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커피 읽는 여자 Oct 19. 2023

중년을 위한 머리카락 가이드 북, 이
있으면 좋겠다

중년의 흰머리

중년, 몸의 가장 큰 변화 중에 하나는 '머리카락'이다. 머리카락이 하얗게 물들고 있다. 나뭇잎만 단풍이 드는 게 아니었다. 내 머리카락에도 단풍이 들고 있다. 단풍잎은 노랗고, 빨갛게 예쁘기라도 하지만 내 머리카락 단풍은 보기 싫게 하얀 물이 들고 있다. 아이들과 남편은 내 머리카락에 하얀 단풍이 드는 것에 별 감흥이 없다. 한 집에 사는 식구도 이런 반응일진대 타인이야 무엇하랴. 내 눈엔 분명 가득해 보이는 흰머리 카락이 타인에겐 '눈에 뵈지도 않는다'.  


흰 머리카락이, 처음엔 이마 부근에서 몇 가닥 보이더니 앞통수 여기저기 보이기 시작했다. 머리카락을 들출수록 숨겨진 흰머리카락이 여기도, 저기도 자꾸 눈에 띄었다. 뽑아버렸다. 거울을 뚫어져라 눈에서 레이저를 쏴대며 흰머리 카락을 뽑고, 또 뽑았다. 금세 세면대에 흰머리 카락이 가득했다. 뽑아내니 당장은 시원한 기분마저 들고, 성취감까지 드는 것이, 마치 노화를 막아내기라도 한 것 같았다. 


승리감은 얼마가지 못했다. 흰머리는 다시 올라오기 시작했다. 이번엔 귀밑머리도 하얗다. 기가 막히고, 코까지 막히면서 눈물이 핑 돈다. 주책이다. 


뽑아도 뽑아도 흰머리는 잡초처럼 강인한 생명력으로 올라왔다. 세상에나! 잡초 같은 생명력을 지닌 흰머리카락이라니...


잡초 흰 머리카락 뽑는 일을 포기한다. 잡초엔 제초약이 답이다. 


흰머리카락의 답인 염색약을 알아본다. 염색약의 세계는 엄청나게 광대했다. 슬쩍 봐서 알 수 있는 세계가 아니었다. 입문 과정이 생각보다 난도가 있었다. 무엇보다 나는 내 머리색깔을 정확히 알지 못했다. 머리카락의 색이 그렇게나 다양할 줄 몰랐다. 나는 내가 그저 갈색 머리카락인 줄 알고 있었는데, 갈색 염색약에는 그저 갈색만 있는 게 아니라 자연스러운 갈색, 밤갈색, 흑갈색 등 다양한 종류의 갈색이 존재했다. 나는 내 머리카락 하나를 뽑아 색깔을 맞춰보려 했지만, 모니터에서 보이는 갈색과 내 머리카락의 갈색은 어딘지 달랐다. 


결국, 나는 올리브영에 직접 갔다. 


올리브영에는 다양한 염색약을 직접 내 눈으로 보고 살 수 있으니, 한결 낫겠지 싶었다. 하지만, 이 또한 쉽지 않았다. 염색약 색을 고르고 나면, 브랜드도 골라야 하고, 가격대도 정해야 했다. 아... 만만치 않은 염색의 세계!


그렇게 고른 염색약으로 흰머리, 뿌리 염색을 시도했다.


결과는 폭망!


내가 원하던, 내가 그리던 염색이 절대 아니었다. 염색약 설명서뿐 아니라, 블로그며, 카페 글을 열심히 써치 했던 나였다. 하지만 첫 셀프 염색은 일단, 색깔부터가 폭망이요, 염색도 제대로 되지 않아, 시간과 돈만 버린 샘이 되었다. 그래도, 염색을 하지 않은 것보다는 나았다. 내 눈에 보이는 흰머리는 염색약 색이 어떻든 간에 흰색은 아니었기에. (나중에 미용실 원장에게 머리 염색을 맡기고서야 알았다. 사람마다 머리 색깔이 달라서, 미용실에서는 손님마다 맞는 머리색깔을 위해, 염색약을 배합해서 쓰고 있었다.)


첫 염색이 큰 경험이 되어서, 다음번 염색은 잘할 줄 알았다. 하지만 그럴 리가... 다음 염색도 역시나 폭망 했다. 이번에는 남편 도움을 받아, 뒷머리까지 꼼꼼히 염색했는데... 결과는 첫 번째와 크게 다르지 않게 실패했다. 


내 손이 똥손인가? 내 머리카락이 문제인가?


