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한 연인], [시선으로부터,]에 등장하는 미국 커피
아버지의 커피 한 잔 vs 딸의 찰스 디킨스
아버지는 살면서 아무리 힘든 일이 닥쳐도, 아무리 풀이 죽고 기운이 빠져도, 자신이 언제나 이겨낼 수 있을 거라고 확신했다고 말했다. 당신이 아침에 일어나 처음 커피를 마시는 순간을 고대하는 한은 이겨낼 수 있을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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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관 앞 계단에서 피우는 담배나 욕조에 몸을 담그고 먹는 생강 커피의 즐거움과 맛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면, 십중팔구 쓸데없는 위험 속에 몸을 담갔다고 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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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반드시 소박한 즐거움을 위해 싸울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우아함이나 박학다식처럼 온갖 화려한 유혹에 맞서서 소박한 즐거움을 지켜야 한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내게는 찰스 디킨스의 책들이 아버지의 커피 한 잔과 같은 역할을 했다. 소외계층에 속하면서도 용감한 책 속의 젊은이들과 아주 적절한 이름을 지닌 악당들에게 조금 짜증스러운 구석이 있는 것은 솔직히 사실이다. 하지만 나는 아무리 우울할 때도 디킨스 소설을 읽다가 정거장을 지나칠 만큼 책에 몰입할 수만 있다면 모든 일이 잘 풀릴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에이모 토울스, 『우아한 연인』, 김승욱 옮김, 현대문학, 2019, 209~210쪽
“기일 저녁 여덟 시에 제사를 지낼 겁니다. 십 주기니까 딱 한 번만 지낼 건데, 고리타분하게 제사상을 차리거나 하진 않을 거고요. 각자 그때까지 하와이를 여행하며 기뻤던 순간, 이걸 보기 위해 살아 있었구나 싶게 인상 깊었던 순간을 수집해 오기로 하는 거예요. 그 순간을 상징하는 물건도 좋고, 물건이 아니라 경험 그 자체를 공유해도 좋고.”
-정세랑, 『시선으로부터,』, 문학동네, 2020, 83쪽
‘처음부터 커피였다. 경아는 큰언니의 기묘한 제사상차림에 대한 설명을 듣자마자 마음을 정했다. 다른 사람들은 뭘 하나 간을 보다가 재빨리 선언했다. 숨겼다가 화려하게 내보이고 싶은 마음과 선점하고 싶은 마음이 싸우다가 후자가 이겼다. 제대로 내린 커피야말로 심시선 여사와 경아 둘만의 기호품이었기에 빼앗길 수 없었다.
“꼬맹이가 커서 커피맛을 알아.”
엄마는 몇 번이고 반복해서 감탄하듯이 말했다. 나를 키운 여자의 순수한 감탄이 뭣도 아닌 커피 취향에 쏟아졌지, 경아는 자주 웃었다.’
-위와 같은 책 115쪽
“엄마, 재밌는 이야기 해줄까? 우리 회사에 커피머신이 하나 있어. 휴가 다녀온 사람이 엄청 비싼 원두를 사 온 거야. 다들 기대에 차서 그 머신에 내렸는데……”
“어떻디?”
“코스트코 원두랑 똑같은 맛인 거야.”
“뭐어? 그럴 리가?”
“충격이었지. 그럴 리가 없다, 뭐가 문제인가? 그래서 드립으로 내려봤더니 풍미가 다르고 눈물이 날 것 같이 맛있어서, 커피머신이 문제였던 게 밝혀졌어. 애초에 드립으로 내렸어야 했는데 원두 낭비한 거지. 사온 사람 당황하는 얼굴을 엄마가 봤어야 하는데.”
“그렇지만 대단한 기계네.”
“왜?”
“그렇게 다른 원두를 똑같은 맛으로 내려버린다는 게, 대단한 항상성이잖아?”
경아는 오래전에 식어버린 커피와, 오래전에 끝난 대화를 하와이에서 곱씹었다. 만약에 경아가 완벽한 코나 원두를 사서 엄마가 좋아하던 묵직한 미국식 머그에 내려 제사상에 올리면 죽고 없는 사람이라고 웃을 것이다. 그것은 두 사람만의 유머였으니까. 엄마, 그때 말했던 그 코나 원두야, 하고 죽고 없는 사람을 웃게 하고 싶었다.
같은 책, 123~124 쪽
‘근사한 원두를 천천히 신중하게 고른 다음에, 내리는 연습을 여러 번 할 것이다. 모두 감탄할 만한 한 잔을 엄마에게 올리고, 그다음에 더 내려서 나눠 마실 것이다.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어깨가 내려가고 가슴이 펴졌다. 경아는 소중히 들고 온 드리퍼를 얼른 사용할 수 있길 바랐다.’
‘경아는 늦은 시간에도 이 커피 저 커피를 조금씩 내려 맛보고 있었다.'
-같은 책, 13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