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커피 읽는 여자 May 12. 2022

대한민국은 '카페' 강국이다

우린 커피를 눈으로 배웠다

커피는 입으로 배우지 않는다. 

우린 커피를 눈으로 배웠다. 




*현대경제연구원의 2019년 <커피산업의 5가지 트렌드 변화와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2018년 기준으로 1인당 연간 353잔, 2.3kg의 커피를 마셨다. (20세 이상 인구 기준) 하루에 1잔꼴로 커피를 마시고 있는 셈이다. 세계 평균 1인당 연간 커피 소비량은 132잔으로 우리나라 커피 소비량은 그에 비해 2.7배 많은 수치다. 2018년 커피 시장 규모는 7조, 세계 6위의 커피 수입국으로 2023년까지 커피산업 9조 수준까지 확대될 거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그런데 2020년 우리나라 커피시장 규모는 11조 원이었다. 전망을 앞질러도 한참 앞질렸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왜 이렇게 커피를 많이 마시게 됐을까? 


커피 취향이 확고하게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커피는 이제 지나가는 유행이 아니라 우리의 취향으로 자리를 잡은 게 틀림없다. 우린 이젠 커

피를 카페에서만 소비하지 않는다. 집으로 취향에 맞는 원두를 정기적으로 구독해 마신다. 특히, 

요즘 소비의 중심이라는 MZ세대는 자신의 커피의 취향 가꾸기에 여념이 없는 듯하다. 또한, 테이

크 아웃 중심의 에스프레소 커피가 아닌 핸드드립 등의 슬로우 커피가 본격적인 꽃을 피우기 시

작했다. 이 모든 것은 홈카페라는 몇 년 전부터 유행하기 시작한 커피 문화의 방향이 달라진 것

과도 깊은 관계가 있다. 맞다. 취향을 가꾸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특히나 코로나로 강제 셧 

다운, 집콕, 비대면 등이 일상화되면서 ‘사 먹는 커피’가 아닌 ‘만들어 마시는 커피’에 대한 관심

이 높아지고 있다. 


1999년 스타벅스가 우리나라에 처음 도입된 이레 20년 만에 커피라는 취향이 전 국민을 사로잡

은 것이다. 그간 우리는 정류장마다 하루가 다르게 카페가 우후죽순처럼 생기는 걸 목격했다. 정

말 자고 일어나면 카페가 하나 생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10여 년 전 커피 종주국이라

는 이탈리아에 갔다가 동네 구석구석 작은 카페들이 별처럼 무수히 박혀 있는 것에 놀랐는데 이

제 우리나라도 내가 사는 동네도 이탈리아 못지않게 카페들이 즐비하다. 


카페 강국이다!


커피 강국이라고는 말 못 하겠다. 아직까지. 커피의 맛에 대한 수요가 이제 막 시작된 듯하다. 

코로나가 그걸 몇 배나 앞당겼고. 이제 코로나는 우리 일상과 떼려야 뗄 수 없게 되었다. 그간 

미루었던 취향 공부, 이때 한번 맘 잡고 해 보자. 너무 진지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이미 너무 

진지하지 않은 가. 이건 학교도 아니고, 학원도 아니고, 누가 시켜서 하는 일도 아니고, 그저 

내가 매일 마시는 커피에 대해 좋아하는 맛과 싫어하는 맛을 알아보고 그리하여 ‘내’가 누구인지 

알아보고 나를 더 사랑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당신이 마시는 커피가 바로 당신이다. 


먼저, 커피타임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커피타임 


1.     어떤 커피를 좋아하세요?

 

2.     하루 중 언제 첫 커피를 마시나요?

 

3.     커피를 마시는 이유가 있을까요? 있다면 이유가 뭘까요?

 

4.     커피를 누구와 마시나요? 

 

5.     가장 맛있었던 커피, 인생 커피가 있을까요?



커피 읽는 여자의 커피타임 



1.      어떤 커피를 좋아하세요?

