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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피 읽는 여자 Apr 12. 2022

케이티 아빠와 경아 엄마의
미국 커피

[우아한 연인], [시선으로부터,]에 등장하는 미국 커피

커피 애호가 에이모 토울스는 『모스크바의 신사』의 전작인 『우아한 연인』에서도 커피 이야기를 빼놓지 않았다.


아버지의 커피 한 잔 vs 딸의 찰스 디킨스


아버지는 살면서 아무리 힘든 일이 닥쳐도, 아무리 풀이 죽고 기운이 빠져도, 자신이 언제나 이겨낼 수 있을 거라고 확신했다고 말했다. 당신이 아침에 일어나 처음 커피를 마시는 순간을 고대하는 한은 이겨낼 수 있을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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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관 앞 계단에서 피우는 담배나 욕조에 몸을 담그고 먹는 생강 커피의 즐거움과 맛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면, 십중팔구 쓸데없는 위험 속에 몸을 담갔다고 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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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반드시 소박한 즐거움을 위해 싸울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우아함이나 박학다식처럼 온갖 화려한 유혹에 맞서서 소박한 즐거움을 지켜야 한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내게는 찰스 디킨스의 책들이 아버지의 커피 한 잔과 같은 역할을 했다. 소외계층에 속하면서도 용감한 책 속의 젊은이들과 아주 적절한 이름을 지닌 악당들에게 조금 짜증스러운 구석이 있는 것은 솔직히 사실이다. 하지만 나는 아무리 우울할 때도 디킨스 소설을 읽다가 정거장을 지나칠 만큼 책에 몰입할 수만 있다면 모든 일이 잘 풀릴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에이모 토울스, 『우아한 연인』, 김승욱 옮김, 현대문학, 2019, 209~210쪽



거창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세상과 맞서 싸우기란 사실 힘들다. 그런데 그것이 아주 소박한 즐거움을 위해 싸우는 일이라면 해 볼만 하다. 가끔 바빠서 커피 한 잔 하면서 책 볼 시간이 없었다는 걸 깨달으면 눈물이 날 만큼 서럽다. 뭐가 잘 못 됐다는 증거다. 그럴 땐 그 일에서 손을 떼야한다. 커피를 마시다, 책을 읽다 놓친 일들은 생각해보니 중요한 일이 하나도 없었다. 오히려 그 순간에 커피를 마시지 않아서, 책을 읽지 않아서 삶의 중요한 일들이 풀리지 않았다.


-미국 커피


미국은 미국이라는 나라가 생기기 전부터 네덜란드에 의해 1600년대 초반 커피가 전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1616년 네덜란드는 예멘의 커피 묘목을 훔쳐 암스테르담에서 재배하고, 식민지 인도, 인도네시아에서 커피를 대량 생산하게 된다. 커피가 네덜란드를 통해 미국에 전해지긴 했지만, 영국 식민지 시절 미국으로 이주한 영국인들은 차를 즐겨마셨다. 1773년 영국에서 차에 매기던 높은 세금이 도화선이 되어 보스턴 차 사건이 일어나게 된다. 영국은 보스턴 차 사건을 빌미로 식민지 탄압을 강화한다. 그에 대한 저항으로 차를 끊고 커피 소비가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네덜란드에서 커피를 수입하던 미국은 커피 소비가 증가하자 하와이에 커피 재배를 시작한다. 하와이는 미국 땅에서 유일하게 커피 재배에 알맞은 떼루아를 갖춘 곳이다. 현재도 하와이에서는 커피가 재배되고 있고, 세계 3대 커피 중에 하나인 ‘하와이 코나’ 커피로 유명하다.

 미국은 이후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인스턴트커피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한다. 1940년대경에는 세계 커피의 80%가 미국에서 소비됐다고 한다. 책에서 20대의 케이티가 1930년대 말에서 1940년경 친구들과 마신 커피는 아마도 그리 질이 좋지 않은 인스턴트커피였을 것 같다. 30년이라는 세월이 지난 현재의 케이티가 살고 있는 커피는 달랐다. 스페셜티 커피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스페셜티 커피는 1970년대 미국에서 처음 언급된다. 기존의 커피와 품질면에서 차별화된 커피를 만들기 위해 1982년 미국 스페셜티 커피협회(SCAA)가 설립된다. 참고로, 유럽스페셜티커피협회는 SCAE인데 최근 둘을 통합해 SCA로 부른다. 스페셜티라는 커피 개념이 생기면서 커핑 폼이 생기고, 이 커핑 폼을 기준으로 80점 이상을 획득한 커피를 스페셜티 커피라고 불렀다. 오늘날 세계 공통의 커피 평가기준이 생겨나게 되었다.

