 원칙이다. 주인공은 응원받아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더 구체적이다. “주인공은 우리와 비슷해야 한다. 너무 좋지도, 너무 나쁘지도 않아야 한다.”
‘소프라노스’
토니 소프라노. 마피아 보스. 사람을 죽인다. 하지만 공황장애가 있다. 심리치료를 받는다. 가족을 사랑한다. 오리를 사랑한다.
우리는 그를 응원한다. 왜? 그는 우리와 비슷하다. 불완전하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완벽한 주인공.
아리스토텔레스와 내 7가지 원칙의 연결.
1. 주인공은 하나다.
아리스토텔레스: “비극은 하나의 행동을 따라야 한다. 하나의 주인공.”
‘시학’ 8장. “플롯은 통일돼야 한다. 시작, 중간, 끝이 하나로 연결돼야 한다.”
이게 단일 주인공 원칙의 기원이다. 맥키, 필드, 스나이더, 보글러. 모두 이 원칙을 따른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 배웠다.
2. 주인공은 초반에 장애를 갖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 “주인공은 행복에서 불행으로 떨어진다. 또는 무지에서 앎으로 나아간다.”
‘시학’ 13장. “최고의 비극은 행운에서 불행으로의 변화다.”
주인공은 초반에 뭔가 부족하다. 무지, 결함, 착오.
오이디푸스 - 무지 (자기가 누구인지 모른다)
월터 화이트 - 무력감 (폐암, 가족 부양)
마이클 코를레오네 - 정체성 (가족 사업과 거리를 둔다)
장애가 있어야 여정이 시작된다.
3. 주인공은 응원받아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 “주인공은 우리와 비슷해야 한다. 연민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시학’ 13장. “주인공은 극도로 선하지도, 극도로 악하지도 않아야 한다. 평범한 사람이어야 한다.”
이게 관객 유대의 원칙이다.
록키 - 선하다. 친절하다. 하지만 실패자다. 우리는 응원한다.
매기 - 꿈을 꾼다. 열심히 한다. 우리는 응원한다.
월터 - 가족을 위해 한다. 처음엔. 우리는 이해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2,300년 전에 말했다.
4. 장애와 초목표는 외면적/내면적으로 구분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명시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암시한다.
‘시학’ 6장. “캐릭터는 행동을 통해 드러난다. 하지만 사상(주제)도 있어야 한다.”
행동 = 외면적 초목표
사상 = 내면적 초목표
오이디푸스 - 외면: 테베를 구한다. 내면: 자기 정체성을 찾는다.
월터 - 외면: 돈을 번다. 내면: 힘을 얻는다.
마이클 - 외면: 가족을 지킨다. 내면: 정체성을 찾는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구분을 알고 있었다.
5. 내면적 초목표가 결국 주제다.
아리스토텔레스: “비극은 행동뿐 아니라 사상도 담아야 한다.”
‘시학’ 6장. “사상은 캐릭터가 뭔가를 증명하거나 일반적 진실을 말할 때 나타난다.”
주제 = 내면적 초목표가 해결될 때 드러난다.
‘밀리언달러 베이비’ - 외면: 챔피언 되기. 내면: 존엄. 주제: 존엄은 승리보다 중요하다.
‘브레이킹 배드’ - 외면: 돈. 내면: 힘. 주제: 권력은 부패한다.
‘대부’ - 외면: 가족 지키기. 내면: 정체성. 주제: 권력은 영혼을 파괴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주제를 강조했다. “비극은 교훈을 준다.”
6. 주인공은 180도 변한다.
아리스토텔레스: “반전(Peripeteia)과 발견(Anagnorisis)이 있어야 한다.”
‘시학’ 11장. “최고의 비극은 행운에서 불행으로, 또는 무지에서 앎으로 변한다.”
이게 캐릭터 아크다.
오이디푸스 - 무지에서 앎으로. 왕에서 망명자로.
월터 - 무력함에서 힘으로. 교사에서 마약왕으로.
마이클 - 전쟁영웅에서 마피아 보스로. 아웃사이더에서 돈으로.
180도 변화. 아리스토텔레스가 필수라고 말했다.
7. 서브텍스트(빙산 이론)
아리스토텔레스는 직접 말하지 않는다. 또 암시한다.
‘시학’ 17장. “시인은 장면을 눈앞에 그려야 한다. 마치 관객이 직접 보는 것처럼.”
대사 아래 의미. 행동 아래 감정.
‘대부’ 마지막 장면. 문이 닫힌다. 대사 없다. 하지만 모든 걸 말한다. “마이클은 변했다. 돌아올 수 없다.”
‘밀리언달러 베이비’. “Mo Cuishle.” “내 피, 내 심장.” 프랭키의 사랑. 말하지 않았지만 보여줬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보여주기”의 원조.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력.
‘시학’은 르네상스 시대에 재발견됐다. 15-16세기.
셰익스피어가 읽었다. 직접인지 간접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영향받았다. 분명히.
‘햄릿’ 을 보자.
하마르티아 - 햄릿의 우유부단함. 실수.
페리페테이아 - 극중극 장면. 클로디어스가 반응한다. 반전.
아나그노리시스 - 햄릿이 깨닫는다. “복수는 더 많은 죽음을 부른다.”
카타르시스 - 모두 죽는다. 하지만 진실이 밝혀진다. 포틴브라스가 온다. 새로운 시작.
아리스토텔레스의 모든 원칙이 들어있다.
