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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식작가 Oct 06. 2022

시골 사람이
어둠을 무서워하면 어떡해?

어둠과 친해져야 하는 귀촌 생활

    나는 겁이 많다. 덩치에 맞지 않게 겁이 왜 그렇게 많냐는 소리를 자주 들어왔다. 보는 사람을 수시로 깜짝깜짝 놀라게 하는 공포영화를 자의로 본 것은 일생에 단 한 번도 없다. 왜 나 스스로를 공포에 빠뜨리는데 돈을 써야 하는가. 귀신을 믿지는 않지만 귀신 이야기 역시 썩 좋아하지 않는다. 서늘한 날붙이를 보면 소름이 끼친다. 주사 맞는 것에 익숙해지기까지는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그중에서 어둠을 가장 싫어한다. 지금도 어둠을 싫어한다. 익숙하고 적응이 된 것일 뿐, 혼자서 어둠을 즐기는 편은 아니다.



  어렸을 때부터 어두운 것을 정말 정말 싫어했다. 혼자서 잠을 자기까지는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초등학교 3~4학년 때까지 중간에 잠에서 깨면 쪼르르 안방으로 달려가곤 했다. 엄마를 흔들어 깨워야 안심이 되었다. 엄마는 이것 때문에 골머리를 앓아야 했다. 하지만 어둠 속에서 혼자 잠에 드는 것은 나에게 공포였다. 빛이 들지 않는 어둠에서 꼭 무언가가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그것은 때로는 귀신, 악당, 괴물, 외계인 등이었고 내 상상 속 다양한 것들은 항상 어둠 속에 도사리고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에 사로잡혔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엄마를 깨우는 것, 불을 켜는 것뿐이었다.



  다행히 자라면서 어둠에 대한 공포를 어느 정도 떨쳐버릴 수 있었다. 혼자서 잠을 잘 수 있었다. 어두운 곳에서도 곧잘 있었고 적어도 어둠으로부터 도망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여전히 어둠이 주는 섬짓함과 공포감은 남아 있었다. 어둠에 대한 공포가 한번 꼬리에 꼬리를 물면 끝없이 펼쳐졌다. 잘만 자던 자취방에서 내가 어둠 속 혼자라는 사실을 문득 인지하면 식은땀이 흐르고 닭살이 돋는다. 나는 그쯤에서 포기했다. 내가 가진 체질이며 태생적인 것이라고 생각했다. 뭐, 일상생활을 하면서 죽을 것 같이 불편하지는 않으니까 이제는 그냥 그러려니 한다.



  하지만 이러한 어둠에 대한 공포는 시골에서 참으로 쓸모가 없고 거추장스러운 것이었다. 우리가 집을 지은 곳은 마을 끝자락에 위치한 곳으로 말이 마을이지 사실상 산과 밭 한가운데 위치해 있다. 2022년 현재, 무슨 바람이 불어서인지 우리 집 주변에 우리와 같은 몇몇의 귀농, 귀촌인들이 집을 짓고 살고 있지만 우리가 처음 집을 지을 당시는 근방에 우리 밖에 없었다. 우리가 가로등을 설치하지 전까지 집에서 가장 가까운 가로등은 20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마을 사거리 가로등이었다.



  다행히 우리가 입주함과 동시에 가로등을 설치했다. 덕분에 근방에서 가장 밝은 빛은 집 앞 가로등이었다. 하지만 마을 사거리 가로등과 우리 집 가로등 사이에는 그 어떤 불빛도 없다. 한 마디로 밤에 집으로 가려면 약 200미터 정도의 굽이진 시골길을 걸어야 했다. 게다가 읍내에서 놀다가 늦어진 날에는 그런 구간이 몇 개는 추가 되었다. 아직 어둠에 대한 공포를 잘 떨쳐내지 못했던 12살 나에게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이었다. 방 안에서 불을 끄고 있는 것도 아직 무서운데 어둠에 가려진 시골길이라니.



  그래서 최대한 해가 지기 전까지는 집에 들어가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중학생이 되고 학교에서 일주일에 두 번 보충 수업을 하는 날이 생기면서 밤 8시가 넘어서 집으로 귀가해야 했다. 다행히 같은 마을에 사는 친구가 있어 하교 때마다 함께 했지만 문제는 그놈의 사거리부터였다. 사거리 초입에 사는 친구와는 거기서 갈라져야 했다. 나는 마지막 가로등이 있는 사거리에서 우두커니 서서 어둠 속을 들여다보았다. 나무와 풀이 우거져있고 금방이라도 무언가가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어둠에 적응한 눈이 굽이진 길을 볼 수 있었지만 그게 전부였다.



  결국 나는 아빠찬스를 썼다. 사거리에서 아빠에게 전화를 했다. 아빠는 큼직한 렌턴을 들고 항상 나를 데리러 왔다. 어둠을 무서워하는 나를 잘 알고 있었고, 사춘기였던 내가 괜히 무서움을 들키고 싶지 않아 하는 것을 눈치챘는지 어두우면 전화하라고 내게 먼저 말해주었다. 그때 정말 얼마나 고맙던지. 나는 주저하지 않고 아빠의 도움을 받았다. 그때는 이게 속으로 꽤나 부끄러웠지만, 중학생씩이나 되어놓고 민망했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후회 없는 선택이 되었다.



