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결론 지으니, 나의 모든 안달복달이 달아난다. 복날 복달임이라고 한 듯, '파이어족' 저 단어 하나에 단박에. 심지어 약을 먹어야 잠잠해지던 불안과 공황 증세도 잠들어버렸다. 심지어 짜릿함마져도 든다. 그렇다 나는 지금 몹시 기쁘다.
나는 주부지만 그동안 열심히 살아왔다. 나의 경력은 누구못지(굳이 저세상 경력자들과 나의 경력을 비교해 나의 경력을 비하할 생각은 없다) 않게 화려하다. 무려 22년을 몹시 치열하게 살았다. 그리고 지금 주부로 살고 있다. 주부의 삶이 생산적인 일이 아니라고 생각을 당하고 산다. 왜 이런 생각을 하게 된걸까. 그냥 자동 주입식 교육이라고 해두자. 나는 일부러 내가 생산적인 일을 하지 않는다는 생각의 싹을 틔운 적 없다. 주부가 되고 보니, 나는 생산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주부의 디폴트 값을 세상이 정해놨고, 나는 생각이란 싹을 틔우기도 전에 이미 결론이 나서 깔끔하게 정리 된 주부의 정의대로 생각했다. 돈 버는 일을 못 하는 비생산적인 사람이 되어버렸다고 여겼다.
그런데 파이어족들을 보니, 나는 다만 조기은퇴를 했을 뿐이었다.
나는, 지금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즐겁게 살고 있나? 이 문제가 더 중요해보였다.
20대에는 치열하게 돈을 벌었다.
데일리, 주말, 라디오, 텔레비전 세 군대 방송국을 오가며 일했다. 당시 나는 횡단 보도 빨간 불 앞이 제일 좋았다. 유일하게 멍을 때릴 수 있는 시간이었다. 나는 그때 죽음과도 같은 삶을 살았다. 너무 너무 삶이 고단해서, 어떤 미친 자동차가 나를 뒤에서 받아 줬으면 싶었다.
그 고단한 20대를 꾸역꾸역 넘기고 30살에는 갑자기(카페는 그저 로망이었는데, 나중에 돈 벌고 나이들어서나 차리고 싶었는데)카페를 차려버렸다. 20대를 겨우 보냈는데 무슨 돈벼락을 맞은 것도 아니고, 갑자기 몹시도 무모하고 용감하게 일을 저질렀다.
카페에서 해보고 싶었던 모든 일을 다 해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모든 생각들을 실행해서 손 안에, 쥐었다. 너무 너무 행복했다. 물론, 20대만큼이나 치열한 삶은 계속됐으나 내가 선택한 나의 의지가 있는 카페는 내게 지상 최대의 행복을 줬다. 카페가 대박이 나서 돈을 엄청 번 것도 아니고, 심지어 사기를 당했는데도, 카페 했던 그때의 내가 지금도 몹시 좋다. 하고 싶은 일은 나중에 하는 게 아니었다. 지금, 그러니까 중년의 나라면 카페를 차리는 데 생각할 것들이 너무 많다.
그리고, 결혼을 하고 주부가 되었다. 일을 하지 않은 순간이 대학 졸업 후 처음으로 내게 찾아왔다. 하지만, 출산을 하고 육아을 하게 되니 나를 돌볼 시간이 없었다. 내 몸뚱이뿐 아니라 내 생각이란 것도 돌볼 시간이 없었다.
돈을 안 버는 삶은 생산적이지 않았다. 집안일을 하고 아이를 돌보는 일은 내게 생산적이라는 생각을 전연 주지 않았다. 남편도 마찬가지, 타인들도 마찬가지. 내가 집에서 아이를 본다는 것에 대해 몹시 껄끄러운 시선을 내 몸에, 내 생각 속으로 자꾸 꽂았다. 자꾸 그 시선들을 맞게 되면 병이 든다. 병든 나는 자존감이 바닥을 친다. 자존감이 바닥을 치면 삶이 재미가 없다.
기여이 나는 나를 살릴 구원의 밧줄을 만들어 낸다. 세상은, 내게 절대 먼저 구원의 밧줄을 내려주지 않는다. 그 밧줄은 내가 만들어내야 한다.
아이가 세 살 때, 대기업에 경력직으로 취직했다. 당시 지방에 살고 있었는데 직장과 최대한 가까우면서도 집값이 싼 경기도에 집을 얻어 이사를 감행했다. 남편은 심하게 반대했지만, 나는 나만 바라보기로 했다. 나의 직업을 위해 이사를 했다. 나는 이제 주부가 아니라 직장인이다. 하지만 현실은 워킹맘으로 직장에서 욕먹고, 퇴근하면 어린이집에 혼자 남은 아이를 픽업하며 솟구치는 눈물을 속으로 먹고 또 먹어야 했다.
회사의 유일한 워킹맘인 나를 아무도 이해해 줄 턱이 없었고, 나는 역시나 내가 구원해야 했다. 수십개의 눈치를 등 뒤에 맞으면서도 칼퇴근을 했고, 아이를 픽업하고 집안일을 하고 늦은 밤엔 업무를 봐야했다.
그런 가운데 둘째 아이를 낳고, 육아휴직을 했다. 출근 안 하니 너무 좋더라. 하지만 아이 키우는 일은 첫째 키웠다고 둘째 안 힘든 게 아니었다. 육아는 언제나 처음처럼 힘들었다.
다시 일 하고 싶었다. 그것도 빨리. 육아휴직 기간을 다 채우지 않고, 서둘러 복직했다. 그랬더니 내 앞에 또라이 뉴 페이스 상사가 딱 버티고 있었다. 이 또라이는 미친년이라 상대가 되지 않았다. 나는 미친년은 피해야 한다는 걸 알았다. 뒤도 보지 않고 퇴사했다.
나중에, 후회하기는 했다. 지금은 그 후회의 색이 상당히 희석됐다. 그래서 다행이기도 하고.
퇴사 후 육아에만 전념! 나는 그런 과가 아니다. 또다시 살 길을 도모한다. 경력을 살려 커피 클래스를 열기도 했고,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모니터 요원으로 일하기도 했다. 자꾸 생산적인(돈 되는) 일을 하려고 발버둥쳤다.
뭘 해야 한다고, 뭔가를 해서 돈을 벌어야 한다는 압박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 압박감은 누가 준 것이 아니라고는 말 못하겠다. 내가 사는 이 세상이 줬으니까. 세상은, 싱글이든 낫싱글이든지 간에 직업이라는 걸 원한다.
그런데 '파이어족' 이라는 게 나왔다.
조기은퇴라니!
파이어족은 경제적인 자립인 가능한 조기 은퇴자를 일컷지만, 나는 일을 안해도 먹고 살만큼 돈을 벌어놓지 못했다. 남편이 당장이라도 월급을 받아보지 못하면 생계를 걱정해야 한다. 하지만, 나는 이제 더 이상 일을 안 하면 비생산적이라고, 탓하지 않으련다. 나는 파이어족이다. 그동안 열심히 살아왔다. 소비를 줄이고, 씀씀이를 줄이면서 남편이 벌어오는 돈에 맞게 '생활'이라는 것을 해내가는 파이어족이다. 주부라고 파이어족 못할 이유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