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어도 맛있는 커피
거리를 거닐다 커피 볶는 냄새가 나면 기분이 좋다. 여기서 우리는 커피의 냄새를 어떻게 아는 것일까? 당신과 내가 아는 커피 냄새가 동일할까?
짜장면 냄새, 카레 냄새, 고기 냄새, 김치 냄새, 아마도 당신과 나는 동일한 냄새에 반응할 것이다. 일명 아는 냄새, 많이 먹어 본 냄새, ‘경험’한 냄새다. 가끔 우리는 여행지에서 새로운 음식을 먹고 ‘처음 먹어본 맛’이라는 표현을 쓴다. 그리고 뭐라 표현할 말이 없다고도 한다.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느 날 그 처음 먹어본 그 맛이 못 견디게 그리워 그 맛을 찾아 헤맬지도 모른다.
또 의문이 생긴다. 냄새와 맛의 차이. 뛰어난 요리사가 후각을 잃었다던지 미각을 잃었다던지 하는 사례를 봤을 것이다. 그 유명한 장금이가 그랬고, 중식의 대가 이연복이 그렇다. 반대로 뛰어난 후각과 미각을 지닌 세계적인 요리사도 있다.
*브리야 사바랭에 따르면 후각 없이는 완전한 맛을 느낄 수 없다. 순수한 물은 맛을 가진 입자를 전혀 함유하지 않으므로 미각 작용을 유발하지 않지만, 여기에 레몬을 첨가하면 미각에 자극이 유발된다.
맛을 가진 모든 물체는 필연적으로 냄새를 풍긴다. 한때 TV만 틀면 나오던 링티 광고 문구가 ‘커피 대신 링티 마셔요.’였다. 링티는 수분 보충제다. 물은 아무 향과 맛이 없어서 미각적 만족이 없는데 링티는 맛도 있으면서 물을 마셔야 하는 인간에게 물에 타 먹으면 (아무 맛없는, 그래서 먹기 싫지만 그래도 먹으면 건강에 좋은) 물을 더 잘 먹게 해주는 감초 같은 역할을 해준다. 한 가지, 커피는 커피요, 링티는 링티다.
커피는 그럼 무슨 맛일까?
일반적으로 나무에 열리는 열매들은 잘 익은 과육을 먹는다. 그런데 커피는 과육은 먹지 않고, 씨앗을 먹는다. 또한 여타의 열매들과 다르게 생으로는 못 먹는다. 커피 씨앗, 즉 생두는 아무 맛이 없다. 혹시 호기심이 많다면, 생두를 먹어봤을지도 모르지만, 풋내, 매운 향이 나는 커피콩을 생두 상태로 먹기란 곤역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잘 익은 커피 열매의 씨앗은 불에 볶으면 생두에선 전연 느낄 수 없었던 맛있는 향이 폭발한다. 커피는 로스팅이라는 과정을 거치면 특유의 향기를 갖게 되는데 1,000여 가지의 향미 성분이 새로 생겨난다. 커피 생두를 어느 정도로 볶느냐에 따라 향미가 달라진다. 커피를 볶는 사람의 경험이 커피 맛을 내는 데 결정적인 이유다. 커피는 또 볶는다고 바로 먹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로스팅된 커피는 적당한 굵기로 갈아서 물과 함께 끓여야 비로소 음료인 한 잔의 커피가 된다.
커피가 주는 기본적인 맛은 쓴맛이다. 하지만 인간은 진화론적으로 쓴 맛을 싫어한다. 쓴 맛을 내는 독극물을 잘 못 먹으면 생존에 위험을 받게 된다. 그런데 커피의 쓴맛은 죽을 것처럼 쓴 맛이 아니라 기분 좋게 맛있는 쓴맛이다. 커피의 주요 맛인 쓴 맛 이외 커피는 단맛과 신맛을 가지고 있다.
커피의 주요 맛
쓴맛(Bitterness) : 다크 초콜릿의 쌉싸름한 기분 좋은 쓴맛
단맛(Sweetness) : 브라운 슈가(허니, 캐러멜라이즈, 메이플시럽, 당밀), 감률류의 단맛(라임, 레몬, 오렌지, 자몽)
신맛(Acidity) : 감귤류의 라임, 레몬, 오렌지, 자몽, 딸기, 블루베리, 배, 복숭아 등의 신맛.
