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나리오 작법서 파헤치기
William Goldman 'Adventures in the Screen Trade'
William Goldman의 'Adventures in the Screen Trade'는 1983년에 나왔다. 작법서가 아니다. 회고록이다. 할리우드에서 20년간 시나리오를 팔아먹고 산 작가의 고백.
두 번의 오스카. 수백만 달러. 그리고 수없이 많은 실패.
골드만은 숨기지 않는다. 성공도. 실패도. 할리우드의 추악함도.
이 책의 가장 유명한 문장.
"Nobody knows anything."
아무도 모른다. 뭐가 될지. 뭐가 안 될지.
스튜디오 임원들도. 프로듀서들도. 감독들도. 작가들도.
모두 추측할 뿐이다. 확신은 없다.
골드만은 할리우드의 전설이다.
'내일을 향해 쏴라' (Butch Cassidy and the Sundance Kid, 1969) - 첫 오스카 각본상.
'대통령의 음모' (All the President's Men, 1976) - 두 번째 오스카 각색상.
'프린세스 브라이드' (The Princess Bride, 1987) - 원작 소설도 직접 씀.
하지만 그도 실패했다. 많이. 자주.
그리고 그 실패들을 이 책에 다 썼다. 솔직하게. 때로는 자조적으로.
'내일을 향해 쏴라'를 보자.
1969년. 폴 뉴먼과 로버트 레드포드. 서부극. 버디 무비.
골드만이 시나리오를 썼다. 스튜디오는 확신이 없었다. "이게 될까?"
감독 조지 로이 힐도 반신반했다. "너무 느슨한 거 아니야?"
하지만 개봉했다. 대박이었다.
아카데미 각본상. 주제가 "Raindrops Keep Fallin' on My Head" 안 들어 본 사람이 있을까?
왜 성공했을까?
아무도 몰랐다. 개봉 전엔.
아무도 모른다. 개봉 후에도.
캐릭터가 좋아서? 대사가 재치있어서? 두 배우의 케미스트리?
다 맞다. 하지만 충분한 설명이 아니다.
같은 요소를 가진 영화가 망하기도 한다.
이게 골드만의 핵심이다. "Nobody knows anything."
'프린세스 브라이드'
골드만은 이 이야기를 두 딸을 위해 썼다. 소설로. 1973년.
판타지. 모험. 로맨스. 유머.
그리고 15년 후 영화로 만들었다. 1987년. 직접 각본 썼다.
스튜디오는 의심했다. "판타지는 안 팔려."
배급사는 걱정했다. "너무 동화 같아."
개봉 첫 주. 박스오피스 5위. 실망스러웠다.
하지만 입소문이 났다. 천천히. 꾸준히.
비디오로 나왔다. 폭발했다. 컬트 클래식이 됐다.
30년이 지난 지금. '프린세스 브라이드'는 전설이다.
"As you wish." "Inconceivable!" "Hello. My name is Inigo Montoya."
모두가 외운다.
왜 실패했다가 성공했을까?
아무도 몰랐다. 1987년엔.
아무도 예상 못 했다. 지금의 명성을.
'대통령의 음모'를 보자.
워터게이트 사건. 닉슨 대통령. 두 기자. 워싱턴 포스트.
실화다. 엄청난 소재다.
하지만 영화로 만들기 어렵다. 액션이 없다. 총격도 없다. 추격도 없다.
그냥 기자들이 전화하고 인터뷰하고 타자 치는 이야기.
골드만이 각색했다. 현장감을 살렸다. 긴장감을 만들었다.
1976년 개봉. 성공. 아카데미 각색상.
더스틴 호프만과 로버트 레드포드. 환상의 호흡.
하지만 스튜디오는 개봉 전까지 불안했다. "이게 재미있을까?"
개봉하고도 놀랐다. "관객이 이렇게 몰릴 줄은..."
"아무도 몰랐다."
골드만이 말하는 할리우드의 진실.
스튜디오는 공식을 원한다. "지난번에 성공한 영화처럼 만들어."
하지만 공식은 없다.
'스타워즈'가 대박났다. 모두가 SF를 만들었다. 대부분 망했다.
'죠스'가 성공했다. 모두가 괴수 영화를 만들었다. 망했다.
'대부'를 보자.
파라마운트는 반대했다. "마피아 영화는 안 팔려."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를 해고하려 했다. 여러 번.
말론 브란도 캐스팅도 반대했다. "끝난 배우야."
알 파치노도 반대했다. "너무 작아. 마이클은 키 큰 배우가 해야 해."
하지만 코폴라는 버텼다. 영화를 완성했다.
1972년 개봉. 역사상 가장 위대한 영화 중 하나가 됐다.
스튜디오 임원들은 시사회에서 울었다. 기쁨의 눈물.
그들은 몰랐다. 끝까지.
'브레이킹 배드'를 보자.
빈스 길리건이 AMC에 피칭했다. "고등학교 화학 선생님이 마약왕이 되는 이야기."
AMC는 의심했다. "누가 그걸 보겠어?"
시즌1. 시청률 처참했다.
시즌2. 조금 나아졌다.
