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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피 읽는 여자 Aug 31. 2023

넌 정서가 참 안정적이야

40대 선배가 20대 후배에게 한 말

"그럼, 잘난 선배님이 하세요."

"너! 너! 너! 지금 뭐라고 했어?"




대학 4학년 여름방학이 되니 취업 걱정에 한여름에도 몸을 웅크리고 다녔다. 물론 마음도 잔뜩 쪼그라들어 있었다. 6월에 시작된 여름 방학은 어느덧 8월을 향해 가고, 졸업 마지막 학기가 코앞가지 쫓아오고 있었다. 취업을 해야 하는데, 나는 내가 뭘 해야 할지, 뭘 하고 싶은지 잘 몰랐다. 답답한 마음에 전공 교수님을 찾아뵈었다. 실은 답답할 때뿐 아니라 심심할 때도 찾아가던 교수님이었다. 교수님이 그런 내게 자주 하는 말이 있었다.


"너는 시간 도둑이다."


교수님이 나를 처음으로 '시간 도둑'이라고 칭했을 때, 미하엘 엔데의 [모모] 이야기를 해주셨다. [모모]에는 시간을 빼앗는 회색신사들이 나온다. 회색신사들은 사람들에게 빼앗은 시간으로 생명을 이어간다. 반면 주인공 모모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들의 빼앗긴 시간을 되찾아준다. 내가 바로 교수님의 시간을 빼앗아 생명을 이어가는 회색인간이라는 의미다. 바라건대, 교수님에게도 이야기를 들어주고, 나에게 빼앗긴 시간을 되찾아 줄 모모가 있었기를 바란다.


교수님을 찾아가서 주로 멍청한 질문들을 했다. 시간을 빼앗는 짓이 분명했다.


취업 걱정에, 직업 관련 책을 읽고는 교수님에게 그 책을 가져갔다.


"교수님, 제가 이 책 읽고 테스트를 해봤거든요. 근데 저는 이런 일들이 제게 맞는지 잘 모르겠어요."

"너 말하는 거 좋아하잖아. 리포터 한 번 해보면 어떠냐?"

"제가 무슨 리포터를?"


나는 리포터라는 직업의 세계에 대해 전연 생각해보지 않았다. 하지만, 교수님이 훅 던진 '리포터'라는 취업 단서를 나는 홀랑 주워 먹어버렸다. 리포터 모집 공고를 찾기 시작했다. 집 근처에 있던 방송국에 마침 리포터를 뽑고 있었다. 서류를 내고, 일사천리로 면접까지 보게 되었다. 나는 리포터 면접을 보러, 방송국이라는 곳을 처음 가보았다. 면접장에 모인 사람들을 보고, 나는 심히 부끄러움을 느꼈다. 분명, 리포터 분야가 텔레비전이 아니고 라디오였는데 다들 심하게 예뻤다. 영화 [아가씨]의 숙희라면 그랬을 거다.


"염병! 예쁘면 예쁘다고 말을 해야 할거 아녀. 사람 당황스럽게시리"


나는 리포터들이 그렇게 예쁜 줄 아니 예뻐야 하는 줄 몰랐다. 나는 그들의 외모는 물론이요, 옷차림새, 말투까지 그들과 견줘 뭐 하나 나은 점이 하나도 없었다. 나는 그들에 비해 아주 심하게 모자랐다. 그들은 그들만의 세상이 있었다. 무슨 무슨 방송 아카데미 출신에, 아나운서 경력자도 있었고, 성우도 있었고, 방송반 경력은 기본이었다. '내가 무슨 짓을 한 것인가, 내가 여기 왜 있지?'


드디어 면접이 시작됐다. 방송 부스에 들어가서, 자기소개서를 읽으라고 했다. 나는 방송 부스라는 곳도 처음이었고, 마이크도 처음이었다. 내 목소리가 이렇게 이상한 줄도 처음 알았다. 역시나 심하게 부끄러웠다. 다른 면접자들은 생글생글 웃으며 자기소개서를 멋지게 읽었다.


자기소개서를 읽고 나니, 갑작스러운 폭우로 지리산 계곡에 물이 불어 조난당했다가 구조된 사람과의 인터뷰 상황을 리포트해보라고 시켰다. 아! 앞이 캄캄했다. 다른 면접자들은 전연 당황하지 않았다. 다들 눈구렁이처럼 정말 잘했다. 나는 이때부터 면접자가 아니라 구경꾼의 자세를 취하기 시작했다.


상황 리포트가 끝나고, 내 마음속 합격자 2명을 점찍었다. 어차피 나는 글렀으니, 내 생애 다시 올 리 없는 리포터 면접의 세계를 즐겨버렸다.


