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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피 읽는 여자 Jul 16. 2022

취향이 닮은 사람들의 커피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취향

커피를 좋아하다 보니, 만나는 사람들도 커피를 어지간하게는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2009년, 카페의 인테리어를 맡겼던 오기사로부터 카페 로고 디자이너를 소개받았다.


"제가 아끼는 후밴데 일 잘해요.'


역시나 오기사의 안목대로 로고 작업을 아주 멋지게 해 주었다. 카페를 오픈하고, 디자이너가 종종 혼자 혹은 지인을 데리고 카페에 들렀다. 당시 카페는 전주에 있었고, 디자이너는 서울에 살았다.  


2009년 전주에 오픈 한 카페 스케치, 출처: 오기사 블로그

어느 날, 오기사가 내게 물었다.


"00이랑 친해요?"

"네?"


순간 나는 당황했다. 내가 과연 00 디자이너랑 친하다고 할 수 있는가,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질투 섞인 단도직입적인 질문에 대한 나의 답은,


"제가 00을 좋아해요."

이런 앙증맞은 대답을 쏟아내고, 무안해서 어쩔 줄 몰라하고 있었다.  

오기사는,


"히잉..." 하고 울듯이 웃었다. 좋아서 어쩔 줄 모르는 당나귀 신음 소리였다.


"나도 00 좋아해요."

  

김소연 시인이 <마음 사전>에서 '좋아하다'에 대해 적은 글이 저 상황에 딱 맞았다.

어쩌면 더 지나 봐야 알 수 있겠다는 마음 상태이거나,
이미 헤치고 지나온 것에 대해 온정을 표하는 예의 바른말이거나,
적극적으로 판단 짓기에는 미온적인 상태이거나,
더 강하고 자세한 호감의 어휘를 비껴가기 위한 방법적 거절이거나......

-김소연 시인, <마음 사전> '좋아하다' 중에서


00 디자이너는 내가 결혼을 하고 카페를 그만두고 부산으로 갔을 때도, 군산에 있을 때도 나를 찾아와 주었다. 함께 커피를 마셨다.


경기도로 이사 오고 나서는, 디자이너와 좀 더 자주 만나게 되었다. 만나서 커피를 마시고 책 이야길 한다. 그게 다다. 그게 다여서 이 관계는 15년째 지속되고 있다.  



둘이 자장 이야길 가끔씩 한다.

우리는 같은 자장 속에 있다고.

그건 취향이라는 카테고리가 같다는 의미일 터이다.


커피를 좋아하고, 책을 좋아하고, 궁극적으로 아름다운 것들을 좋아한다.


안드레아스 거스키, 2010 <남극>, 바다 연작 일부

얼마 전, 아모레퍼시픽 미술관에서 안드레아스 거스키의 전시회를 함께 봤다. 저 작품을 둘이 오래 들여다봤다. 설명을 보니, 거스키가 1년의 시간을 들여 손톱만 한 크기의 타일이라 부르는 개별의 고해상도 위성사진을 그래픽 작업으로 조합했다고 한다. 실제의 남극보다 작가의 작품이 더 현실감 있게 다가오는 느낌을 눈에 넣고, 마음속 렌즈로 마음껏 당겨봤다. 함께 아름다움을 즐겼다.


디자이너는 여행을 좋아하는데, 여행 계획을 짤 때 커피 맛있는 카페를 먼저 찾고 숙소를 정한다는 얘길 들었다. 디자이너는 여행운이 좋은 편인데, 커피가 맛있는 카페가 인근에 있으면 숙소도 좋고, 식당들도 맛있다고 했다. 여행 중, 맛 좋은 커피 집을 발견하면 사진을 보내주기도 하는데 그때마다 그녀의 커피 취향에 감탄한다.


전시회를 갈 때도, 역시나 디자이너는 미술관 인근 맛있는 커피집을 검색해놨다. 아모레퍼시픽 미술관 인근 커피집, 내 머릿속에 자동으로 떠오르는 '헬카페'. 역시나 그녀의 입에서도 헬카페가 흘러나온다. 맛집은 당연히 헬카페를 기준으로 찾는다. 헬카페가 대각선으로 보이는 2층 초밥집은 가격도, 맛도, 풍경도 기막히게 좋았다.



얼마 전엔, 그녀가 서촌 여행을 제안했다. 맛있는 커피집, 빵집...... 서촌 거리를 설렁설렁 걸으며 시간과 공간에 담긴 취향을 나누었다.


서촌 에코레 카페 앤 그로서리

커피가 맛있다는 서촌의 한 카페. 식사도 할 수 있고, 그로서리도 팔고. 가정집처럼 아늑하고, 커피와 음료도 둘의 입맛에 잘 맞았다.  


서촌 카페 앤 그로서리

서촌 빵 맛집에 가서 빵도 먹고, 커피도 마시고. 책 이야길 나눴다. 디자이너가 선물한 한정현 작가의 신간 '마고', 그녀가 진즉부터 미군정기의 탐정 소설인데 재밌다고 추천해 준 책이다. 근래 보지 못한 신선하고 흥미로운 소재였다. 책을 만드는 세상에 대한 이야길 나누며 서촌의 오후를 마음껏 누렸다.


서촌 베이커스 퍼센트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취향도 닮는 걸까?


+후일담

2022년 7월, 리모컨을 누르다  평소 한 번도 본 적 없는 <톡파원25시>라는 프로그램에 멈췄다. 좀 보다가 채널을 돌리려는 찰나 어라! 오기사가 나왔다. 아이에게 거실에 있는 그림 작가가 바로 저 사람이라고 말했더니,

오기사가 클라이언트라고 선물해 준 족자 그림 100/54

"엄마, 저 사람이랑 친해?"

"친한 건 아니고, 엄마가 저 사람한테 카페 인테리어를 의뢰했어. 엄마는 그냥 클라이언트일 뿐이지."


아이와 대화를 나누는 사이 엠시의 질문에 오기사는 엉뚱한 대답을 했다. 방송쟁이들 틈에서 정신 못 차린 오기사는 엠시의 질문은 듣지 못한 채 작가가 든 보드판의 질문에 대한 대답을 했던 것이다. 오기사는 웃음거리가 됐다. 나도 신나게 웃었다.


"나중에 오기사 만나면 저거 놀려먹어야지. 흐하흐하!"


나도 모르게 사악한 마음을 말로 뱉어버렸다.


"엄마, 친한 거 맞네. 그니까 놀릴 생각 하지."


친한 건 아닌데. 놀리고는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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