  시골길의 어둠은 방구석의 어둠과 확실히 다르다. 그 당시 나는 나를 오랫동안 괴롭혀왔던 어둠 속의 상상의 존재들로부터 서서히 벗어나고 있었다. 어둠 속에 튀어나올 것만 같았던 귀신, 괴물, 악당, 외계인 등등 가상의 존재들이 말 그대로 실체 없는 '가상'의 존재임을 깨달아가고 있었다. 상상 속의 것들이 방구석 어둠에서 튀어나올 리 없다는 확신을 점차 가져가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시골길의 어둠은 달랐다. 그곳의 어둠에서 튀어나올 것 같은 것은 확실히 실체가 있었다. 진짜 존재하는 것들이었다.



  친구 어머니가 우리 집에서 고작 200미터 떨어진 낡은 다리에서 멧돼지와 맞닥뜨렸다는 소리를 듣고 나서는 한동안 어둠 속에서 멧돼지가 나올 것만 같았다. 친구 어머니가 마주친 멧돼지가 다행히 새끼를 달고 있어서 먼저 공격하지 않았지만 그것이 아니라 호전적이고 굶주린 멧돼지였다면 정말 큰일을 당할 뻔하셨다. 하지만 그것은 한동안 나를 괴롭혔다. 귀신이나 괴물 같은 몽상 속의 존재가 아니라 정말 내가 당장에도 마주칠 수 있는 멧돼지였다. 혹시 나도 마주치면 어쩌지라는 생각이 그 어두운 시골길을 걸으면서 한동안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대낮의 하굣길에서 도로에 수직으로 누워있는 뱀을 본 이후에는 뱀이 나올까 무서웠고 보름달이 뜨는 날에는 달빛에 비친 나무의 그림자가 괜히 소름 끼치기도 했다. 겨우겨우 실체 없는 존재들에 대한 공포를 떨쳐냈건만 이제는 실체 있는 존재들로부터 오는 공포와 싸워야 했다. 그리고 나무와 풀. 그것들은 어둠을 머금고 한층 더 섬뜩해진다. 겹겹이 쌓인 나무와 풀은 그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잘도 조성한다. 그것들 너머에 있을 존재에 대한 두려움을 증폭시켜준다.



  그런 공포는 집 앞마당에 나가도 마찬가지였다. 가로등이 있지만 여전히 집 앞마당은 어둡다. 주변을 돌아보면 사방이 산이요, 밭이요, 깊은 어둠을 품고 있는 것들이었다. 어디에서 무엇이 튀어나와도 이상하지 않았다. 끔찍하게 고요한 마당에 혼자 나가면 그 어두운 산속에 나 혼자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가끔 울어대는 산새와 고라니 소리, 바스락거리는 동물들의 움직임 소리는 이 어둠 속에서 내가 혼자가 아니라고 말해준다. 정말이지 그게 더 무섭다. 나 혼자인데 정작 혼자가 아닌 것.  



  물론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기숙사에 들어가면서 내가 집에서 어둠을 느낄 일이 줄어들었다. 항상 친구들과 부대껴 살았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시골길의 어둠이 주는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사실 벗어났다기보다는 잊어버린 것이 맞다. 지금도 그 어둠을 인지하면 공포스러운 것은 맞지만 굳이 떠오르지는 않는다. 친구들과 놀고 차와 걸음으로 1시간가량을 걸려 집 근처에 오면 그런 공포는 사라지고 피곤함에 절어있는 몸을 빨리 집에 데려다 놓고 싶은 마음뿐이다. 그리고 고3에 가까워질수록 대학 진학과 성적 등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고민들 덕분에 어둠은 뒷전이었다.



   그리고 스무 살이 되어 독립을 하고 난 뒤 가끔 집에 오자 더욱 공포를 마주할 일이 없었다. 밤새 술을 마시고 위와 같은 방식으로 1시간을 걸려 집에 도착하면 취기+피로+졸음이 나를 몽롱하게 만든다. 내가 걷고 있는 이 길이 어둠에 있는지, 빛에 있는지 생각할 새도 없이 집에 도착해 있다. 이런 탓에 나는 나도 모르게 어둠에 익숙해졌다. 굳이 술과 피로의 힘을 빌리지 않아도 어둠 속 시골길을 200미터 정도는 걸을 수 있고, 간단한 통화나 산책을 위해 어두운 마당에 혼자 나갈 수 있다.


  

  이제 무서운 것은 사람이다. 어렸을 때 엄마는 항상 나에게 귀신보다는 사람이 무섭다고 강조했다. 당연히 그때는 알지 못했다. 사람보다는 귀신이 당연히 무섭다고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지금은 시골 밤길에서 풀숲에서 무엇이 부스럭거릴 때보다 저 편에서 사람이 저벅저벅 걸어올 때가 가장 무섭다. 그때만큼은 중학생 때로 돌아가 아빠를 부르고 싶어 진다. 수상한 저 사람은 도대체 누구인가 하는 물음. 대게는 마을 사람들이어서 간단한 인사를 나누지만 그럼에도 늘 긴장한다. 야생동물과 귀신보다 더 많은 변수를 지닌 것이 사람이니까.



  결국 나는 이런 사람이 되었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어둠과 친해졌다. 실체가 있든, 없든 오랜 시간 나를 괴롭혀왔던 공포를 그럭저럭 잘 방어했지만 사람이 무서운 사람이 되었다. 게다가 어둠 속에서 걸어오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그냥 사람이면 일단 경계하고 움츠러드는 것을 보면 사람이 싫어 시골로 들어온 엄마와 아빠의 마음이 조금 이해가 되고 내가 두 분의 아들이 맞구나하는 생각이 뭉게뭉게 피어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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