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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식작가 Sep 23. 2022

PC방까지 꼬박 1시간

교통수단, 시골에서 가장 불편한 것

  초등학교 6학년 여름, 우리 가족은 귀촌을 했다. 그 당시 나는 도시에서 야무지게 놀 수 있는 나이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도시의 오만 곳을 친구들과 헤집고 다녔다. 내가 살던 아파트 단지는 자전거로 모든 것을 해결 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자전거로 10분 거리에 수영장, PC방, 문구점, 번화가, 놀이터 등등 놀거리가 널려 있었다. 내가 걱정해야 할 것은 자전거로 오르기 힘든 오르막길이 경로에 있느냐가 전부였다. 아파트 위층에는 친한 친구가 살았고 적당히 오후에 놀이터로 나가면 늘 놀던 그 친구들이 나를 반겼다. 사람부터 장소까지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모든 것들이 있었다. 나는 유년시절을 놀이가 풍족한 곳에서 보냈다.  



  하지만 이게 뭘까. 13살 여름에 나는 놀이가 풍족한 도시에서 갑자기 시골에 덩그러니 놓여졌다. 마치 무인도에 고립된 것처럼 갈피를 잡지 못했다. 전학을 가면서 친구들을 새롭게 사귀어야 한다는 것은 당연히 감당해야 할 것이었지만 도저히 적응할 수 없는 것은 우리집의 위치였다. 농사를 짓고 싶어서, 사람에 치이기 싫어서 우리 가족은 산 속에 숨었다. 작은 군 단위 도시의 읍내도 아닌, 리 단위 마을의 중심지도 아닌, 마을의 끝자락 밭 한가운데에 집을 지었다. 사람과의 접점을 많이 만들지 않기 위한 지극히 인공적인 의도였다. 그런 의도 속에서 나는 같혀버렸다. 몸도, 마음도.



  나는 게임을 잘하지는 못 했지만 좋아하긴 했다. 으레 남학생이 좋아하는 게임을 하기 위해, 친구들과 시끄럽게 떠들며 게임하기 위해 PC방에 갔다. 도시인이던 시절, 나는 초등학생 때 PC방을 처음 접했다. 담배냄새가 찌들어있고 어두컴컴하며 중고등학생 형들이 도사리고 있었지만 그저 엄마, 아빠의 눈 밖에서 게임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즐거웠다. 무언가 소박한 '자유'를 누리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자전거로 10분 거리의 PC방을 틈틈히 가기 시작했다.



  시골 아이들도 게임을 좋아한다. 나는 전학 간 학교에서 친구들과 게임을 하면서 친해졌다. 그리고 주말에 PC방 약속을 잡았다. PC방 약속을 따로 잡는 것부터 이미 불안하다. 약속을 잡고나면 험난한 과정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약속 당일 이른 아침, 걸어서 20분 거리에 있는 버스 정류장으로 나간다. 시골 버스는 도착 예정 시간보다 빨리 오는 경우도 있어서 이에 대비하며 10분 정도 빨리 나가 있어야 한다. 만약 불행하게 버스를 놓치면 1시간이 넘도록 정류장에 덩그러니 앉아 있어야 한다. 그렇게 겨우겨우 버스를 타면  30분 거리의 읍내로 나간다.



  대략 1시간 정도가 걸린다. 1시간을 이동 시간으로 소모하면 그토록 원하는 PC방에 갈 수 있다. 돌아올 때도 당연히 같은 과정을 거쳐야 한다. 느지막한 오후, 버스 시간이 다가오면 스스로 이것이 마지막판임을 직감한다. 왕복 2시간의 거리를 극복해야하므로 당연히 평일 PC방은 꿈도 꿀 수 없다. PC방은 주말에 '특별히' 약속을 잡아야 갈 수 있는 것이다. 비단 PC방만 이런 것이 아니다. 도시에서 누리던 편의시설의 99%는 이 과정을 거쳐야 한다. 아빠 차 찬스를 사용하면 30분으로 단축되긴 하지만 여전히 어색하다. 내가 걸어서 갈 수 있는 편의점은 2020년이 되어서야 생겼다. 내가 이미 서울로 올라간 뒤에야. 물론 걸어서 간다는 것은 최소한 20~30분을 의미한다.



  대입을 마치고, 스무살이 되어서도 이는 변함이 없었다. 나와 친구들은 처음으로 합법적인 음주를 위해 읍내에 사는 친구집에 모였다. 그 친구의 집 위치가 좋았다. 마트와 편의점이 근처에 있었고 주변에 친구들이 많이 살았다. 이른 저녁부터 시작된 술자리는 새벽이 되어서도 이어졌다. 첫 스무살, 첫 술자리가 주는 설렘과 떨림을 다들 알고 있지 않은가. 대입이라는 크나큰 과제를 해결했다는 후련함과 우리가 더 이상 미성년가 아니라는 묘한 해방감.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주량을 몰랐다. 달렸다는 표현이 참 잘 어울게 마셨다. 10명 남짓한 아이들이 모두 취했고 나라곤 예외가 없었다. 집이 읍내인 아이들은 하나, 둘 집으로 사라졌다. 하지만 나와 마찬가지로 읍내에서 버스를 타고 집에 가야하는 더 깊은 시골에 사는 친구들은 망부석처럼 자리를 지켰다. 새벽 6시에 출발하는 첫차를 타기 위해 뜬눈으로 밤을 지샜다. 적당한 알딸딸함이 아로새겨진 몸은 우리를 자게 두지 않았다. 그렇게 몽롱한 정신을 부여잡고 첫차를 탔다. 그리고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어둡다 못해 깜깜한 시골길을 30분을 걸었다. 가로등은 없었다. 2월의 미칠듯한 칼바람과 살을 에는 추위를 뚫고 집에 도착해서 그대로 기절했다. 집에 도착했다는 표현보다 집을 발견했다는 표현이 더 어울렸다. 아무래도 내가 기절한 건 그날의 숙취보다는 집으로 복귀하는 길에 쌓인 피로감 떄문이었던 것 같다.



  지금도 서울에서 지내다 오랜만에 시골로 내려가면 어색하다. 텅 빈 도로가 어색하다. 버스가 1시간이 넘도록 오지 않는 것이 어색하다. 걸어서 30분을 가야 있는 편의점이 어색하다. 집을 가기 위해 거치는 그 모든 과정이 어색하다. 도시의 가장 큰 장점은 교통수단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마음만 먹으면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이동할 수 있다는 것. 시골과 도시를 가르는 것은 이것에서부터 시작한다. 도시인이 시골에서 가장 먼저 피부로 와닿는 불편함이자 적응해야할 문제이다.



  이 불편함은 산과 들, 나무, 꽃을 주변에 두는 대가이다. 이제는 많이 익숙해졌다. 시간과 경험은 많은 것을 해결해 주었다. 하지만 도시인의 티를 벗지 못했던 초등학교 6학년이 감당하기에는 버거웠을 것이다. 너무 급작스럽게 달라진 주변 환경. 무엇하나 녹록치 않은 13살의 귀촌 생활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이동같이 아주 기초적인 것부터 시작했다. 많은 이의 도움을 받고, 여기저기 부딪히면서 걸음마를 떼기 시작했다. 살기 위해 걸음마를 배웠지만 나는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산과 들 보다는 빌딩과 가로등이 좋았었다. 13살의 나는 내가 누리던 일상을 대가로 지불하면서까지 시골에 있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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