사람에 따라 미각 경험의 차이도 다르고, 맛과 향에 대한 선호도도 각자 다르다. 특정한 냄새와 맛에 대한 개인차는 무려 1천 퍼센트라고 한다. 커피회사에 다닐 때 워크숍에서 커피 아로마 키트로 향 테스트를 해 본 적이 있다. 강사는 먼저 커피 아로마 키트의 모든 향을 맡게 했는데, 좋아하는 익히 아는 향도 있었고, 생전 처음 맡아본 향도 있었다. 시향 이후에는 각자 좋아하는 향과 싫어하는 향으로 나눠 보라고 했다. 그런데 여기서 아주 신기한 경험을 했다. 내가 너무 역겹다고 분류했던 향을 어느 직원은 좋아하는 향으로 분류했고, 내가 맡은 향의 느낌과 전연 다른 의견을 말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 경험이 너무 놀라웠는데, 특히 내가 알코올 냄새를 맡았던 향에서 그는 캐러멜 냄새가 난다고 해서 깜짝 놀랐다. 그러면서 생각한 것이 커피 전문가라면, 커피 향에 대한 철저한 경험,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향과 맛은 지극히 주관적이다. 조나 레러(Jonah Leher)는 『푸르스트는 신경과학자였다』에서 인간은 실제로 접하는 냄새와 그 맛에 반응하는 세포들만이 살아남는다고 한다. 그 나머지 세포는 시들어버린다. 결과적으로 우리의 뇌는 우리가 먹는 것을 반영하게 되는 것이다. 브리야 사바랭은 앞서 인용한 저서에서 ‘네가 먹는 것을 말해주면 네가 누구인지 말해주겠다.’라는 유명한 말을 했는데 우리가 먹는 것이 곧 우리 자신이다.
흔히 커피는 식으면 맛없다, 라는 말을 많이 한다. 뜨거울 땐, 차가울 땐 먹을 만했는데 미지근 해지면 맛이 급격히 떨어져 그냥 버리고 마는 것이다. 그런데 2019년 월드바리스타챔피언십에서 한국인 최초로 1등을 차지한 전주연 바리스타(부산 모모스 커피)도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맛있는 커피는 식어도 맛있는 커피라고 했다. 식은 음식에는 향기가 없다. 거의 전적으로 ‘맛’, 혀의 미뢰에만 의존해야 한다. 그렇다면 커피의 핵심인 향기가 없는 식은 커피, 혀의 미뢰에만 의존하는데도 맛있다면 그 커피야 말로 정말 맛있는 커피가 맞을 터이다. 식은 믹스 커피를 마셔봤는가? 뜨거울 때는 맛있게 느껴지기도 하고, 그럭저럭 먹을 만했던 믹스커피가 식어버리면 끔찍한 맛이 난다. 맛없는 커피는 식으면 보통 탄맛, 찌든 맛, 떫은맛 등이 난다. 그런데 신선한 원두를 내려서 마시다 식어버렸을 때 그 맛을 보고 깜짝 놀란 경험이 있을지 모른다. 뜨거울 때 못 느꼈던 맛있는 맛들이 선명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게 바로 진짜 맛있는 커피다.
보이지 않는 고릴라
**‘보이지 않는 고릴라’라는 심리학 역사상 가장 유명하고 흥미로운 실험이 있다. 실험자들에게 농구장 코트에서 흰색 티와 검은색 티를 입은 두 팀이 게임을 하는 장면을 보여주고 흰색 팀의 패스 회수를 세게 하는 과제가 주어진다. 실험 종료 후 실험자들은 흰색팀의 패스 횟수를 말하는데 사실 이 테스트는 흰색 팀의 패스 횟수가 아니라 농구 게임 도중 별안간 코트에 뛰어든 검은색 고릴라를 알아보느냐 못 하느냐를 알아보는 주의력 테스트 실험이다.
과연 실험 참가자들은 검은색 고릴라를 알아봤을까?
'보이지 않는 고릴라', 실험 이름에 이미 답이 나와있다
이를 두고 무주의 맹시(inattention blindness) 혹은 부주의 맹이라고 부른다.
우리가 본다고 다 보는 것이 아닌 것이다.
***‘무엇을 인지할 때 사람은 모든 정보를 상세하고 완전하게 조합하기보다는 본 것(들은 것, 냄새 등)으로부터 어떤 의미를 추출하려 한다. 인간이 입수되는 모든 자극을 똑같이 충직하게 간직하도록 뇌를 진화시켜 왔다면 보유 에너지와 자원을 터무니없이 낭비하게 되는 결과가 초래되었을 것이다.’
사피엔스는 ‘효율’을 추구한다. 눈에 보인다고 다 보지 않는다. 쳐낼 것은 쳐내고, 봐야 할 것, 보고 싶은 것만 본다. 그러니 어떤 장면을 봤다고 해서, 정확하게 모든 것을 다 봤다고 할 수 없고, 가령 정말 다 봤다고 하더라도 왜곡의 가능성이 도사리고 있다.
맛도 마찬가지다. 냄새, 맛에도 ‘보이지 않는 고릴라’ 작동한다. 다섯 가지 맛을 가진 오미자차를 마신다고 모두가 다섯 가지 맛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 커핑 점수 만점에 가까운 최고급 스페셜티 커피를 마신다고 해서 그 커피의 향과 맛을 오롯이 느끼는 것도 아니다. 당신은 맡고 싶은 향만 맡고, 맛보고 싶은 맛만 느끼게 된다.
