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커피 읽는 여자 Oct 17. 2022

카페인에 발목 잡히다

커피 라이프의 하프타임

아침에 눈 뜨는 이유가, '커피를 마시기 위해서' 였던 삶에 균열이 생겼다.


열두 살부터 시작됐던 커피 라이프에 하프타임이 찾아왔다. 전혀 생각지 못했던 (나에게는) 강압적인 커피 하프타임에 어쩔 줄 모르겠다. 30년 커피 라이프, 카페인에 목 잡힐 줄 정녕 몰랐다.



카페인 반란군


지난 5월부터 몸은, 카페인 반란을 일으켰다. 카페인은 대역죄인으로 '나'라는 나라에 대한 반역을 일으켰다. 평소 카페인은 나의 분신과도 같은 존재였다. 밤에 잠을 이루면서 다음 날 모닝커피를 떠올리면 천근만근이 된 고달팠던 하루라는 몸뚱이를 안고도 달게 잠을 잘 수 있었다. 천근이, 만근이의 무게가 아직도 몸뚱어리에 그대로 묻어있더라도 다음 날 눈을 뜰 수 있는 이유는, 커피를 마시기 위해서였다. 아침에 마시는 커피는, 오랜 인연과 만나는 것처럼, 설레고 반가웠다. 고작, 하루도 안 되어 내 몸에 들어오는 커피라는 액체가 그토록 좋았다.


첫 모닝커피를 시작으로, 하루 종일 커피를 끌어안고 살았다. 드립 커피, 에스프레소, 라테...... 그래도 불면이라든지 뚜렷한 카페인 부작용은 30년 인생 동안 전연 나타나지 않았다. 다만, 카페인 부작용으로 인한 손떨림은 당연하게 여기고 살았다.


그런데, 올봄 5월 왼쪽 눈밑 떨림을 시작으로 왼쪽 팔, 다리에 마비 증세가 왔다. 의사는 뇌졸중을 의심했다. 진단 결과 뇌졸중은 아니었지만, 마그네슘 부족이라며 마그네슘을 처방해줬다. 마그네슘 90알을 정말 하루도 빼놓지 않고, 열심히 먹었는데 차도가 (거의) 없었다. 낫지 않았다. 그제야 나는 몸이 이상하다는 걸, 내가 이제 젊지 않다는 걸 '몸'으로 실감했다.


나는 '중년'이 되었다.


커피가 문제였다. 카페인이 문제였다. 커피 양을 파격적으로 줄이기 시작했다. 커피를 아예 끊을 수는 없었다. 30년 커피 인생이 그렇게 한 번에 단념 될 수는 없었다. 하루에 한 잔을 마시고, 그다음에는 3일에 한 번, 일주일에 한 번. 이런 식으로 줄여나갔다.


마그네슘을 먹어도 해결되지 않던 왼쪽 눈밑 떨림, 왼쪽 팔, 다리 마비 증세는 (아조 조금씩) 호전되기 시작했다. 카페인을 조절한 지 이제 6개월이 되어간다. 왼쪽 팔, 다리 마비 증세는 확연하게 없어졌다. 왼쪽 눈 밑 떨림 증세는 커피를 전연 마시지 않으면 괜찮은데 한 잔이라도 마시면 미세하게 떨린다. 역시나 떨림은 카페인이 원인이었다.


일상에서 커피가 사라진 삶


커피가 삶이던 나에게, 커피가 사라지니 한동안 멍했다. 카페인의 주요 부작용인 두통은 없었으나, 졸림과 무기력이 찾아왔다. 특히나, 졸림은 힘들었다. 아이들의 엄마로서의 삶, 재택근무자로서의 삶, 집안일을 돌보는 주부로서의 삶이 너무나 힘겨웠다. 이런 삶에 틈틈이 책을 읽어왔는데,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책을 읽고 싶은 마음이 사라진 게 아니라 책을 들면 졸음과 무기력이 몸뚱어리를 앞도 해버렸다.


행복하지 않았다.


커피 한 잔이 내게 주던 행복이 사라졌다. 커피로 이어가던 일상이 무너져버렸다. 3일을 보내고, 5일을 보내고, 일주일을 보내고... 이만하면 카페인 부작용에 적응할 법 한데, 30년이란 세월 동안 카페인에 지배당했던 내 몸뚱어리는 아직도 반란 중이었다.


2주 차에 접어들어서야, 카페인 반란군들의 수가 현저하게 줄어든 걸 느낄 수 있었다. 커피를 마시지 않아도 졸림과 무기력이 더 이상 몸뚱어리를 점령하지 않았다.


커피를 마시면, 내가 날카로워진다는 걸 커피를 마시지 않은 후에야 알았다. 날카로워진 뇌로 이성적인 일을 하기에는 좋았을 테지만, 아이들에게는 상처를 많이 주었다. 이성적인 일을 하느라, 아이들의 요구를 무시했기 때문이다. 카페인이 사라진 일상은 이성이 아니라 감성이 앞서는 삶이 되었다.


커피를 잘 마시던 시절에는, 커피를 못 마시는 사람들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커피전문점에서 굳이 커피가 아닌 차나 다른 음료를 찾는 사람들을. 지금은 그들의 마음이 내 마음이 되었다. 카페인 부작용이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 알기에.


또한, 70이 넘은 나이에도 여전히 커피를 잘 마시는 커피 인생 대선배들의 인생에 경의를 표한다. 카페인 관리를 정말 잘 하신 분이거나, 분명 커피 신의 선택을 받은 분들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인생 트랙의 절반을 돌아온 나에게 커피는 하프타임을 명령했다. 발목 잡혔다 생각했는데, 쉬니 커피가 더 귀하게 느껴진다.


이 한 몸, 죽을 때까지 커피 한 잔 온전히 마시기 위해 커피 하프타임을 잘 쉬련다.





매거진의 이전글 취향이 닮은 사람들의 커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