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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ing for Emotional Impact"

시나리오 작법서 파헤치기

by 꼬불이

할리우드는 감정 전달 비즈니스다


Karl Iglesias의 'Writing for Emotional Impact'는 2005년에 나왔다. 그리고 조용히 스며들었다. 맥키나 스나이더처럼 폭발적인 반응은 없었다.


감정.


구조가 아니다. 캐릭터 아크도 아니다. 플롯 포인트도 아니다.


관객이 느끼는 감정. 이게 전부다.


이글레시아스는 20년 넘게 할리우드에서 스토리 분석가로 일했다. 거대한 헐리우드 제작사 수천 편의 시나리오를 읽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구조가 완벽해도 감정이 없으면 실패한다."



이글레시아스가 던지는 핵심 한 방.


"할리우드는 감정 전달 비즈니스다. (Hollywood is in the emotion-delivery business.)"


무슨 말일까?


관객은 구조를 보러 오지 않는다. 3막이 정확한지 확인하러 오지 않는다. 플롯 포인트가 30페이지에 있는지 세러 오지 않는다.


느끼러 온다.


두려움. 기쁨. 슬픔. 분노. 사랑. 희망.


이글레시아스는 말한다. "시나리오는 감정의 청사진이다."


맥키가 구조를 말했다면, 이글레시아스는 감정을 말한다. 둘 다 옳다. 하지만 이글레시아스는 우리가 자주 잊는 것을 상기시킨다.


관객은 느낀다. 생각하지 않는다.






이글레시아스는 감정을 세 가지 레벨로 나눈다.


첫 번째 레벨: 지적 연결 (Intellectual Connection)


관객이 이야기를 이해한다. 논리적으로. "아, 주인공이 왜 저렇게 행동하는지 알겠어."


하지만 이건 충분하지 않다. 이해는 감동이 아니다.



두 번째 레벨: 감정적 연결 (Emotional Connection)


관객이 주인공과 감정적으로 연결된다. "나도 저런 적 있어. 이해해."


공감. 이게 핵심이다.



세 번째 레벨: 본능적 연결 (Visceral Connection)


관객이 생리적으로 반응한다. 심장이 뛴다. 눈물이 난다. 주먹을 쥔다.


이게 최고 레벨이다. 생각을 넘어선다. 통제할 수 없다.






'그래비티'


라이언 스톤 박사가 우주에서 떠돈다. 산소가 떨어진다. 공황.


우리는 이해한다. (지적 연결) "산소 없으면 죽는다."
우리는 공감한다. (감정적 연결) "무섭겠다."
우리는 숨을 참는다. (본능적 연결) 우리도 함께 질식한다.


이게 이글레시아스가 말하는 감정 전달이다. 화면 속 캐릭터의 감정이 관객에게 전염된다.


어떻게?


이글레시아스는 수백 가지 기법을 제시한다. 이 책은 거의 기법 카탈로그다. 하지만 핵심은 간단하다.


"독자를 캐릭터의 감정 속으로 밀어넣어라."




'브레이킹 배드'


월터가 스카일러에게 고백한다. "나는 그걸 나 자신을 위해서 했어. 그게 좋았어. 난 그걸 잘했고, 진짜로 살아있다는 느낌이었어."


우리는 이해한다. (지적) 월터는 가족을 위해서가 아니었다.
우리는 충격받는다. (감정적) 그는 변했다. 완전히.
우리는 전율한다. (본능적) 이 고백은 우리 안의 어떤 진실을 건드린다.


이글레시아스가 말하는 것. 진실한 감정은 관객을 뚫고 들어간다. 거짓은 튕겨낸다.


그래서 우리는 밤새 대사를 고친다. "이게 진짜일까? 관객이 느낄까?" 자문하며.


그리고 다음날 첫 페이지부터 뜯어고친다. 감정이 약하다고 느끼면.






이글레시아스는 구체적인 기법들을 제시한다.



시각적 글쓰기 (Show, Don't Tell)


"존은 슬펐다." (X)

"존은 창밖을 보며 눈물을 닦았다." (O)


당연한 얘기 같다. 하지만 우리는 자주 잊는다. 나는 이걸 "설명하지 말고 보여줘라!" 라고 가르친다.




감각적 디테일 (Sensory Details)


단순히 "비가 온다"가 아니라 "빗물이 유리창을 두드린다. 규칙적인 리듬. 최면 같은."


관객이 듣게 만든다. 보게 만든다. 느끼게 만든다.



대비 (Contrast)


행복한 장면 바로 다음에 비극을 넣는다. 또는 반대로.


대비가 감정을 증폭시킨다.


