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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식작가 Sep 22. 2022

나에게 내려갈 시골이 생겼다

도시인에게 갑자기 생긴 귀경길

  서울 토박이였던 아빠, 어릴 때 서울로 올라와서 20년이 넘도록 서울에서 산 엄마. 고향이 서울인 나. 우리 가족은 도시인이었다. 국내 방방곳곳을 여행하고 캠핑을 좋아했지만 그 본질은 도시에 거주하는 도시인이었다.  서울에서 남양주로 터를 옮긴 적은 있지만 그것 역시 아파트에서 아파트로의 이동이었다. 덕분에 나는 어렴풋이 시골 풍경이 가지는 푸근함과 정겨움에 대한 갈망이 있었던 것 같다. 물론 내가 시골에서 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지만.


  일가친척들도 모두 서울에 거주하는 덕분에 딱히 여행이 아니면 우리는 시골을 갈 이유가 없었다. 명절에도 1시간 거리의 도시에서, 도시로의 이동만 있을 뿐 고속도로에서 하루를 꼬박 보내는 끔찍한 정체를 걱정하지 않아도 됐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 집의 이런 상황을 보곤 축복이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늘 부러워했다. 내려갈 시골집이 있는 친구들을. 대문을 지나면 흙바닥 마당이 나오고 그 주변을 빙 둘러싼 시골집. 가족들이 삼삼오오 모여 살코기를 구워 먹고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시골집. 나는 그런 풍경을 가진 친구들이 부러웠다. 원래 사람은 자신이 갖지 못한 것을 동경하는 법이니까. 아, 물론 그렇다고 해서 시골에서 '사는 것'을 부러워하지는 않았다. 명절이나 방학 때 내려갈 시골집, 그러니까 외가나 친가가 있다는 것을 부러워한 것이니까


  그랬던 나는 이제 명절이 다가오면 불안감이 슬슬 밀려온다. 스무 살이 되고 서울로 대학을 가면서 나는 내려가야 할 시골집이 있는 도시인이 되었다. 드디어 '이동'에 대한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KTX를 예약하지 못하면 어쩌지.' 버스에서 그 지독한 시간을 보내고 싶지는 않다. 취소표가 나올까 하루 종일 컴퓨터를 딸깍이고 있다. 혹여 구하지 못하면 서러움을 뒤로하고 버스를 예매한다. 나에게는 다시금 바뀌어 버린 삶이 있었다. 갑자기 내려갈 시골이 생겨버린 것이다. 하나하나 생각해보면 번거로운 과정들이지만 초보 귀경객에게는 그 모든 것이 처음이라 반가울 따름이었다.


  그렇게 어렵게 예매한 기차에 몸을 싣으면 다들 양손 가득히 고향에 돌아가고 있었다. 나도 이런 고향으로 가는 길에 동참할 수 있다는 설렘임. 도시인으로 살면서 느껴보지 못한 충만함이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거쳐 시골에 당도하면 탁 트인 마당과 하얀 우리 집이 보인다. 내가 무사히 집에 내려왔구나. 그리고 나는 집밥을 먹으며 힐링한다. 기름기에 찌든 몸을 정화하듯 싱그러운 나물을 먹어댄다. 나에게 내려갈 시골이 생겼다는 것. 나는 정말이지 무지하게 좋았다. 엄마와 아빠가 귀촌을 한 것이 진심으로 좋아지기 시작한 것은 아마 이때부터였던 것 같다. 나에게 내려갈 시골이 생겼다는 것을 자각하는 순간부터. 


  아마 어렸을 때 외가나 친가가 시골이어서 시골집을 가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면 나는 시골집을 좋아하지 않았겠지. 다른 어린이들처럼 맛없는 나물과 따분한 산 밖에 없는 시골이 감옥처럼 느껴졌겠지. 내가 어느 정도 자라서. 그러니까 성인이 되어 나물과 산을 싫어하지 않을 나이가 되어 생겨버린 내려가야 할 시골집은 축복에 가까웠다. 지금 이 순간 나에게 시골 우리 집은 찰나의 순간, 도시에서의 해방이자 탈출구이며 어린 시절 그토록 동경했던 곳이다. 아이러니하지. 어렸을 때는 그렇게 싫었던 귀촌과 시골이 다 커서 소망을 이뤄준 장소가 되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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