프랑스 고전주의 시대. 17세기.
코르네유, 라신. 그들은 ‘시학’을 교과서로 삼았다. 시간, 장소, 행동의 통일. 엄격하게 지켰다.
‘페드라’(라신). 하루. 한 장소. 페드라의 금지된 사랑.
완벽한 고전 비극. 아리스토텔레스가 승인했을 작품.
독일 계몽주의. 18세기.
레싱. ‘함부르크 연극론’. ‘시학’을 재해석했다. 괴테, 실러. 그들도 읽었다. 영향받았다.
‘파우스트’.
하마르티아 - 파우스트의 욕망.
페리페테이아 - 악마와의 계약.
아나그노리시스 - 깨달음. 카타르시스 - 구원.
아리스토텔레스가 2,000년 후에도 작동했다.
20세기 할리우드.
시드 필드. ‘시학’을 읽었다. 3막 구조를 발견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이미 말했어. 시작, 중간, 끝.”
로버트 맥키. ‘시학’을 인용한다. 자주. “구조는 사건의 선택과 배열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다.”
블레이크 스나이더. ‘시학’을 읽었다. 인정한다. “Save the Cat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인공은 연민을 받아야 한다’에서 왔다.”
크리스토퍼 보글러. ‘시학’을 기초로 삼는다. “영웅의 여정도 결국 아리스토텔레스의 반전과 발견이다.”
존 요크. ‘시학’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5막 구조도 아리스토텔레스의 플롯 이론에서 나왔다.”
21세기.
‘브레이킹 배드’. 빈스 길리건은 ‘시학’을 알고 있었을까? 월터 화이트는 완벽한 비극적 영웅이다. 하마르티아, 페리페테이아, 아나그노리시스, 카타르시스. 다 있다.
‘왕좌의 게임’. 조지 R. R. 마틴은 ‘시학’을 읽었을까? 분명히. 네드 스타크의 죽음. 붉은 결혼식. 반전의 연속. 하지만 필연적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그대로.
‘대부’. 코폴라와 푸조. 그들도 ‘시학’을 알고 있었다. 마이클 코를레오네. 완벽한 비극적 주인공. 선하지만 실수한다. 파멸한다. 영혼이.
‘시학’은 여전히 살아있다.
모든 작법서가 ‘시학’으로 돌아간다.
맥키의 구조론. 스나이더의 비트 시트. 보글러의 영웅의 여정. 필드의 3막. 요크의 5막.
모두 아리스토텔레스의 변주곡이다.
왜?
인간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여전히 비극을 본다. 연민과 공포를 느낀다. 카타르시스를 원한다.
나는 20년 가까이 작가 생활을 했다.
수십 권의 작법서를 읽었다. 맥키, 스나이더, 보글러, 필드, 요크, 에그리, 골드만, 이글레시아스.
모두 훌륭했다. 도움이 됐다. 하지만 결국 돌아온 곳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이였다.
작가 지망생 여러분에게.
작법서를 읽는다고 글이 좋아지진 않는다. 나도 알아.
읽을 때마다 무릎을 친다. “맞아, 이거야!”
그리고 다음날 아침, 내 시나리오를 펼친다. 여전히 엉망이다.
왜?
이론과 실전 사이엔 거대한 틈이 있다. 그 틈을 메우는 건 결국 작가 자신이다.
하지만. 작법서는 지도다. 나침반이다.
길을 잃었을 때. 2막이 무너졌을 때. 캐릭터가 살아나지 않을 때. 작법서를 펼쳐라. 맥키, 스나이더, 보글러, 필드, 요크, 아리스토텔레스.
그들이 길을 알려준다. 모든 길을 아는 건 아니다. 하지만 네비게이션 처럼 방향은 알려준다.
그리고 쓴다. 매일. 좋든 나쁘든.
첫 초고는 항상 쓰레기다. 두 번째도. 세 번째부터 괜찮아진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첫 페이지부터 뜯어고친다. 플롯 포인트가 약하다고 느끼면. 캐릭터 아크가 안 보인다고 느끼면. 작가의 삶은 그런 것이다.
포기하지 마라.
아리스토텔레스는 2,300년 전에 말했다. “비극은 연민과 공포를 통해 카타르시스를 만든다.” 우리도 그걸 만들 수 있다. 스토리로. 캐릭터로.
록키가 링에 오를 때. 라이언이 지구로 돌아올 때. 월터가 고백할 때. 관객이 울었다. 카타르시스. 우리도 만들 수 있다. 그 순간을.
매일 아침 책상 앞에 앉아라. 10시든 새벽 2시든.
쓴다. 고친다. 다시 쓴다.
거절받는다. 익숙해진다. 다음 걸 쓴다.
언젠가. 마법이 일어난다.
‘내일을 향해 쏴라’처럼. ‘프린세스 브라이드’처럼. ‘브레이킹 배드’처럼. 아무도 예상 못 한 성공. 골드만이 말했다. “Nobody knows anything.”
우리는 계속 쓴다. 계속 만든다. 계속 믿는다. 다음번엔 될 거라고. 마법이 일어날 거라고.
'작법서 TOP10' 시리즈를 마무리하며 말한다.
10권의 작법서. 모두 훌륭하다. 모두 도움이 된다. 하지만 시작은 하나다. 아리스토텔레스.
플롯. 캐릭터. 반전. 발견. 카타르시스. 2300년 전 그리스인이 이미 다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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