'대부' 세례식 장면을 보자. 마이클이 대부로서 조카에게 세례를 준다. 교회. 성스러운 음악. 신부가 묻는다. "사탄을 거부하는가?"


마이클이 대답한다. "거부합니다."


컷. 마이클의 부하들이 적들을 죽인다. 동시다발 암살. 폭력. 피.


다시 교회. 마이클은 여전히 차분하다. 경건하다.


대비. 성스러움과 폭력. 이게 감정을 극대화한다. 우리는 전율한다.



타이밍 (Timing)


감정도 타이밍이다. 너무 빨리 주면 효과가 없다. 너무 늦으면 관객이 떠난다.


'록키' 마지막 장면. 15라운드 끝. 록키는 에이드리언을 부른다.


"에이드리언!"


그녀는 관중석에서 링으로 뛰어온다. 사람들을 헤치고.


카메라는 그녀의 얼굴을 잡는다. 눈물. 웃음.


록키가 다시 부른다. "에이드리언!"


그들은 포옹한다.


이 장면은 몇 초 늦춰졌다. 관객이 기다리게 만들었다. 그래서 더 강렬하다.


타이밍. 이글레시아스는 이걸 강조한다. 감정은 준비가 필요하다.






이글레시아스는 특정 감정을 어떻게 만드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긴장감 (Tension)


정보의 비대칭. 관객이 캐릭터보다 더 많이 안다. 또는 더 적게 안다.


'노팅힐'을 보자. 윌리엄은 안나에게 고백하려 한다. 하지만 그녀의 남자친구가 문을 연다.


우리는 안다. 윌리엄은 모른다.


긴장감. 우리는 숨을 죽인다.



서스펜스 (Suspense)


시한폭탄. 관객이 안다. 뭔가 터질 거라고. 언제인지는 모른다.


'다크나이트' 병원 폭파 장면. 조커가 버튼을 누른다. 아무 일도 안 일어난다. 한 번 더 누른다. 한 번 더.


우리는 기다린다. 숨을 참는다.


폭발.


서스펜스. 기다림의 고통. 이글레시아스가 말하는 감정 조작.



공포 (Fear)


미지의 것. 보이지 않는 것.


'에이리언' 1편을 보자. 에이리언은 대부분 보이지 않는다. 그림자. 소리. 상상.


상상이 더 무섭다.


이글레시아스는 말한다. "공포는 관객의 상상력을 이용한다."



슬픔 (Sadness)


상실. 후회. 돌이킬 수 없음.


'밀리언달러 베이비' 마지막. 프랭키는 매기의 생명유지장치를 끈다. 그녀가 원한 대로.


그는 사라진다. 혼자. 어디론가.


우리는 운다. 왜? 상실. 프랭키는 딸처럼 사랑한 사람을 잃었다. 그리고 스스로를 잃었다.


슬픔. 이글레시아스는 말한다. "슬픔은 돌이킬 수 없는 상실에서 온다."



기쁨 (Joy)


성취. 연결. 사랑.


'어바웃 타임' 마지막. 팀은 아버지와 마지막 산책을 한다. 해변. 하늘. 파도.


아버지가 말한다. "기억해. 평범한 하루하루가 실은 기적이야."


우리는 미소 짓는다. 눈물도 난다. 기쁨과 슬픔이 섞인다.


이게 최고의 감정이다. 복합적인 것. 단순하지 않은 것.



이글레시아스와 내 7가지 원칙의 연결.



1. 주인공은 하나다.


이글레시아스는 말한다. "관객은 한 사람의 감정 여정을 따라간다."


'그래비티' - 라이언
'브레이킹 배드' - 월터
'록키' - 록키


주인공이 느끼는 감정이 관객에게 전달된다. 주인공이 여럿이면 감정이 분산된다.



2. 주인공은 초반에 장애를 갖고 있다.


장애는 감정을 만든다.


라이언 - 트라우마. 우리는 그녀의 고통을 느낀다.
월터 - 무력감. 우리는 그의 절망을 느낀다.
록키 - 자존감 부족. 우리는 그의 외로움을 느낀다.


이글레시아스는 말한다. "감정은 결핍에서 온다. 완벽한 캐릭터는 감정을 만들지 못한다."



3. 주인공은 응원받아야 한다.


응원은 감정적 투자다.


우리가 록키를 응원하면 그의 고통이 우리 고통이 된다. 그의 승리가 우리 승리가 된다.


이글레시아스는 말한다. "감정 전달의 첫 단계는 관객이 캐릭터를 신경 쓰게 만드는 것이다."


신경 쓰지 않으면 느끼지 않는다.



