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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식작가 Oct 20. 2022

리틀 포레스트를 찍게 된 사연

겨울날, 시골 전원주택을 혼자 돌보게 되었다. 

  시골로 이사를 가고 나서, 엄마와 아빠는 집을 장기간 비울 수가 없었다. 밭일이 너무 바빠서, 돌보아야 할 것이 천지여서. 날이 따듯한 날에는 밭에서 무언가를 심고, 기르고, 수확해야 했다. 날이 추운 날에는 그것을 비롯한 집의 모든 것이 얼어붙지 않게 돌보아야 했다. 하루만 한눈을 팔아도 잡초가 쑥쑥 자라는 농번기와 고약한 날씨를 자랑하는 겨울에는 옴짝달싹 할 수가 없다. 결국 모든 계절이 엄마와 아빠의 일탈을 막았다. 한마디로 집에 묶인 몸이 되었다. 물론 엄마와 아빠는 그것을 받아들였다. 자발적인 고립이자 진정한 전원생활을 즐기는 것이었다. 



  하지만 사람이라는 것이 한치의 앞날을 예상하지 못하는 것이지 않은가. 10년이 넘는 귀촌 생활 동안 집을 오랜 기간 비워야 하는 일이 왕왕 있었다. 그것은 누군가의 입원이 될 수도 있고, 모두의 참석을 요구하는 외갓집의 가족여행일 수도 있다. 하지만 결국 누군가는 집에 남아야 했다. 엄마와 아빠를 빼면 우리 집에서 남아있는 포유류는 개와 닭과 나뿐이다. 그중에서 집을 돌볼만한 지성을 가진 포유류는 내가 유일했기에 내가 적임자로 낙점되었다. 어둠을 지독히도 무서워하는 내가 산이 품고 있는 시골집에 혼자 남게 된 것이었다. 



  계절은 겨울이었다. 해가 바뀌었다는 설렘이 차차 사그라들고 지독하고 혹독한 추위가 몰아치던 1월이었다. 농사가 한창이던 여름에 내가 혼자 집에 남아 그 모든 것을 도맡아 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었기에 겨울이 제격이었다. 농사에 대한 걱정은 접어두고 온전히 집만 돌보면 됐다. 만약 내가 아파트에 살면서 부모님이 집을 비우면 당연히 기쁨을 감추지 못했겠지만 시골집에 혼자 남겨진다는 것은 마냥 즐거운 일만은 아니었다. 마당만 나가도 살을 에는 듯한 칼바람이 불어오는 곳에서 나는 자유보다는 고립이라는 느낌을 먼저 받았다. 



  겨울은 할 일이 루틴처럼 정해져 있다. 정해진 스케줄에 맞게 몇 가지 임무만 수행하면 어려울 것이 없었다. 우선 이른 아침에 일어나 닭을 돌보아야 한다. 비좁은 닭장에 들어가서 간밤에 낳은 달걀을 꺼낸다. 아무리 옷과 장갑과 모자로 무장을 해도 그것을 모두 뚫고 들어오는 추위에 굴하지 않고 닭들과 짧은 시간을 보내야 한다. 닭들은 생각보다 겁이 많다. 내가 갑자기 큰 동작을 하지 않는 이상 닭장에 들어간 나에게 덤비지 않고 구석에 모여있는다. 그러면 나는 도둑처럼 은밀하게 알을 훔쳐온다. 그리고 먹이와 물을 준다. 그리고 물을 준다. 그렇게 물을 준다.



  이 물을 준다는 것이 닭을 돌보는 것의 핵심이다. 닭들의 알을 훔쳐오는 것도, 먹이를 주는 것도 사실 어렵지 않다. 어려운 것은 그저 이른 아침에 추위를 뚫는 것일 뿐이다. 하지만 이 물을 주는 것은 생각보다 번거롭고 수고스럽다. 물이 1시간도 안돼서 꽝꽝 얼어붙는 겨울에는 하루에도 몇 번씩 물을 갈아주어야 한다. 아침에 한 번 물을 갈아주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꽝꽝 언 물통을 해동시키고 집에서 따듯한 물을 받아와 새 물통에 물을 채워 줘야 한다. 이것을 하루에 3~4번 정도 해야 한다. 집안을 몇 번이나 들락날락해야 하고 겨울날 손에 물을 묻혀야 한다. 춥고, 힘겨운 작업이다.



  아직 동이 완전히 트지 않은 아침에 닭들을 돌보고 나서 집에 들어오면 아침을 먹는다. 달그락거리는 식기 소리를 내며 적막함을 이기고 싶어 튼 티비와 함께 아침을 다 먹으면 다음에는 진돗개 밥을 챙겨준다. 닭과 마찬가지로 간밤에 꽁꽁 언 물을 따스한 새 물로 갈아주고 밥을 준다. 이렇게 하면 집에 있는 나를 포함한 모든 동물들이 밥을 먹는 것이다. 이것으로 동물들의 돌보기는 끝이 난다. 언제나 살아있는 것을 돌보는 것이 가장 힘들다. 칼바람이 밭의 모든 것을 앗아간 겨울에는 돌볼 것이 별로 없다. 하지만 정성을 들여서 봐주어야 한다. 