시즌3. 입소문이 났다.
시즌4. 폭발했다.
시즌5. 전설이 됐다.
2013년 종영. 역사상 가장 위대한 TV 시리즈 중 하나.
파일럿 에피소드는 NFL 플레이오프와 겹쳐서 약 140만 명만 시청.
AMC는 몰랐다. 2008년엔.
빈스 길리건도 확신 못 했다. "될까?"
아무도 몰랐다.
하지만 만들었다. 믿고. 버티고.
그리고 됐다.
골드만은 작가의 무력함도 말한다. 할리우드에서 작가는 가장 약하다. 시나리오를 쓴다. 팔린다. 그리고 통제권을 잃는다. 감독이 바꾼다. 배우가 바꾼다. 프로듀서가 바꾼다. 스튜디오가 바꾼다.
작가는 볼 수밖에 없다. 자기 작품이 뜯어지는 걸. 골드만도 당했다. 여러 번.
'마라톤 맨' (Marathon Man, 1976). 골드만의 원작 소설. 직접 각색.
감독 존 슐레진저가 대사를 바꿨다. 장면을 잘랐다. 순서를 바꿨다. 골드만은 항의했다. 소용없었다. 영화는 성공했다. 하지만 골드만의 것은 아니었다. 완전히는.
'밀리언달러 베이비'를 보자.
폴 해기스가 각본 쓰고 감독했다. 2004년.
F.X. 툴의 단편 소설 원작. 해기스가 각색했다.
하지만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감독했다. 주연도 했다. 이스트우드는 거장이다. 통제권을 쥔다.
해기스의 각본은 출발점이었다. 완성품은 이스트우드의 것이었다.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 여우주연상.
해기스도 각본상을 받았다. 하지만 영화는 이스트우드의 비전이었다.
이게 작가의 한계다. 할리우드에서. 한국은 더 심하다.
하지만 예외도 있다.
'록키' 실베스터 스탤론이 시나리오를 썼다. 1976년.
스튜디오가 사려고 했다. 큰돈을 줬다. 조건이 있었다. "주연은 다른 배우로."
스탤론은 거부했다. "내가 록키를 한다. 아니면 안 판다."
스튜디오는 망설였다. 스탤론은 무명이었다. 하지만 결국 동의했다. 적은 예산으로.
스탤론이 주연했다. 영화는 대박났다.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후보. 스탤론은 스타가 됐다.
이건 작가가 통제권을 지킨 케이스다. 드물다.
스탤론은 위험을 감수했다. 돈을 포기했다. 자기 배역을 지켰다.
그리고 이겼다. 내가 록키를 좋아하는 이유는 단지 영화 작품 때문만이 아니다. 스텔론은 인생의 운을 이때 다 쓰......(이하 생략).... 파라마운트 플러스 '털사킹' 은 그래도 괜찮다.
골드만이 말하는 좋은 시나리오의 조건.
구조? 중요하다. 하지만 충분하지 않다.
캐릭터? 필수다. 하지만 그것만으론 안 된다.
대사? 물론. 하지만 대사가 전부는 아니다.
그럼 뭔가?
골드만은 말한다. "좋은 시나리오는 진실을 담는다. 인간에 대한. 삶에 대한."
'내일을 향해 쏴라'의 진실은 뭔가?
우정. 시대의 종말. 자유로운 삶의 끝.
부치와 선댄스는 시대착오적 존재다. 서부 개척 시대는 끝났다. 법과 질서가 온다. 그들은 도망친다. 볼리비아로. 하지만 거기서도 끝난다. 수십 명의 군인에게 포위된다.
마지막 장면. 그들은 뛰쳐나간다. 총을 쏘며. 화면이 멈춘다. 총소리만 들린다.
우리는 안다. 그들은 죽었다. 하지만 보지 않는다.
이게 진실이다. 모든 시대는 끝난다. 영웅도 늙는다. 자유도 한계가 있다.
하지만 그들은 자기 방식대로 끝낸다. 도망치지 않고. 항복하지 않고.
이 진실이 관객을 울린다.
골드만과 내 7가지 원칙의 연결.
1. 주인공은 하나다.
골드만은 이걸 명확히 한다.
'내일을 향해 쏴라' - 부치가 주인공이다. 원래 제목은 "The Sundance Kid and Butch Cassidy"였다. 하지만 폴 뉴먼이 스타였으니까 순서를 바꿨다.
'프린세스 브라이드' - 웨슬리가 주인공이다. 버터컵은 프린세스지만 웨슬리의 여정을 따라간다.
'대통령의 음모' - 두 기자가 있지만 우드워드가 중심이다. 레드포드가 주연이다.
주인공은 명확해야 한다. 관객이 누구를 따라가는지 알아야 한다.
2. 주인공은 초반에 장애를 갖고 있다.
'내일을 향해 쏴라' - 부치와 선댄스는 무법자다. 시대가 바뀌고 있다. 그들의 방식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외면적 장애 - 법의 추격. 포시가 쫓는다.
내면적 장애 - 변화에 대한 두려움. 새로운 세상에 적응 못 함.
