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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식작가 Oct 13. 2022

서울 사람들은  가장 맛없는 음식을 먹는다

농촌과 도시에서 먹는 음식의 차이

  스무 살이 되어서 냉이 된장국을 서울에서 먹은 적이 있다. 아마 어느 가정식 식당에서 그날의 국으로 나왔던 것 같다. 사실 나는 냉이 된장국에 넣어 먹는 것을 그렇게 선호하지 않는다. 향이 너무 강해서 모든 맛이 냉이로 귀결되어 즐겨 먹지는 않는다. 하지만 봄날에 그것이 빠지면 섭섭하긴 하다. 향이 넘치다 못해 모든 것을 지워버리는 냉이는 봄나물의 대명사니까. 그런 마음으로 냉이와 된장국을 떠서 한 입 넣었다. 나는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냉이 철이 조금 지나긴 했지만 이 정도인가?



  향은 그렇다 치더라도 끔찍하게 질겼고 억셌다. 입에서 되새김질하듯 한참을 씹어야 목구멍으로 넘어갈 수 있었다. 내가 알고 먹어온 냉이와는 무언가 달랐다. 냉이가 원래 부드러운 나물은 아니지만, 적당히 질깃하게 씹히긴 하지만 이렇게 섬유질이 통째로 입에서 느껴지지는 않았다. 유독 그 식당에서 질 낮은 냉이를 썼던 것일 수도 있지만 충격적이고, 황당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서울에서 살면서 여러 식당에서 여러 나물을 반찬으로 먹어봤지만 감상은 늘 비슷했다. 어쩌면 당연한 것일 수도 있다. 아무리 유통 기술이 발달해도 현지에서 먹는 것과는 메꿀 수 없는 차이가 존재한다. 나는 그 모든 것을 감안했음에도 이 정도로 눈에 띄게 차이가 날 줄은 몰랐던 것이다.



  시골에 내려가서 내가 평소에 가지고 있던 시골의 이미지와 다른 것이 몇 가지 있었는데 그중에 하나가 식습관에 대한 것이었다. 이전까지 시골 사람들은 아무거나 잘 먹을 줄 알았다. 산에서 나는 무수히 많은 나물들과 다소 억세고, 투박한 식재료도 요리를 하는 실력으로 잘 소화시킬 줄 알았다. 솔직히 말해 편견을 가지고 있던 셈이다. 무엇이든 잘 먹고, 맛없는 것을 감안할 줄 았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대단히 끔찍한 오만이었다. 내가 옆에서 지켜본 시골인들은 누구보다 맛있는 것을 먹었다. 입맛이 굉장히 까다로웠고 맛없는 것은 적극적으로 배척했다. 어쩌면 맛없는 음식은 도시인들이 전부 먹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맛있는 음식은 그 음식이 얼마나 고급진 방식으로 세련되고 값비싼 재료를 써서 요리했냐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주어진 환경에서 얼마나 싱싱하고 질 좋은 식재료를 사용하냐를 말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시골인들은 대단한 미식가였다. 산에서 나는 나물들 중에서도 최상급, 가장 맛있는 것만을 채취했고 다소 맛이 떨어지는 것들은 눈길도 주지 않았다. 제철 지나 맛과 향이 죽은 것들은 다음 해를 기약했다. 시골인들은 밭에서 난 최상품만 취급해서 먹었다. 먹을 것이 지천에 널렸기에 굳이 손이 많이 가고, 맛이 떨어지는 식재료를 먹을 이유가 없었다.   



  일례로 개망초라는 흔해빠진 나물이 있다. 시골은 물론이고 도시의 공터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는 식물이다. 번식력이 좋아서 잡초 취급을 받는다. 생으로 익혀 먹으면 맛이 별로지만 한 번 말려서 건나물로 먹으면 요상하게 씹는 맛과 감칠맛이 불어난다. 한 번 말려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지만 쉽게 채취할 수 있고 양이 많아 우리 가족이 즐겨 먹는 나물이었다. 엄마와 아빠가 그런 나물을 길가에서 따고 있는데 마을 어르신이 가면서 물었단다. 왜 잡초를 캐고 있냐고. 엄마와 아빠는 당황했다고 한다. 우리는 먹으려고 따는 것인데 잡초라니. 그래서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말려 먹으려고 한다고 했지만 어르신은 그렇게 수고스럽고 맛없는 것을 왜 먹냐면서 산에 가면 더 맛있는 것이 많다고 했다.


  

  산에 더 보드랍고, 더 향기로운 나물이 넘쳐나는데 왜 길가에 흔하게 피는 개망초를 먹냐는 것. 시골인들이 모든 나물을 섭렵한다는 인식이 무참이 박살난 순간이었다. 시골 사람들에게도 개망초는 잡초일 뿐이었고 먹을 이유를 찾을 수 없는 식물이었다. 또 하나는 뽕나무 잎이었다. 오디열매가 자라는 뽕나무 잎은 나물로 먹는다. 봄에 가지 끝에서 나는 새순을 똑하고 따서 무쳐 먹는데 생각보다 맛이 좋다. 은은한 향이 나고, 부드러워서 봄에 먹기에 아주 알맞다. 하지만 집에 있는 뽕잎을 따고 있는데 지나가는 어르신들은 어김없이 그것을 물어봤다. 왜 뽕잎을 따고 있냐고. 우리는 나물로 해 먹는다고 말했다. 그게 먹을 수 있는 나물이냐며 어르신들은 되려 신기해했다. 시골에서 평생을 산 어르신들보다 갓 시골에 이사 온 우리가 더 다양한 나물을 먹는 셈이었다.