-‘마셔보면 안다, 에스프레소다’라고 대답하고 싶을 만큼 강렬한 에스프레소를 좋아해요. 에티오피아 싱글로 내린 에스프레소를 오랫동안 좋아했는데, 신맛이 노화된(건강 검진을 받았는데 슬프게도 의사가 위가 늙었다고 진단을 했어요) 위에 자극을 줘서 한동안 고생을 좀 했거든요. 그래서 요즘엔 에스프레소 내릴 때 에티오피아와 과테말라를 50% 정도로 블렌딩 한 원두를 사용해서 적절한 신맛과 단맛이 조화를 이루는 에스프레소를 즐겨 마시고 있습니다. 싱글샷으로는 정말 간에 기별도 가지 않습니다. 제 에스프레소는 늘 투샷이 기본입니다. 


2.      하루 중 언제 첫 커피를 마시나요?

-아침에 일어나서 가장 간절한 건 커피죠. 그런데 앞서 얘기했듯이 저는 위가 싱싱하지 못해서, 밤새 텅 빈 위에 커피를 마시면 위에 구멍이 뻥 뚫립니다. 어쩔 수 없이, 커피를 마시기 위해서는 밥 맛이 없어도, 반찬이 없어도 아침식사는 꼭 합니다. 하루 중 첫 커피는 그래서 늘 아침 식사 후가 됩니다. 아! 커피는 일어나자마자 못 마셔도, 에스프레소 머신 켜는 일은 제일 먼저 합니다. 밤새 제 위장처럼 차갑게 식은 에스프레소 머신을 예열해 두는 거죠. 네, 저는 다 계획이 있어요. 에스프레소를 뽑아 마실 계획이요. 


3.      커피를 마시는 이유가 있을까요? 있다면 이유가 뭘까요?

-저는 커피를 마시면 기분이 좋아요. 물론, 그 커피는 맛있다는 전제하에요. 나의 기분을 지속적으로 좋게 해주는 것 중에 커피가 으뜸입니다.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기분이 좋아지죠. 그런데 맛있는 음식을 매일 삼시세끼 사 먹는 일도 쉽지 않고, 더더군다나 내 손으로 만들어 먹는 일은 정말이지 너무도 피곤한 일입니다. 최종적으로 완성된 음식을 눈앞에 두고도, 그 과정이 너무 고되어서 기쁨을 온전히 누리기가 힘들어요. 게다가 설거지가 또 기다리고 있죠. 하지만, 커피라면 다르죠. 커피는 물과 원두만 있으면 되니까요. 단순한 재료, 간단한 과정들만 거치면 커피 한 잔이 완성됩니다. 거기에 맛이 기가 막히게 좋습니다. 기분이 좋지 않으래야 좋지 않을 수가 없어요. 소확행(작지만 확실한 행복) 정도가 아니에요. 커피는 대확행(크고 확실한 행복)이에요.


4.      커피를 누구와 마시나요? 

-아침 첫 커피는 거의 저 혼자 마셔요. 그 시간만큼은 혼자이고 싶어요. 하루 첫 커피인 에스프레소는 그 양도 적고, 커피의 특성상 몇 모금이면 끝나요. 커피를 뽑는 시간도 20~30초로 짧고, 마시는 시간도 커피가 만들어지는 시간만큼이나 짧습니다. 하지만, 커피의 여운이 아주 강렬하게 남죠. 어제와는 다르고, 내일과도 다를 딱 오늘만 신상인 오늘을 어떻게 보낼지 생각하기에 좋은 시간이 됩니다. 앞서 ‘카페쇼’ 이야길 했는데 카페쇼의 메인 주제 중에 하나가 ‘커피 토크’로 커피를 주제로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토크쇼가 펼쳐지는 세션입니다. 매일 아침 혼자만의 커피 타임을 가지면서 ‘셀프 토크’를 합니다. 주제는 ‘인생’이죠. 혼자 갖는 아침 커피타임은 인생을 생각하기에 좋은 시간이니까요. 


5.      가장 맛있었던 커피, 인생 커피가 있을까요?