  그리고 나에게 맡겨진 막중한 또 하나의 임무는 보일러 불을 꺼트리지 않는 것이다. 우리 집은 기름보일러도 있긴 하지만 주로 나무 보일러를 쓴다. 밭일을 하지 않는 겨울 내내 아빠가 트럭 채로 배달된 통나무를 전기톱과 도끼를 사용하여 장작으로 만든다. 그 장작이 겨우내 우리 가족의 열원이 되어준다. 보일러 실에 들어가서 장작 몇 조각을 집어 깊숙이 넣어주고 집 안으로 들어와 보일러를 켜면 그것으로 끝이지만 조심해야 한다. 까먹고 화로의 문을 닫지 않거나, 너무 많은 장작을 넣으면 불이 꺼질 수도 있다. 보일러를 너무 오랫동안 방치하고 바닥을 데우는데 열을 사용하지 않아도 역시 불은 꺼진다. 불이 꺼지면 골치가 아파진다. 절대로 꺼지지 않는 불을 만드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다. 오랜 시간 공을 들여 다시 불을 지펴야 한다. 용광로 같은 숯이 장작을 받쳐줄 때까지 손에서 토치를 놓을 수가 없다.



  이 정도가 전부다. 겨울에 해야 할 일은 이것으로 끝이다. 그리 많지는 않지만 중요한 일이고,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엄마와 아빠가 집을 비우기 며칠 전,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정확히 들으면서 불안했다. 내가 이것들을 할 수 있을까, 혼자서 할 수 있을까, 무섭지 않을까, 잘못되면 어떻게 할까. 중학교 3학년, 집 정도는 돌 볼 수 있는 나이지만 시골집을 돌보는 것은 확신할 수 없는 나이였다. 하지만 엄마와 아빠는 차를 타고 집 마당을 나섰고 나는 정말로 혼자가 되었다. 



  사실 첫날은 친구들과 함께 했다. 우리 집 특성상 집이 빈다는 것은 아주아주아주 특수한 경우다. 그래서 나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친구들을 불러 모았다. 나도 '자유'라는 것을 누려보기로 한 것이다. 하루 동안 친구들과 밥을 해 먹으며 밤새서 게임도 하고 왁자지껄하게 놀았던 것 같다. 물론 위에서 설명한 할 일은 모두 하면서 말이다. 덕분에 첫날은 쏜살 같이 지나갔다. 혼자라는 것은 크게 자각하지 못한 채 흘렀다.



  이틑날, 친구들이 가고 나서야 나는 완전한 혼자가 되었다. 늘 누군가가 함께 있었던 집에 혼자라는 생각에 괜스레 설레기도 하고 떨리기도 했다. 참 내 멋대로 하고 싶었던 사춘기 끝자락이었기에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는 것은 확실히 이전까지 누려보지 못한 자유였다. 하지만 고요하고 조용한 집은 어색하기만 했다. 때마침 눈이 내려, 눈이 쌓이는 소리마저 들릴 것처럼 고요함이 계속되었다. 매일 같은 일상을 반복하면서 마치 리틀 포레스트의 주인공처럼 시간을 죽였다. 



  눈 쌓인 풍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가 소파에 누워 스르르 잠에 들기도 했다. 나는 나름대로 나의 시간을 잘 누렸다. 닭장에서 달걀을 훔쳐 오면서 나리는 눈을 맞기도 했고 강아지가 달려드는 바람에 밥을 주다 엉덩방아를 찧기도 했다. 그렇게 밖에서 추위에 떨다 바닥이 펄펄 끓는 방에서 몸을 노곤하게 녹이기도 했다. 밥을 챙겨 먹기 귀찮을 때는 라면을 끓여먹기도 했고 그것이 다시 질리면 엄마가 한 반찬을 꺼내 먹기도 했다. 가끔은 내가 요리를 할 때도 있었고 빵으로 끼니를 때울 때도 있었다. 



  내 발자국밖에 없던 마당에 바퀴 자국이 생기고 엄마와 아빠가 돌아왔다. 그리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반가웠다. 늘 펄펄 끓는 바닥 덕분에 춥지 않은 고립생활 보냈지만 사람이 주는 온기는 그 어떤 것도 비할 바가 아니었다. 뜨거움만 넘쳤던 집에 따스함이 채워졌다. 내가 별일 없었다는 것을 확인한 엄마와 아빠는 짐을 풀고 다시 집에 녹아들었다. 내가 나름 집을 잘 돌보았단 사실을 나는 도란도란 이야기하였고 그 해 겨울이 지나갔다.


  

  나는 리틀 포레스트 같은 시골 힐링을 보며 이해하기 힘들었다. 고되고 힘든 귀촌 생활이 미화되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 해 겨울에 나는 조금이나마 느꼈다. 물론 나는 거의 여행 수준에 가까운 고립이었다. 먹을 것과 잠잘 곳이 준비되어있고 그저 미량의 임무만 수행하면 됐다. 덕분에 적당한 뿌듯함과 평안을 얻을 수 있었고 그렇게 리틀 포레스트 같이 혼자서 먹고 자면서 어렴풋이 엄마와 아빠가 왜 시골에 자리를 잡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 고요함과 평온함이 좋았던 것일까. 누구도 없는 산속이 좋았던 것일까. 



  그 이후에도 몇 번 집을 볼 일이 생겼다. 친구들도 불렀고, 앞선 임무들을 똑같이 수행했다. 하지만 아무리 고립생활을 즐겨도 첫 번째 고립생활만큼의 감흥을 주지 못했다. 눈이 바닥에 톡톡 떨어진 날, 고요하다 못해 적막으로 소름이 끼칠 만큼 조용한 그날, 집에서 혼자 창 밖을 보던 것이 잊히지 않던 모양이다. 그 모든 것이 처음이라는 설렘과 적당한 긴장감이 만든 그날들의 떨림은 다시 흉내 낼 수가 없었다. 작은 몸과 마음에서 서툴고 어설프게 했던 집 돌보기는 의외로 내가 잊지 못하는 한 순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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