  개망초와 뽕잎은 맛있다. 맛없는 나물이 절대 아니다. 나는 이 두 나물을 꽤나 좋아하는 편이다. 하지만 산에 자라는 참나물과 취나물처럼 각종 향이 듬뿍 담긴 나물을 먹어왔던 마을 사람들에게는 생소한 나물이었던 것이다. 물론 그분들이 나물에 대해 따로 공부할 정도로 열정을 보이지 않고 윗 세대를 보고자라면서 이제껏 먹어온 것만 먹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어찌 보면 편협되고 변화를 싫어한다고 여길 수 있지만 변화가 필요할 만큼의 상황이 없었다고 생각된다. 개망초와 뽕잎보다 향기롭고 부드러운 나물들이 많았기에 굳이 그것들을 먹을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다양한 국적의 유려한 음식들은 찾아보기는 힘들지만 적어도 시골에서 구할 수 있는 것들은 그중에서도 가장 맛있는 것만 골라서 먹고 있는 것이다. 서울에서는 마트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나물도 정작 시골 사람들은 맛이 별로 없다고 재배하지 않거나 재배해도 상품용으로 출하하고 본인들은 먹지 않는다.



  결국 우리 가족도 시간이 지나면서 먹는 나물만 먹었다. 귀촌 생활 초기에 엄마와 아빠, 그리고 나 마저도 이렇게 먹을 수 있는 식물이 많다는 것에 놀랐다. 독초가 아닌 이상 거의 모든 식물은 조리법이 존재했다. 그래서 산으로, 들로, 밭으로 나가 나물을 캤다. 가끔은 나도 가방을 들고 산으로 같이 올라갔다. 나물을 따는 것이 생각보다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땅에서 자그맣게 올라온 유약한 나물을 따면 신기하기도 하고 뿌듯하기도 하다. 내가 시장에서, 식당에서 보아왔던 나물이 이렇게 산에서 자라는구나. 그냥 풀처럼 보이는 이게 진짜 먹을 수 있는 것이구나. 먹을 수 있다는 것은 거의 다 캐고 먹어봤던 것 같다. 그 자체로도 너무 신기해서 우리 가족은 이것저것 다 먹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자체적으로 걸러지기 시작했다. 나물을 캐고, 가공하고, 먹는 그 과정이 너무 수로롭고 그런 수고로움에 비해 맛이 떨어지는 것들은 하나 둘 식탁에서 자취를 감췄다. 왜 어르신들이 그것들을 먹지 않았는지 몸소 깨닫기 시작했다. 물론 마을 어르신들에 비해 여전히 우리 가족은 그들이 잡초라고 취급하는 여러 나물들을 먹지만 확실히 초반에 비해 그 종류가 줄어들었다. 우리마저도 널려 있는 야채와 채소, 나물들 사이에서 한마디로 가성비가 떨어지는 것을 걸렀다.



  그래서 그렇게 싱그러운 것들이 풍족한 곳에서 살다가 서울에 떨어지면 충격적이지 않을 수가 없다. 원래 그 해 처음으로 딴 두릅은 부드럽고 향이 진하다. 반도 안 되는 향에 질깃질깃한 두릅을 서울에서 먹으면 당혹감을 감출 수가 없다. 노지에서 비와 바람을 듬뿍 맞고 자란 것과 하우스에서 키워진 작물은 당연히 다를 수밖에 없다. 제철이 아닌 시기에 먹을 수 있는 것은 하우스에 덕택이 크지만 그 대가로 맛을 앗아갔으니 공평한 거래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농업 기술과 유통 기술의 발달로 그 차이는 빠르게 좁혀지고 있을 것이다. 돈을 더 주고, 백화점에서 비싸게 돈을 주고 구매하면 향이 좋고 부드러운 제품을 구할 수 있겠지만 절대로 시골에서 먹는 것과 같을 수가 없다.   


  

  맛이라는 것은 상대적이다. 맛있는 음식이 유려한 조리기술로 조리한 요리 일 수도 있고 값비싼 고급 식재료를 사용한 음식일 수도 있으며 이국적인 음식이 될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서울을 비롯한 도시는 맛있는 음식의 천국일 수도 있다. 하지만 신선한 식재료, 노지에서 비와 바람을 맞고 자란 식재료, 제철에 먹는 식재료를 사용한 것이 맛있는 음식이라면 서울 사람이 가장 맛없는 음식을 먹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시골은 멀쩡한 나물도 잡초 취급을 해버릴 만큼 온갖 식재료에 뒤덮여있는 고귀한 곳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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