그러면 ‘보이지 않는 고릴라’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면, 후각과 미각 모두가 작용한다. 우리가 커피를 마실 때 그 냄새까지 맡게 되는 것은 기체 분자가 코로 들어오기 때문이고, 맛은 액체 분자가 혀를 자극하기 때문이다. 후각과 미각은 각각 기체 분자와 액체 분자에 독특한 냄새와 맛을 부여한다.
냄새는 ‘좋다’ 또는 ‘나쁘다’는 느낌을 만들어 낼 뿐 아니라 과거의 일화들과 관련된 냄새를 맡게 되면 정서적 반응이 유발되기도 한다.
커피 냄새와 휘발유 냄새가 서로 다르다는 것은 쉽게 알아차리지만, 그 냄새를 풍기는 물체가 무엇인지를 인식할 확률은 50% 정도에 불과하다. 그런데 그 물질의 이름을 알려주고, 실험에서 제시 되는 냄새가 무슨 냄새인지를 말하게 한 후, 참여자가 엉뚱한 이름을 대면 정답을 가르쳐 주었을 때, 냄새를 풍기는 물질의 정체를 확인하는 능력이 무려 98%로 향상되었다. 냄새의 이름을 아는 것이 그 냄새에 대한 지각을 바꾸어 놓은 것이다. 우리가 냄새의 정체 파악에 어려움을 겪는 이유는 후각체계의 결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냄새의 실제 이름을 기억에서 인출하는 능력이 없기 때문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니 누구는 냄새를 잘 맡는데 나는 냄새를 잘 못 맡는다고 나의 코를 탓할 필요가 없다. ‘이름’을 알면 된다. 자꾸 반복해서 이름과 냄새를 매치시켜서 기억하면 된다.
알면 맛과 향이 느껴지고 그때 느껴지는 맛과 향은 전과 같지 않다.
가끔씩 전문가를 모셔놓고, 이를테면 막걸리 전문가를 모셔놓고 10개의 브랜드의 이름을 가린 채 후각과 미각만으로 브랜드를 맞춰 보라며 블라인드 테스트를 한다. 하지만 전문가는 각 브랜드의 막걸리를 이미 마셔본 경험, 맛 지도를 가지고 있다. 확실히 아는 것이다. 그러니 느껴진다. 이것은 장수 막걸리이고, 이것은 느린마을이라는 것이. 나는 이것이 크게 뛰어난 능력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경험을 쌓으면 당신도 이 커피는 스타벅스, 다음 커피는 커피빈, 여기선 맥심맛이 난다고 맞출 수 있다. 흔히 ‘아는 맛’이라는 표현을 쓰곤 한다. 아는 맛, 이미 먹어 봐서 경험치가 쌓인, 누구나 공감하는 맛이라는 의미로 쓰인다. 데이터가 쌓였다는 말이다. 맛의 데이터가 쌓이면 테이스팅 지도가 상당히 다이내믹 해진다. 커피에서 오렌지 같은 맛이라고 표현하는 사람이 있고, 오렌지의 상큼하면서도 톡 터지는 상큼 달콤한 맛이라는 표현을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또는, 패션 푸르트 같다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커피회사에서 일할 때 패션 푸르트 맛의 마카롱을 팔 때면, 손님들의 십중팔구는 패션 푸르트가 뭐냐고 묻던 시절이 있었다. 나는 패션 푸르트란 문장만 써도 혀 양끝이 움찔한다. 아는 맛, 신맛을 받아들일 신호가 온다. 패션 푸르트는 열대 과일로 커피의 향미를 표현하는 데 아주 좋은 재료가 된다. 나는 손님들이게 그 노랑 패션 프루트를 '열대 과일인데 기분 좋게 귀여운 신맛이 나요.' 라고 소개해주었다.
아이가 냄새에 굉장히 민감하다. 좋은 사람의 기준이 ‘좋은 냄새가 나는 사람’이다. 엄마인 나는 좋은 냄새가 나기 때문에 좋단다. 그런데 아이의 좋은 냄새라는 기준이 엄청나게 주관적이다. 나에게는 주로 ‘커피’ 냄새가 나기 때문이다. 나는 집에서 정말 시도 때도 없이 커피를 마시고, 우리 집은 커피 냄새로 진동한다. 아이와 카페에 가면, 아이는 “엄마 냄새 나.”라고 얘기한다. 이제 6살인데 좋은 냄새의 기준이 ‘커피’라니 질투 나는 인생이 아닐 수 없다.
참고)
*브리야 사바랭 brillat-savarin 『미식예찬』, 홍서연 옮김, 르네상스, 2015.
**선택적 주의 실험으로 크리스토퍼 차브리스와 대니얼 사이언스가 고안한 독창적인 심리 실험이다. 대니얼 사인스가 운영하는 유투브(http://www.youtube.com/watch?v=v)에서 테스트 해볼 수 있다
『보이지 않는 고릴라』, 크리스토퍼 차브리스, 대니얼 사이언스, 김명철 옮김, 김영사, 2011.
***E. Bruce Goldstein『감각과 지각』제7판, 역자 김정오 외, 80쪽, 39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