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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식작가 Oct 29. 2022

음식에 진심인 시골인의 식탁

우리 집은 먹는 것에 진심이 아닌 적이 없었다

  아빠는 벌이가 좋은 편이었다. 어릴 때는 그저 평범한 회사원이라고 생각했다면 점점 나이를 먹으면서 아빠의 벌이가 좋았다는 것을 점차 인식하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대단히 유복한 집에서 자란 것도 아니다. 그렇게 느끼며 자랄 수밖에 없는 것이 아빠는 사치를 일절 하지 않았다. 검소하다는 표현이 어울렸다. 꼼꼼하고 계산적인 사람이어서 요즘으로 치면 'J'다. 쓸모없는 곳에 돈을 절대 쓰는 법이 없었다. 엄마도 아빠의 이런 성향과 잘 맞았다. 덕분에 나는 더더욱 아빠의 벌이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았다.



  물론 그렇다고 구두쇠는 아니었다. 필요한 곳에는 아낌없이 돈을 썼다. 최대한 품질이 좋고 오랫동안 쓸 수 있는 튼튼한 소비를 했다. 사치가 우리 집과 어울리지 않았을 뿐이다. 하지만 딱 하나, 엄마와 아빠가 돈을 아끼지 않고 쓰는 것이 있는데 바로 음식이었다. 음식만큼은 항상 좋은 것을 먹어왔던 것 같다. 그것은 아빠가 음식에 대한 관심이 많아서였다. 요리를 잘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먹는 것을 좋아한 아빠는 내가 본 최고의 미식가다. 특히 한식이 전문분야였는데 별별 음식을 다 먹었고 별별 지식을 다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엄마의 음식 솜씨가 좋았다. 일반 가정집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음식을 턱턱 내놓았고 나 역시도 자연스럽게 음식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다.



  엄마와 아빠는 나에게 최대한 많은 음식 경험을 시켜주었다. 내가 먹기 싫다고 하는 음식도 한 번 도전해보고 그러고 나서 맛이 없으면 먹지 않으면 된다고 했다. 나는 덕분에 내 또래가 잘 먹지 못하는 음식도 척척 먹게 되었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회를 좋아했고, 멍게나 해삼, 개불도 곧잘 먹었다. 야채와 채소도 딱히 가리지 않고 먹었고 내장류도 거르지 않았다. 씁쓸한 음식도 좋았고 김치는 최애 반찬이었다. 내가 생각하는 엄마와 아빠에게 물려받은 것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음식에 관한 경험과 지식이었다. 



  이런 배경에서 우리 집은 농사를 지어 직접 식재료를 공수하겠다는 마음을 먹은 것이다. 이런저런 이유들로 귀촌을 결정했지만 아마 이것도 적잖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음식에 그만큼 진심이었던 엄마와 아빠는 마트와 시장에서 좋은 식재료를 찾는 것으로도 모자라 직접 좋은 야채와 채소를 기르기로 마음먹었다. 이런 시도는 결국 적중해서 우리 집 식탁을 풍성하게 해 놓았고 결국은 내 귀촌한 것을 마뜩잖아했던 나를 돌려놓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도시에서는 시도할 수 없었던 각종 음식들을 도전하기 시작했다.



  처음은 집에서 기른 수탉으로 만든 백숙과 닭볶음탕이었다. 우리 집 닭은 정말 좋은 것만 먹고 자랐다. 아빠가 지극정성으로 키운 덕분에 건강한 닭으로 살아갈 수 있었다. 시중에 파는 자그마한 영계가 아니라 성장이 최대치로 이뤄진 어마어마한 크기의 닭이었다. 한 마리로도 세 가족이 배불리 먹을 수 있었다. 노란 닭기름이 잘 뜨지 않고 깔끔했다. 보통 수개월 내에 도축되는 양계장 닭들에 비해 1년이 넘는 시간을 살아서, 상대적으로 노계라고 할 수 있어 살짝 질기기는 했지만 냄새가 나지 않고 살코기가 많았다. 



