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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식작가 Sep 24. 2022

딸기가 좋아, 집에서 키운 딸기가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과일 제배 이야기 

  우리 집 앞마당 한켠에는 풀이 무성하게 자란 곳이 있다. 언뜻 보면 잡초 같이 보이지만 그것은 엄연한 재배 장소이다. 귀촌하고 얼마 안 가 마당 한쪽에 무심하게 뿌려진 딸기는 생각보다 무럭이 잘 자랐다. 하우스가 아닌 노지에서 자라는 딸기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많이 다르다. 이제는 거의 겨울 과일이 되어버린 딸기지만 알다시피 딸기는 초봄에 먹는 과일이다. 햇살이 아직 뜨거워지기 전, 그 달콤함은 갑작스레 찾아온다.



  귀촌을 하고, 농사를 시작한 엄마와 아빠는 당연하게도 무농약, 무비료, 무화학 농사를 시작했다. 모든 귀촌인의 꿈이자 소망인 무농약, 유기농 농사를 시도한 것이다. 하지만 엄마 아빠가 일궈 놓은 밭과 그 노동 강도, 두 분의 생생한 증언을 토대로 질소 비료가 왜 인류를 구원했는지 절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특정 농산물을 화학의 힘 없이 우리가 알고 있는 크기와 모양, 맛으로 길러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다. 딸기도 마찬가지였다. 허리를 숙여 딸기를 따도 우리 손에 잡히는 것은 손가락 한 마디 만한 딸기가 전부였다. 모양도 제각각에 크기는 아주 자잘한 딸기. 산딸기와 비슷한 크기였다. 딸기 농장에서 상품성이 제로라고 할 법한 과실이었지만 우리는 개의치 않았다.



  맛이 중요하다. 크기와 모양이 무엇이 중요한가. 입으로 들어가면 다 똑같은 것을. 자잘한 딸기를 한 움큼 집어 입에 넣으면 딸기 향이 진동하다 못해 폭발한다. 새콤함과 달콤함이 모두 다른 딸기들이 한데 모여 입 안을 가득 채운다. 마트에서 파는 플라스틱 팩 안에 담긴 딸기를 베어 물었을 때 맛볼 수 있는 압도적인 달콤함은 아니다. 하지만 훨씬 자연스러운 맛이다. 과일이 가지는 새콤함과 달콤함의 그 어딘가 중간 지점. 톡톡 터지면서 입 안 구석구석 스미어든다. 



  마당 한켠에 위치한 아주 작은 밭이지만 생각보다 생산력이 어마어마하다. 씨알이 작을지라도 쑥쑥 자라는 과실은 우리가 감당하기 힘들 정도다. 결국 생과일로 먹는 것이 지치면 엄마는 이것을 냄비에 넣고 팔팔 끓여서 딸기잼을 만든다. 이 딸기잼은 한동안 우리 집의 히트상품이었다. 가끔 집에 놀러 오는 친척들과 손님들에게 선물로 손에 들려 보냈고 극찬을 받았다. 엄마는 너무 맛있다는 한 마디에 뿌듯함을 느끼며 매해 딸기잼을 만들었다. 해를 거듭할수록 힘에 부쳐 양이 줄긴 했지만 딸기잼은 여전히 우리 집의 주력 상품이다. 



  생과일로 먹고, 딸기잼으로 만들고 나면 남은 딸기는 냉동실에 들어간다. 그렇게 잠시 동안 냉동실에 묵혀뒀던 딸기는 땀 뻘뻘 흘리는 한여름에 바깥 구경을 한다. 꽝꽝 언 딸기를 우유와 딸기잼을 넣고 갈면 그대로 딸기 쉐이크가 된다. 생과일도 좋고 딸기잼도 좋지만 나는 이게 가장 좋다. 선풍기를 쐬며 소파에 앉아 쏟아지는 햇볕을 보면서 머리가 깨질 것 같이 시원한 딸기 쉐이크를 먹으면 더위가 싹 내려간다. 사각사각 씹히는 딸기는 진짜 딸기가 통으로 들어갔다는 것을 상기시켜 준다.  



  이렇게 들으면 우리 집이 대부분의 과일을 길러서 먹을 것 같지만 딸기를 제외하면 과일만큼은 마트와 시장에 의존한다. 엄마와 아빠는 여러 과일 제배를 시도했다. 특히 엄마가 과일에 힘을 쏟았다. 포도, 수박, 사과 등등의 나무를 심었지만 무농약, 유기농 정책은 과일 제배에 도움을 주지 못했다. 게다가 노하우도 부족했으니 별 수가 없었다. 많은 나무들이 말라죽었고 그나마 살아남은 과일은 당도가 부족했다. 노지에서 자란 만큼 향은 부족함이 없었지만 단 맛이 문제였다. 


  엄마는 대부분의 과일 제배를 실패하고 수박 하나를 애지중지 키웠었다. 두 통의 수박이 살아남았고 정성을 쏟은 덕분에 여름에 수확의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 그마저도 어린애 머리통만 한 작은 수박이었다. 향은 정말 부족함이 없었고 당도도 이전에 길렀던 과일들에 비하면 양반이었지만 아쉬운 것은 사실이었다. 양도 수박 두 통이 전부였으니 그것으로 여름을 나기에는 문제가 있었다. 결국 딸기와 수박 정도를 제외하면 먹을만한 과일이 없었다.  



  나는 이 사실에 적잖이 충격을 먹었었다. 대체 내가 지금까지 먹어온 달콤한 과일들은 어떤 과정을 거쳐서 내 입으로 들어왔을까. 그 크기, 당도를 유지하기 위해 어떤 작업들이 있었을까. 사실 나는 그런 것에 크게 개의치 않는 스타일이다. 성장촉진제, 당도 조절제, 질소비료 등등 뭐, 안전하니까 지금까지 잘 써 왔겠지. 먹어도 큰 문제는 없겠지. 지금도 변함은 없지만 놀라운 것은 사실이었다. 아무 조치도 하지 않았을 때 드러나는 과일의 민낯은 생각보다 초라했다. 어쩌면 나는 나무의 힘보다 화학의 힘을 빌려서 과일을 먹고 있던 것은 아닐까.



  엄마는 분명 다음 해에도 수박을 시도할 것이다. 어쩌면 다른 과일들을 또 재배할지 모르겠다. 그 맛을 보장할 수는 없지만 엄마는 뿌듯해했다. 어찌 되었든 얼추 수박 모양을 갖춘 열매가 자랐다는 것에 만족해했다. 내가 집에 내려갔을 때, 수박이 자랐다며 나에게 자랑하던 엄마의 모습은 기뻐 보였다. 아들에게 밭에서 직접 기른 수박을 먹일 수 있다는 생각에 행복해했다. 아마도. 그래, 과일나무가 말라 죽고, 달지 않으면 어떨까. 그런다고 세상이 망하는 것도 아닌데. 결국 해마다 보장된 맛을 보여주는 딸기가 있고 어렴풋이 자라는 수박이 있는데. 과일 키우기가 세상에서 제일 어렵다는 것을 몸소 알았지만 그것마저도 엄마는 경험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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