'프린세스 브라이드' - 웨슬리는 가난하다. 버터컵을 사랑하지만 줄 게 없다.
외면적 장애 - 돈 없음. 지위 없음.
내면적 장애 - 자기 가치에 대한 의심.
'대통령의 음모' - 우드워드는 신참이다. 번스타인은 경쟁자다.
외면적 장애 - 정보 부족. 증거 부족. 권력의 방해.
내면적 장애 - 두려움. 실패에 대한 걱정.
3. 주인공은 응원받아야 한다.
골드만의 주인공들은 모두 매력적이다.
부치는 재치있다. 유머가 있다. 친구에게 충성한다.
웨슬리는 사랑한다. 진심으로. 목숨을 건다.
우드워드는 진실을 추구한다. 포기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들을 응원한다. 왜? 그들은 선하다. 용감하다. 믿을 만하다.
골드만은 말한다. "주인공이 완벽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관객이 투자할 수 있어야 한다."
4. 장애와 초목표는 외면적/내면적으로 구분된다.
'내일을 향해 쏴라'
외면적 초목표 - 포시를 피한다. 볼리비아로 간다. 살아남는다.
내면적 초목표 - 자유를 지킨다. 자기 방식대로 산다.
'프린세스 브라이드'
외면적 초목표 - 버터컵을 구한다. 험퍼딩크 왕자를 이긴다.
내면적 초목표 - 사랑을 증명한다. 죽음도 이긴다.
'대통령의 음모'
외면적 초목표 - 워터게이트 사건을 파헤친다. 증거를 찾는다.
내면적 초목표 - 진실을 밝힌다. 권력에 맞선다.
5. 내면적 초목표가 결국 주제다.
'내일을 향해 쏴라'의 주제 - 자유. 시대의 종말. 자기 방식대로 끝내기.
'프린세스 브라이드'의 주제 - 진정한 사랑. 죽음도 이기는 힘.
'대통령의 음모'의 주제 - 진실의 힘. 권력도 무너뜨릴 수 있다.
골드만은 말한다. "주제는 설교가 아니다. 이야기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있어야 한다."
6. 주인공은 180도 변한다.
'내일을 향해 쏴라'
Opening - 부치와 선댄스는 무적이다. 자신감 넘친다.
Ending - 그들은 포위됐다. 죽음을 안다. 하지만 끝까지 싸운다.
변화 - 자만에서 수용으로. 하지만 존엄은 지킨다.
'프린세스 브라이드'
Opening - 웨슬리는 가난한 농부다. 머슴이다.
Ending - 웨슬리는 공포의 해적 로버츠다. 영웅이다.
변화 - 무력함에서 힘으로. 사랑이 그를 변화시켰다.
'대통령의 음모'
Opening - 우드워드는 조심스럽다. 증거만 믿는다.
Ending - 우드워드는 용감하다. 위험을 감수한다.
변화 - 안전에서 용기로.
7. 서브텍스트.
골드만은 서브텍스트의 달인이다.
'내일을 향해 쏴라' 마지막 장면. 부치와 선댄스가 뛰쳐나간다. 화면이 멈춘다. 세피아 톤.
대사 없다. 총소리만.
서브텍스트 - 그들은 죽는다. 하지만 자기 방식대로. 이게 자유다.
'프린세스 브라이드'에서 웨슬리가 말한다. "As you wish."
겉으로는 - "알겠습니다."
안으로는 - "사랑합니다."
버터컵도 안다. 관객도 안다. 이게 서브텍스트다.
'대통령의 음모'에서 딥 스로트가 말한다. "Follow the money."
겉으로는 - 돈의 흐름을 추적하라.
안으로는 - 권력의 부패를 파헤쳐라.
이게 서브텍스트다.
골드만이 말하는 작가의 생존법.
1. 쓴다. 매일. 좋든 나쁘든.
"나는 매일 아침 10시에 책상에 앉는다. 영감이 오든 안 오든."
2. 리라이트한다. 끝없이.
"첫 초고는 항상 쓰레기다. 두 번째도. 세 번째부터 괜찮아진다."
3. 거절을 받아들인다.
"할리우드에서 'No'는 일상이다. 익숙해져야 한다."
4. 통제할 수 없는 걸 걱정하지 않는다.
"시나리오를 팔면 끝이다. 이제 그들 거다. 받아들여라."
5. 다음 걸 쓴다.
"한 프로젝트가 망해도 다음이 있다. 계속 써라."
골드만은 2018년에 세상을 떠났다. 향년 87세.
하지만 그의 시나리오는 여전히 살아있다.
'내일을 향해 쏴라'는 여전히 버디 무비의 교과서다.
'프린세스 브라이드'는 여전히 컬트 클래식이다.
'대통령의 음모'는 여전히 저널리즘 영화의 표준이다.
할리우드는 잔인하다. 불공정하다. 예측 불가능하다.
하지만 매력적이다. 중독적이다.
아무도 예상 못 한 성공.
Nobody knows anything.
리는 계속 쓴다. 계속 만든다. 계속 믿는다. 다음번엔 될 거라고. 마법이 일어날 거라고.
골드만도 그랬다. 평생.
그래서 그는 전설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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