4. 장애와 초목표는 외면적/내면적으로 구분된다.


외면적 장애는 플롯을 만든다. 내면적 장애는 감정을 만든다.


라이언 - 외면적 (우주에서 살아남기)
내면적 (삶의 의지 되찾기)



내면적 장애가 더 강력하다. 왜? 더 보편적이기 때문이다.


우주에 갇혀본 사람은 없다. 하지만 삶의 의미를 잃어본 사람은 많다.


이글레시아스는 말한다. "보편적 감정이 관객을 연결한다."



5. 내면적 초목표가 결국 주제다.


주제는 감정으로 전달된다. 설명이 아니라.


'록키'의 주제 - 자기 증명. 우리는 이걸 록키가 링에 서 있을 때 느낀다. 설명이 필요 없다.


'브레이킹 배드'의 주제 - 선택과 대가. 우리는 이걸 월터의 고백을 들을 때 느낀다.


이글레시아스는 말한다. "주제는 머리로 이해하는 게 아니라 가슴으로 느끼는 것이다."



6. 주인공은 180도 변한다.


변화는 감정의 증거다.


록키 - Opening: 자신을 의심한다. Ending: 자신을 증명했다.


우리는 이 변화를 느낀다. 보는 게 아니라.


이글레시아스는 말한다. "캐릭터 아크는 감정의 궤적이다."



7. 서브텍스트


서브텍스트는 감정의 언어다.


'대부' 마지막 장면. 케이가 문 밖에 있다. 부하들이 마이클에게 고개 숙인다. 문이 닫힌다.


대사 없다. 하지만 우리는 느낀다. 마이클은 더 이상 케이의 남편이 아니다. 돈이다.


이글레시아스는 말한다. "가장 강력한 감정은 말하지 않는 것에서 온다."






이글레시아스가 말하는 감정 전달의 최고 기법.


예측 불가능성 (Unpredictability)


관객이 예상하는 걸 주지 마라. 비틀어라.


'버스터즈: 거친 녀석들'을 보자. 우리는 예상한다. 브래드 피트 부대가 히틀러를 죽일 거라고.


하지만 아니다. 쇼샤나가 죽인다. 극장에서. 영화 속 영화로.


예상 밖. 충격. 감정 폭발.



침묵 (Silence)


가장 큰 소리는 침묵이다.


'노 컨트리'를 보자. 안톤 쉬거가 동전을 던진다. 주유소 주인에게. 생사를 건다.


침묵. 긴장. 우리는 숨소리마저 죽인다.


동전이 떨어진다.


침묵이 감정을 증폭시킨다.



반복 (Repetition)


같은 것을 반복하되 의미를 바꾼다.


'프린세스 브라이드'에서 웨슬리가 말한다. "As you wish."


처음엔 - 복종.
나중엔 - 사랑.


같은 대사. 다른 감정.


이글레시아스는 말한다. "반복은 감정의 진화를 보여준다."






'Writing for Emotional Impact'는 시나리오 기술서다. 작법서가 아니라.


맥키가 구조를 말했다.
스나이더가 비트를 말했다.
필드가 3막을 말했다.


이글레시아스는 묻는다. "그래서 관객이 느끼나?"


느끼지 않으면 소용없다.


구조가 완벽해도, 비트 시트가 정확해도, 3막이 명확해도, 관객이 느끼지 않으면 실패다.


이글레시아스는 우리에게 상기시킨다.


시나리오는 영화의 청사진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감정의 청사진이다.


관객은 플롯을 기억하지 않는다. 감정을 기억한다.


'록키'를 보고 몇 년이 지나도 우리는 기억한다. 록키가 링에 서 있던 그 순간. 우리도 함께 섰던 그 감정.
'브레이킹 배드'를 보고 시간이 지나도 우리는 기억한다. 월터의 고백. 그 전율.
'그래비티'를 보고 세월이 흘러도 우리는 기억한다. 라이언이 물 위로 올라오던 순간. 숨을 쉬던 그 해방감.


감정. 이게 전부다.


그래서 우리는 밤새 장면을 고친다. 대사를 다듬는다. "관객이 느낄까?" 자문하며.


이글레시아스가 준 질문. 가장 단순하지만 가장 어려운 질문.


그리고 다음날 아침 첫 페이지부터 뜯어고친다. 감정이 살아있지 않다고 느끼면.


오늘도 이렇게 작가의 삶이 이어진다.


하지만 이글레시아스 덕분에 우리는 안다. 뭘 찾아야 하는지.


감정. 진짜 감정. 관객의 가슴을 뚫고 들어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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