그래도 삼세번이라고. 세 번째는 두 번의 실패를 교훈 삼아 철저하게 준비했다. 똥손이 맞나 보다. 내 머리카락이 문제인가 보다. 역시나 폭망 했다. 


미용실에 갔다. 내가 들인 실패의 염색 비용보다 더 저렴한 가격으로 염색을 했고, 끝내주는 결과물을 얻었다. 이보다 만족스러울 수가 없었다. 원장은, 나보다 내 머리카락의 색깔을 기똥차게 잘 알았다. 내가 그토록 보기 싫어하던 흰머리카락들을 내가 딱 원하는 내 원래 머리카락 색으로 깔맞춤 염색을 해냈다. 브라보! 나는 세 번의 내 돈, 내 머리 체험으로 철저하게 깨달았다. 


미용실 염색의 시작이 벌써 2년 전이다. 2년간 나는 2~3달에 한 번씩 줄기차게 염색을 한다. '새치 뿌염'이라는 이름으로. 그 사이 내 머리카락은 몹시 뻣뻣해졌다. 나이가 들어서 몸이 뻣뻣해지듯, 머리카락도 노화해서 뻣뻣해지는 것이 맞겠지만, 염색 때문 에라도 내 머리카락은 더 빠르게 뻣뻣해지고 있다. 


흰머리가 올라올 때마다, 한숨이 절로 난다. 흰머리가 많아질 때마다 한숨이 깊어진다. 또 뿌염할 때가 됐다. 나는 언제까지 뿌염을 해야 할까? 꼭 뿌염을 해야 할까? 


언젠가 TV프로그램에서 모델 한혜진에게 유재석이 쉬면 제일 하고 싶은 게 뭐냐고 물었다. 


"염색 안 하고 싶어요. 2주만 지나도 새치가 올라오니까. 2주마다 염색해야 하는데 귀찮아 죽겠어요."


맞다. 2주만 지나도 흰머리가 보인다. 나야 방송인이 아니니, 쬐그만한 흰머리는 취급도 안 한다. 적어도 눈에 확 띄게 자라는 2달은 되어야 염색을 하러 간다. 그런데 한혜진은 2주만 지나도 그 쬐그만한 흰머리 때문에 염색을 한다니... 진짜 귀찮아 죽을 지경이라는 말이 이해가 된다. 나는 고작 2달에 한번 하는 염색도 하기 싫어서 미루고 미루는데...


염색이, 하고 나면 흰머리가 안 보여서 좋은데 염색하러 미용실 가는 일이 그렇게 귀찮다. 그래도 모임 있거나, 명절이 당도하면 당장 염색부터 챙긴다. 내 몸뚱어리에서 가장 감추고 싶은 게 '흰머리'니까. 왠지 흰머리를 남에게 보이기 싫은 마음이 있다. 흰머리를 자연스럽게 잘 관리하는 중년도 많고, 그 중년 중에는 흰머리가 당당해 보이기도 하고, 매력으로 다가오는 중년도 있다. 


나는, 흰머리가 어울리지 않는 중년이다. 내 마음이 일단, 흰머리에 거부감을 보인다. 흰머리카락이 늘면 자신감이 쪼그라든다. 그러니, 나는 흰머리카락에 염색이라는 약을 입혀서라도 자신감을 끌어올린다. 


2년 차 새치염색을 하면서 너무도 간절히 바라는 게 하나 생겼다. 


'중년을 위한 머리카락 가이드 북'


중년에, 머리카락을 어떻게 관리하는지 가이드 북이 있으면 좋겠다. 농담 아니고 내겐 절실하다. 세계의 웬만한 여행지는 모두 가이드 북으로 나와있다. 어디 여행지뿐인가, 학습에 대한 가이드 북, 임신, 출산, 육아, 부동산, 주식에 관한 가이드 북은 차고 넘치게 나와있다. 물론, 중년의 삶이니, 노후의 삶이니, '삶' 그 자체에 초점을 맞춘 가이드 북은 있다. 그러나 내가 원하는 건, 디테일한 부분이지만 중년에 들어선 내게 가장 절실한 건 '머리카락'에 관한 가이드 북이다. 


점점 새치뿌염의 주기가 빨라지고, 머리카락은 자꾸 빠진다. 이번 생은 모두 처음이지 않은가. 중년도 마찬가지로 처음이고, 흰머리카락이 나는 것도 나만 처음이 아니라 모두가 처음일테다. 


중년을 위한 머리카락 가이드 북, 너무 절실하다. 














 




이전 03화 나를 파이어족이라고 하자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