이것으로 면접이 끝난 줄 알았는데, 심층 면접이 또 남아있었다. 나는 정말 리포터의 세계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


나는 불합격자가 확실한데 뭐가 더 남았단 말인가. 나는 더 이상 리포터 면접자들과 한 카테고리에 묶여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선 밖으로 내쳐진 사람인데, 여기서 뭘 더... 그만 부끄럽고 싶었다.


면접관 중 한 명이 자기소개서를 잘 썼던데 책을 많이 는지, 글쓰기 대회에서 상 받아 본 적 있느냐고 뜬금없는 질문을 던졌다. 옆에서 다른 면접관이 그 면접관의 옆구리를 치면서 귓속말을 했다. 나는 저 질문에 마음이 놓였다. 나는 철저하게 리포터 탈락이라는 메시지였으니까.


방송국을 나오면서 리포터라는 직업 리스트에 쫘악 줄을 그었다. 몹시 통쾌했다. 리포터는 내가 할 수 없는 일, 하고 싶지 않은 일, 나와 어울리지 않는 일이었다. 교수님을 찾아가서, 리포터 면접 후일담을 전하며 교수님의 시간을 또 빼앗았다.



그런데 그날 6시 부근에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000 방송국이에요. 내 목소리 기억하죠?"

"아, 000 아나운서시죠? 근데 왜요? 저 탈락했잖아요."

"알고 있었네요."

"그럼 알죠."'

"혹시 작가 해볼래요? 지금 작가 자리가 하나 비었거든요. 면접 때 글쓰기 질문하신 분이 부장님인데 부장님이 000 씨 글 맘에 든다고, 전화해 보라고 하셔서요."


나는 그렇게 리포터가 아니라 아나운서실의 라디오 구성작가로 방송계에 입문했다. 교수님을 찾아가 시간을 빼앗는 회색신사였던 나는 모모가 되어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들에게 시간을 찾아주기도 하는 작가가 되었다.  


23살 8월 말에 방송국에 갔고, 2주간의 수습 이후에 AM 라디오 데일리 프로그램을 맡게 되었다. 40대 중년의 아나운서가 제작과 MC를 맡았다. 방송국에선 남자, 여자 모두 호칭을 선배라고 불렀다. 아주 친하면 언니라고 부르기도 했지만, 나이가 많거나 친하지 않으면 모두 선배였다.


선배는, 방송국 넘버원 사이코였다.


실은, 나를 뽑은 아나운서실 부장은 공석이던 FM 음악 프로그램의 작가 자리에 나를 앉혔다. 그 프로그램의 제작과 MC를 맡은 아나듀서는 방송국 넘버원 굿걸이었다. 나는 내 밥그릇을 챙기지 못하는 햇병아리였고, 그 좋은 자리를 뱀 같은 선배 작가가 채어가는데도 네네... 하면서 심지어 웃으면서 굿걸의 휘하에 있던 밥그릇을 넘겨줬다.


그리고 내게 온 (알고 보니 개) 밥그릇은 사이코 선배 프로그램이었다.


"네가 0 부장이 뽑은 애라며? 어디... 글은 좀 쓰네."


선배는 내가 쓰는 구성안, 내가 쓰는 글에 죄다 토를 달았다. 처음이니까 내가 햇병아리니까 당연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상식선이라는 것을 넘어가고, 그게 반복되면 폭발하는 시점이 오게 된다.  


"그럼 잘난 선배님이 하세요."

"너! 너! 너! 뭐라고 했어?"


선배는 길길이 날뛰며 온 방송국을 다니며 내 욕을 했다(고 들었다). 다들 나를 보면 사이코 선배한테 들었다는 이야기를 묻고, 스스로 답도 했다.


"네가 0 선배한테 "그럼 잘난 선배님이 하세요"라고 했다며? 근데 그게 말이 되냐. 그 사이코가 그런 말 듣고 앉아 있을 위인이 아닌데. 하여튼 뻥도 잘 쳐. 또 누굴 잡으려고. 너 조심해라."


스물세 살인 햇병아리인 내가 40넘은 그것도 사이코 선배에게 그런 말을 했다고 누구도 믿지 않았다.


나는 다음 날, 사이코 선배 책상 위에 쿠션 선물과 함께 쪽지를 남겼다.


'선배님, 저 때문에 엉덩이 붙일 새 없이 길길이 뛰어다니게 해서 죄송해요. 앞으론 이 쿠션에 꼭 붙어 있도록 우리 부드럽게 지내요.'


사이코 선배가 내게 말했다.


"넌 정서가 참 안정적이야."




이제 내가 그때 40대 사이코 선배의 나이가 되었다. 선배는 설마, 사이코 할머니가 된 건 아니겠지...


내게 시간을 빼앗기던 교수님은, 이제 더 이상 내게 시간을 빼앗기지 못하신다. 교수님은 가끔 안부를 물으면, 내게 슬그머니 다녀가라는 메시지를 주신다. 시간을 빼앗기고 싶으신 게다.


© aronvisuals,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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