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내 생각인데요
“넌 어떤 사람이 좋아?”
“주관이 있는 사람. 주관이 뚜렷한데, 수용을 잘하는 사람“
“주관이 뚜렷한데 어떻게 수용을 잘해?ㅋㅋ”
어릴 때부터 생각이 많아 조심스러운 애였다. 그때는 생각이 많은 내가 혼란스러웠고, 그래서 더 주관이 뚜렷한 사람을 멋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20대 때 있었던 일이다. 함께 인턴을 하던 동료는 주말에 등산을 가자고 했다.
아니, 난 빠질게.
"생각하는 척도 안 하고, 어떻게 묻자마자 0.1초 만에 대답하냐."
"나는 등산을 좋아하지도 않고, 며칠 생각해 봐야 어차피 똑같으니까."
서운함이 역력했던 그의 뒷모습을 보며 맘은 불편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새벽같이 산을 오르는 것도,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하는 것도 싫었다.
등산 안 갔어.
전날까지 다들 취소하더니, 물결이는 당일에 연락도 안되더라.
"네가 고민도 안 하고 거절할 때는 엄청 서운했는데, 그렇게 다들 취소하고 안 올 거면 처음부터 너처럼 거절하는 게 나은 것 같아."
미숙한 모습의 우리는, 상대에게 의도치 않게 상처를 준다.
"너도 주관이 뚜렷하잖아."
“그런가?”
주관이 뚜렷한 사람이 되고 싶었지만, 내가 주관이 뚜렷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내 안의 복잡한 흐름을 정리하고 있었으니까.
내가 좋고 싫은 것, 내가 불편함을 느끼는 지점, 내가 추구하는 가치. 거창한 건 아니어도 내 안의 뭔가를 정리하려 끊임없이 생각했다.
대단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지만, 특정 주제에 대해 나의 생각은 어느 정도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오래전 내가 생각했던 주관이란, TV 속 유명인들이 단호하게 말하는 모습, 자기 입장을 또렷하게 전하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막상 알고 보니, 지내다 보니, 내 기준을 작게라도 표현할 수 있는 것이면 됐다.
결국 주관이라는 건, 나에 대한 탐색의 결과가 아닐까.
주관이 없는 사람은 중심이 없어 떠밀리기 쉽고, 주관만 있고 포용력이 없는 사람은 벽을 세운다. 자기 기준을 아는 사람만이 타인의 기준도 인정해 줄 수 있다.
포용은, 남에게 본인의 기준을 강요하지 않는 것에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