 하워드 슐츠가 스타벅스로 인수해 세계 어디서나 똑같은 맛의 에스프레소 계열의 프랜차이즈를 시작한 것이 1987년이다. 그리고 스타벅스의 반기를 들며 미국의 3대 커피가 태동하게 되는데, 1995년 카운터컬처를 시작으로 인텔리젠시아, 1999년 스텀프타운이 생겨나 커피 제3의 물결을 이끌게 된다.


제3의 물결의 바통을 우리나라가 이어받은 것 같다. 2000년에 들어서면서 현재 20222년까지 대한민국은 명실공히 커피공화국이 되었다. 편의점 개수보다 많은 것이 카페라고 하니, 대한민국은 커피 사피엔스들의 나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 또한 커피 사피엔스 중에 한 명으로써, 카페를 일상으로 드나들고, 커피를 세끼 밥 먹듯 챙겨 마신다. 그리고, 책에서 커피의 문장들을 즐겨 찾는다.


MZ세대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라는 정세랑 작가의『시선으로부터,』에도 '커피'가 등장한다.


『시선으로부터,』는 심시선의 자식들이 제사를 지내지 말라는 엄마의 말대로 쭉 제사를 지내지 않다가 심시선의 기일 10주기를 맞아 하와이에 가서 제사를 지내기로 하면서 시작된다.


엄마 심시선의 아들딸과 결혼한 배우자와 그 자녀들까지 도합 12명이 ‘제사’를 위해 하와이에 모인다. 하와이 제사를 기획한 큰 딸 명혜가 제사 브리핑을 한다.


“기일 저녁 여덟 시에 제사를 지낼 겁니다. 십 주기니까 딱 한 번만 지낼 건데, 고리타분하게 제사상을 차리거나 하진 않을 거고요. 각자 그때까지 하와이를 여행하며 기뻤던 순간, 이걸 보기 위해 살아 있었구나 싶게 인상 깊었던 순간을 수집해 오기로 하는 거예요. 그 순간을 상징하는 물건도 좋고, 물건이 아니라 경험 그 자체를 공유해도 좋고.”

-정세랑, 『시선으로부터,』, 문학동네, 2020, 83쪽



 나도 책을 읽는 동안에는 엄마 심시선도 모르는 심시선의 딸이 되어 제사상에 무얼 올릴까 고민했다.


‘커피’


나의 엄마 심시선이라면-내가 읽은 문장이라는 경험을 통해-커피를 좋아할 것 같았다. 그런데 심시선도 모르는 책 밖의 숨은 딸로서 나는 정말이지 깜짝 놀라는 문장과 마주하게 된다.  


 ‘처음부터 커피였다. 경아는 큰언니의 기묘한 제사상차림에 대한 설명을 듣자마자 마음을 정했다. 다른 사람들은 뭘 하나 간을 보다가 재빨리 선언했다. 숨겼다가 화려하게 내보이고 싶은 마음과 선점하고 싶은 마음이 싸우다가 후자가 이겼다. 제대로 내린 커피야말로 심시선 여사와 경아 둘만의 기호품이었기에 빼앗길 수 없었다.
 “꼬맹이가 커서 커피맛을 알아.”
 엄마는 몇 번이고 반복해서 감탄하듯이 말했다. 나를 키운 여자의 순수한 감탄이 뭣도 아닌 커피 취향에 쏟아졌지, 경아는 자주 웃었다.’

-위와 같은 책 115쪽



책 속 심시선의 딸 경아가  ‘커피’를 선점해버렸다. 이럴 수가.

 

나는 가끔 아이가 커서 함께 커피를 마시는 날을 상상한다. 그리고 아이에게 엄마가 이 세상에 없어도 너무 슬퍼하지 말라고, 커피를 마시며 엄마 생각해주면 엄마는 죽기 전에도 벌써 기쁠 것 같다고 말한다. 아직 함께 커피를 마시기에는 꼬맹이인 나의 아기는 ‘죽음’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벌써 눈가에 눈물이 맺힌다. 그래도 가끔 전한다. 죽음은 사고처럼 언제고 들이닥칠 테니까.