-일본 여행을 갔다가 다이보 커피숍에 들른 적이 있습니다. 그때는 그곳이 그렇게 유명한 곳인 줄 몰랐고요. 다이보 커피숍은 하루키의 단골 카페로 유명한 곳이었어요. 블루보틀 창업자 제임스 프리먼이 영감을 받은 곳이기도 하고요. 그때 저는 다이보 커피숍에 정말 우연히 들렀어요. 중년의 남성들이 많아서 놀랐고, 뿌연 담배 연기에 놀라고, 카페 주인이 커피 내리는 할배라 놀랐습니다. 마지막 결정적으로 더 놀란 건, 커피 한 잔에 들이는 정성이었어요. 커피에 정성이라는 맛이 담긴 커피는 그때가 처음이었고, 이후로 는 아직 그런 커피를 만나지 못했습니다. 엄청난 풍미와 바디감이 입 안을 강타하는데 그 맛 하나하나에 정성이 느껴지는 겁니다. 원자폭탄급 커피였다고 할까 요. 10년 넘게 커피를 만들어 마시지만 그 맛을 도무지 따라갈 수가 없네요. 



하루키 인생 커피, 다이보 커피


다이보 커피숍은 커피 장인 다이보 씨가 운영하는 융드립 전문 로스터리 숍이다. 안타깝게도 38년 

간 운영하던 다이보 커피숍은 2013년 건물 철거로 어쩔 수 없이 폐점했다. 다이보 커피숍의 주인

공 다이보 씨는 커피숍 주인과 고객의 관계에 대해 아래와 같은 인터뷰를 했다. 


"저는 커피숍을 하는 사람은 끝말잇기와 비슷한 방법으로 말을 이어가며 시를 만드는 *렌쿠를 배우면 많은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상대방이 먼저 한 줄의 시를 지었다고 생각해보세요. 그러면 저는 그 시를 받아 그 시에 적힌 내용 외에 계절이나 상대방이 지금 처해 있는 상황이나 배경 등을 가미해서 받은 시와 조금 다른 시를 써 내려갑니다."

『커피 장인』, 다이보 가쓰지 인터뷰 편, numabooks엮음, 방영옥 옮김, P. 168


커피숍 주인과 고객이 아름다운 시를 주고받는 것처럼 조용하고 우아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다면, 생각만 해도 멋진 풍경이다. 하루키와 블루보틀의 제임스 프리먼이 다이보 커피숍에 반했던 것도 바로 이런 마음가짐 때문이 아니었을까. 또한, 다이보는 고독을 즐기는 커피숍이 좋다는 말을 했다.


 “커피숍은 편하게 들를 수 있는 곳이 좋습니다. 커피를 마시는 것뿐만 아니라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을 만나러 가는 경우도 많습니다. 특별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가 아니라 오늘도 그 사람이 그곳에 있다는 안도감 때문입니다. 보고 싶은 사람의 얼굴을 봤으면 다음은 자신만의 시간을 보내면 됩니다. 이렇게 말도 별로 없고 조용한 커피숍 아저씨가 있으면 자신만의 고독을 즐기는 시간을 갖기에 아주 좋지요. 고독이라는 것은 아주 평온한 상태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에 대해 조용히 생각할 시간을 가질 수 있습니다. 집이나 직장이 아닌 장소에서 혼자 아무 생각 없이 지내도 좋고, 어떤 생각에 빠져 있어도 좋습니다. 그리고 이런 시간이나 상황을 만들기에 가장 좋은 공간이 커피숍이 아닐까요.”

-같은 책, 195쪽


커피를 입이 아니라 눈으로 배웠으니, 입으로 마시면서 눈으로는 오롯이 느끼지 못했던 직접적인 경험을 기록하면 커피 취향이라는 대성당의 벽돌 하나를 쌓는 일이 되지 않을까?



*현대경제연구원, <커피 산업의 5가지 트렌드 변화와 전망>, 박용정 선임연구원 외 2명, 2019.

**렌쿠 : 두 사람 이상이 끝말잇기처럼 번갈아 읊어나가는 일본의 전통 시 문학 장르


       


        

매거진의 이전글 보이지 않는 고릴라 커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