  다음은 두부였다. 집에서 키운 콩으로 직접 간수를 받고 그것으로 마당에서 가마솥에 두부를 해 먹었다. 두부는 생각보다 고도의 기술을 요하는 음식이다. 초보 두부 요리사였던 우리 가족은 콩을 과하게 삶는 바람에 두부에서 살짝 탄 맛이 나긴 했지만 그것은 중요치 않았다. 갓 만든 두부는 아무 간도 하지 않았지만 고소하고 따듯했다. 내가 시중에서 먹은 두부는 그저 두부의 탈을 쓴 음식이었구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맛있었다. 입 안에 꽉 차는 두부는 눈이 뜨일 만큼 훌륭했다. 



  이것들 이외에도 수없이 많았다. 밭에서 난 토마토와 바질로 만든 파스타. 산에서 딴 나물로 만든 산채 비빔밥, 직접 담근 된장으로 끓인 된장찌개 등등 엄마와 아빠는 품고 있던 로망을 실현시켰다. 어쩌면 모든 귀촌인들이 한 번쯤 꿈꾸는 그런 생활을 살고 있다. 게다가 배달과 외식이 불가능한 우리 집 특성상 먹고 싶은 음식은 거의 다 요리해 먹었다. 중식이 먹고 싶으면 짜장면과 탕수육을 했고, 치킨이 먹고 싶으면 닭을 직접 튀겼다. 회가 먹고 싶을 땐 적당한 생선을 택배로 받아 회를 떠서 먹었고 매운탕을 끓였다. 엄마와 아빠는 이런 삶 자체를 즐겼고 행복해했던 것 같다. 나는 스무 살이 넘어 집으로 내려갈 때면 힐링을 하러 간다고 우스갯소리로 말한다. 도시에서 기름지고, 왠지 건강하지 않을 것만 같은 음식을 먹어오다가 하나부터 열까지 집에서 만들어지는 음식을 먹으면 힐링이 된다.   



  우리 집 식탁에 올라오는 음식은 공산품과 육류, 해산물, 쌀을 제외하면 거의 대부분이 우리 집 밭에서난 것들이다. 심지어는 된장과 고추장마저도 집에서 재료를 공수해서 담근다. 이 모든 것이 수상할 정도로 음식에 진심인 우리 집이 귀촌하면서 벌어진 일이다. 나는 이런 집이 좋다. 그리고 이런 청소년기를 보낸 내가 좋다. 집에서 만든 두부를 먹는 경험을 한 이십 대는 많지 않으리라고 자부한다. 결국 도시에서의 생활을 포기했지만 그만큼 나는 다른 경험을 했으니까. 이것은 음식과 관련된 학과로 대학을 진학하고 외식 업계에서의 커리어를 꿈꾸는 내게는 어쩌면 가장 귀한 유산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음식에 대한 관심마저도 엄마와 아빠 덕분에 시작된 것이긴 하지만.  



  엄마와 아빠는 여전히 음식에 대한 열정을 보인다. 아빠는 요거트에 빠져서 유산균을 배양하고 집에서 직접 요거트를 만들어 먹는다. 요거트에 딸기잼 한 스푼을 넣어서 점심 후에 엄마와 함께 디저트로 먹는다. 엄마는 요새 제빵에 빠졌다. 한 터키 제빵 유튜버를 따라 하며 각종 이국적이고 따끈한 빵을 오븐에서 꺼낸다. 가끔은 나에게 자랑한다. 제빵 실력이 많이 늘어 이제 먹을만한 빵을 구울 수 있다고 좋아한다. 



  우리 집 식탁에는 늘 핸드메이드 제품들로 꽉 찬다. 디저트마저도 말이다. 따지고 보면 엄마와 아빠의 농사도 맛있는 것을 먹기 위한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일 년의 대부분을 우리의 식탁을 위해 일한다. 먹기 위해 농사를 짓고, 일을 한다. 그 농사와 일의 대가마저도 음식이다. 이렇게 쓰고 나니 우리 집이 얼마나 음식에 진심인지 알게 되었다. 대충 먹는 것이 용납되지 않고 삶에서 가장 중요한 유희이자 쾌락으로 생각해왔다. 오늘도 엄마와 아빠는 식탁을 위해 일했겠지. 그런 열정에 나는 늘 박수를 보낸다. 내가 집밥에 대한 향수를 가질 수 있게 된 것도 엄마와 아빠 덕분이니까. 집이 가고 싶다. 집밥이 먹고 싶다. 집밥이 있는 우리 집 식탁이 유난히 그리운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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