“엄마, 재밌는 이야기 해줄까? 우리 회사에 커피머신이 하나 있어. 휴가 다녀온 사람이 엄청 비싼 원두를 사 온 거야. 다들 기대에 차서 그 머신에 내렸는데……”
“어떻디?”
“코스트코 원두랑 똑같은 맛인 거야.”
“뭐어? 그럴 리가?”
“충격이었지. 그럴 리가 없다, 뭐가 문제인가? 그래서 드립으로 내려봤더니 풍미가 다르고 눈물이 날 것 같이 맛있어서, 커피머신이 문제였던 게 밝혀졌어. 애초에 드립으로 내렸어야 했는데 원두 낭비한 거지. 사온 사람 당황하는 얼굴을 엄마가 봤어야 하는데.”
 “그렇지만 대단한 기계네.”
“왜?”
“그렇게 다른 원두를 똑같은 맛으로 내려버린다는 게, 대단한 항상성이잖아?”
 경아는 오래전에 식어버린 커피와, 오래전에 끝난 대화를 하와이에서 곱씹었다. 만약에 경아가 완벽한 코나 원두를 사서 엄마가 좋아하던 묵직한 미국식 머그에 내려 제사상에 올리면 죽고 없는 사람이라고 웃을 것이다. 그것은 두 사람만의 유머였으니까. 엄마, 그때 말했던 그 코나 원두야, 하고 죽고 없는 사람을 웃게 하고 싶었다.

같은 책, 123~124 쪽



경아가 엄마의 제사상에 올릴 커피가 정해졌다. ‘하와이 코나 원두’ 


세상에서 가장 비싸고 맛있기로 소문이 자자한 커피다. 하와이 커피는 밀크 초콜릿과 약한 과일의 산미, 중간 바디감을 내면서 균형감, 청명함, 부드러움을 지니고 있다. 하와이 커피는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잘 팔리기 때문에 위조품이 많다. 특히 산지가 코나로 적혀 있으면 한 번쯤 의심해볼 만하다. 하와이 내에서는 ‘코나’라는 이름을 달고 시장에 내놓으려면 코나에서 재배된 생두가 적어도 10% 이상 포함되어 있어야 한다는 규정이 있지만, 미국 본토에서는 이런 규칙이 적용되지 않기 대문이다.


경아는 커피 농장이 직접 납품하는 지역 마켓 부스들을 돌며 작은 수첩에 원두 맛을 꼼꼼하게 비교 기록한다.


 ‘근사한 원두를 천천히 신중하게 고른 다음에, 내리는 연습을 여러 번 할 것이다. 모두 감탄할 만한 한 잔을 엄마에게 올리고, 그다음에 더 내려서 나눠 마실 것이다.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어깨가 내려가고 가슴이 펴졌다. 경아는 소중히 들고 온 드리퍼를 얼른 사용할 수 있길 바랐다.’
 ‘경아는 늦은 시간에도 이 커피 저 커피를 조금씩 내려 맛보고 있었다.'

-같은 책, 138쪽



심시선의 자녀들이 머무는 숙소에 도둑이 들어 현금과 하필 커피 원두를 훔쳐간다. 경아는 딱 한 잔 완벽하게 올리려 했던 엄마 커피를 도둑 맞고 엉엉 울어버린다.


경아는 심시선이 늘 두꺼운 미국식 머그잔에 커피를 마셨다고 한다. 미국식 머그잔은 두꺼워서 열이 오래 보존되고 바닥이 거칠게 마감되어 있어 탁자에서 잘 미끄러지지 않는다. 테두리가 두꺼워야 입술에 음료가 닿았을 때 부드럽게 감긴다. 웬만해서 잘 깨지지 않을 정도로 튼튼해서 제1차 세계 대전 동안 군대에서도 이 컵을 애용했다고 한다.



-하와이 코나 커피


하와이의 8개 섬들 중 가장 큰 섬인 하와이섬에 ‘코나’라고 불리는 작은 지역이 있다. 이곳 코나에서 생산되는 커피만 ‘하와이안 코나 커피’로 불린다. 하지만 코나엔 커피 농장이 600여 개, 연간 생산량이 500톤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그래서 하와이 정부는 코나 커피가 10%만 섞여 있어도 ‘코나’ 커피로 표기하는 걸 허용하고 있다. 그러니 코나 커피라고 100% 코나 커피가 아닐 수 있다.


코나 커피가 유명한 이유는 품질이 우수하기 때문이다. 토양과 기후가 커피를 재배하기 최적이다. 코나 지역은 화산토양으로 미네랄이 풍부하고 물 빠짐도 좋다 커피나무가 자라기에 이상적인  조건을 갖추고 있다. 하와이 코나에는 100년이 넘은 커피나무도 있다고 한다. 티피가 원종을 재배하며 등급은 스크린 사이즈로 정하고, 다른 나라들이 쓰지 않는 그들만의 언어로 최고등급을 ‘엑스트라 팬시’ 다음 등급을 ‘팬시’라고 부른다.  


 오늘 오후엔 미국식 두꺼운 머그잔에 그동안 아껴두었던 하와이 코나 커피를 내려 마셔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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