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에는 모닝커피를 생각하는 것이 좋다

커피를 좋아하면 생기는 일

by 커피 읽는 여자

잠자리에 들면서부터 빨리 아침이 왔으면 하고 바란다. 내일 아침이 특별한 어떤 날이어서가 아니다. 다만 모닝커피 때문에 아침을 기다린다.


문학 평론가 신형철은


"자신보다 똑똑하고 성실하고 재미있는 사람들은 그냥 존경해버리지만
자신보다 더 문학을 사랑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인정하기가 불편하다."


고 했다.


나는 그 글을 보면서 문학에 자연스레 ‘커피’를 대입했다.


커피를 나보다 사랑하는 사람을 보면
뭔가 억울하고 당장 커피를 한잔이라도 더 마셔서
커피 잔 수로라도 커피에 대한 사랑을 막 증명하고 싶을 정도로 마음이 불편하다.



나는 2013년 CJ의 경력단절 여성을 위한 CJ리턴십 1기로 CJ 계열사인 CJ푸드빌에서 운영하는 투썸플레이스의 경력직 바리스타로 입사했다. 17:1의 경쟁률, 당시 나는 지방 소도시인 군산에서 새벽 버스를 타고 서울에 올라가 2차, 3차 전형을 치렀다. 3차 전형은 실기와 면접으로 이루어졌는데 카페를 그만두고 2년이란 세월이 지난 나는 감이 떨어질 때로 떨어져(실은 10만 원이란 거금을 주고 커피 아카데미에서 단기 수업을 받고, 지인의 카페에서 연습을 하기도 했다) 준비하라는 앞치마도 준비하지 못해 감독관의 앞치마를 빌려 입었고, 처음 작동하는 커피 머신에 손은 잘 움직이질 않았으며, 카푸치노를 만들어야 하는데 스팀이 제대로 되질 않아 벨벳처럼 부드러운 스팀 밀크가 아니라 드라이한 질감의 퍼석한 스팀을 치고 말았다. 벌게진 얼굴에 망연자실한 상태로 대기실에 앉아있는데 바로 면접 호출을 했다(이번 생은 진짜 망했나 보다).


“실기 시험은 잘 봤어요?”


이번 생은 망한 꼴로 들어온 내 모습에 위로인지 조롱인지 모를 질문을 면접관 중 한 명이 화살처럼 던졌다(이런 걸 확인 사살이라고 하는 것 같다.).


“망했어요.”


면접관이 내 면접은 이제 별 볼 일 없겠다는 투로 실없이 웃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세 명의 면접관이 로봇처럼 일어나 본인 소개를 했다. 마지막 소개자가 000 스페셜리스트라고 본인을 소개했다. 나는 그 순간 망한 생의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끼어들었다.


“000님 신문에서 봤어요. 원두 스페셜리스트 기사요. 꼭 뵙고 싶었는데 이렇게 뵙다니 영광(이에요).”라고 말을 마치기도 전에 내게 실기 시험 잘 봤냐고 물었던 팀장(본인 소개를 받고서 그 사람이 팀장이란 걸 알았다)이 자랑스럽게 말했다.


“000님 유명해요.”


그 순간 나는 이 면접관들이 내게 흥미를 보이기 시작했음을 눈치챘다. 이번 생은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해보라고 했다.


“저는 죽는 순간 제 심장이 커피로 가득 찼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그 커피가 00의 커피라며 더 좋겠고요.”


나는 합격했고, 이후 그 면접관 중 한 명이었던 인사팀장이 입사 후 한 달여 만에 코엑스에서 열린 행사에 나를 지목해, 대통령이 참석하는 국가 행사에서 커피를 뽑고, 생방송 인터뷰와 각종 언론 인터뷰에 응했다. 이후 CJ 사보팀에서 나와 사진을 찍고, 사보에 사진과 기사가 실렸다. 망한 것 같았던 인생에 하늘에서 동아줄이라도 내려온 걸까. 그걸 눈치라도 챈 건지, 당시 매장 담당 SC가 내게 물었다.


“위에 줄 있어요?”


줄이라니(내 마음을 읽은 걸까? 어느 날 망한 인생에 갑자기 하늘에서 내려온 동아줄 사건을 어떻게 알았지?)

사실 그저 커피를 사랑해서 생겨버린 일들이다.




애정 하는 커피 리브레 대표가 재작년에『커피를 좋아하면 생기는 일』이라는 책을 냈다. 나는 커피 리브레의 커피뿐 아니라 커피 리브레의 철학도 몹시 사랑한다.


커피에 미친 사람들의 커피, 미학적으로 아름다운 커피, 늘 커피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커피.


책을 읽으며 서필훈이라는 사람은 커피라는 일을 정말 사랑하는구나…라고 느꼈다. 덕분에 내가, 우리가 마시는 커피 리브레의 커피가 그토록 사연 있게 맛있다는 것도. 여담이지만 서필훈 대표가 책에, 캐치프레이즈 격으로 ‘사연 있는 커피’라는 이름을 지으려다 마케팅을 위해 ‘얼굴 있는 커피’라는 이름이 픽스됐다는 에피소드가 나오는데 나는 ‘사연 있는 커피’에 한 표를 던지고 싶다. 서필훈 대표가 젊어서 다행이다, 내 생전에는 커피 리브레 커피를 계속 마실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그리고 커피라는 일에 대한 그 열정적인 사랑에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자다가 새벽에 눈을 뜨면 디지털시계부터 확인한다. 미친 것 같지만 모닝커피 마실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 가늠해본다. 아직 잠의 엔딩 요정이 물러가지 않은 이른 아침(순전히 내 기준에), ‘아 커피 맛있겠다.’ 이런 생각으로 일어난다.


커피는 늘 좋지만, 긴 이별(수면) 뒤에 마시는 모닝커피는 그중 제일 맛있다.


밤에는 모닝커피를 생각하는 것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