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글쓰기 장르의 탄생
극본 쓰기만 하던 내가 '소설을 쓸수 있을까?'
소설이랍시고 끄적거리다가 내 글이 기존 소설가들에 비해 수사가 적고 심리묘사의 비중이 적다는 걸 알았다. 그야 당연하게 극본에선 등장인물의 심리묘사를 '독백' 으로 하지 말라고 배우고 가르치기 때문.
그래서 읽는 동안 재밌는 영상화를 염두에 둔 새로운 장르가 있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까지 도달했다.
내가 만든 합성어 '트리트먼트노블' (Treatment Novel).
극본가에게는 무겁고, 소설가에게는 가볍게 느껴질 새로운 장르. 이것은 완전히 새로운 글쓰기 장르의 선언일지도.
기존 콘텐츠 제작 과정을 보자.
1단계: 시놉시스 - 1-2페이지 분량의 줄거리 요약.
2단계: 트리트먼트 - 10-20페이지 분량의 구체적 서술.
3단계: 시나리오/극본 - 실제 촬영용 대본.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트리트먼트는 너무 건조하다.
"A가 B를 만난다. C가 일어난다. D가 해결된다." 이런 식의 사무적 서술. 읽는 재미가 없다.
반면 소설은 너무 부담스럽다.
문학적 완성도를 요구하고, 심리 묘사와 환경 묘사에 너무 많은 지면을 할애한다.
콘텐츠 제작자들은 딜레마에 빠진다.
"기획 검토용으로는 트리트먼트가 필요하지만, 읽는 재미는 없다."
"재미있게 읽으려면 소설이 필요하지만, 너무 무겁다."
그 중간지점이 바로 트리트먼트노블이다.
소설처럼 현학적인 문장을 추구하지 않는다. 대신 영화적 문체로 쓴다.
기존 소설 방식: 그는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도시의 불빛들이 비에 젖은 유리창에 반사되어 마치 별들이 물속에서 일렁이는 것처럼 몽환적으로 흔들렸다. 그 순간 그의 마음속에는 어린 시절의 기억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트리트먼트노블 방식: 김수호는 창밖을 내다봤다. 도시의 불빛이 비에 젖은 창문에 반사되고 있었다. "이제 끝이군." 그는 책상 위의 사진을 집어들었다. 10년 전 사진. 모든 것이 시작된 그때의 사진.
트리트먼트의 구조적 명확성을 유지한다. 불필요한 지연 없이 핵심 사건들을 연결한다.
트리트먼트와 달리 캐릭터들의 대사가 구체적으로 들어간다. 이는 나중에 극본 작업 시 매우 유용하다.
한 장면, 한 장면이 영화의 씬처럼 구성된다. 카메라 앵글까지 상상할 수 있을 정도로 구체적이다.
넷플릭스, 디즈니플러스, 웨이브 등 OTT 플랫폼의 등장으로 콘텐츠 제작 속도가 빨라졌다. 기획 단계에서 빠른 검토와 의사결정이 필요하다.
기존 방식: 시놉시스 → 트리트먼트 → 극본 → 제작 검토.
새로운 방식: 트리트먼트노블 → 극본 → 제작 검토.
단계가 줄어들었다. 효율성이 높아졌다.
하나의 IP로 드라마, 영화, 웹툰, 게임을 동시에 제작하는 시대다. 트리트먼트노블은 모든 매체의 베이스가 될 수 있다.
웹툰 작가: "스토리보드 짜기 전에 트리트먼트노블로 전체 흐름을 확인하겠습니다.".
게임 기획자: "시나리오팀에서 트리트먼트노블 기반으로 퀘스트 스토리를 만들어주세요."
MZ세대는 긴 호흡의 문학소설보다 빠른 전개의 웹소설을 선호한다. 트리트먼트노블은 이런 독자들의 니즈에 부합한다.
시나리오: 촬영용 대본. 기술적 지시사항 포함. 읽는 재미 제한적.
트리트먼트노블: 서술형 문장. 읽는 재미 극대화. 영상화 전 검토 최적화.
소설: 문학적 완성도 추구. 심리 묘사와 환경 묘사 비중 높음.
트리트먼트노블: 영화적 구성. 액션과 대사 중심. 빠른 전개.
라이트노벨: 특정 독자층(오타쿠) 타겟. 일본 문화 기반.
트리트먼트노블: 전 연령층 타겟. 범용적 스토리텔링.
웹소설: 연재 중심. 길이 제한 없음. 장르 소설 중심.
트리트먼트노블: 완결 중심. 적정 길이. 영상화 전제.
트리트먼트노블은 단순한 글쓰기 기법이 아니다. 이것은 변화하는 콘텐츠 환경에 대한 창작자의 적응이다. 더 빠르게, 더 효율적으로, 더 재미있게 이야기를 전달하려는 노력의 결과다.
소설가는 "너무 가볍다"고 말할 수 있다.
시나리오 작가는 "너무 무겁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중간지점에서 새로운 가능성이 열릴지 모른다.
빠르게 읽히면서도 깊이 있는 이야기.
가볍게 시작해서 무겁게 끝나는 경험.
기획서이면서 동시에 읽을거리인 텍스트.
트리트먼트노블은 이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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