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식작가 Oct 25. 2022

우리가 귀촌한 진짜 이유

도시인이었던 우리 가족이 귀촌한 진짜 속사정

 우리가 헤어진 진짜 이윤 없어
니가 날 사랑하지 않았을 뿐 다른 이윤 없어


  윤하님의 노래 '우리가 헤어진 진짜 이유'에는 위와 같은 가사가 나온다. 연인이 헤어진 이유에는 대단스러운 이유가 없고 그저 누가 누구를 사랑하지 않는 것 때문이라고. 우리 집이 귀촌한 것도 이와 비슷하다. 거창한 이유는 없다. 갑자기 엄마와 아빠가 거농이 되고자 시골로 내려가 몇 만 평에 달하는 대지에서 농사를 지으려는 것도 아니다. 도시에는 더 이상 발 붙이고 살 수 없을 만큼의 깊고 깊은 속사정도 없다. 가족 구성원 중 누군가가 현대 의학으로는 치료할 수 없는 병에 걸려 자연에 의지하고자 내려간 것도 당연히 아니다. 엄마와 아빠는 도시에 정이 가지 않았을 뿐이다. 도시를 사랑하지 않았을 뿐이다. 다른 이윤 없다. 그저 그뿐이다.



  엄마와 아빠는 인생의 대부분을 도시에서 살았다. 아빠는 서울 토박이로 청량리와 회기동 부근에서 유년기부터 청소년기의 모든 시간을 보내고 대학을 마쳤다. 서울에서 직장을 가졌고 서울에 집을 샀다. 송파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다 서울 근교 남양주로 이사를 갔다. 엄마도 마찬가지다. 유년기를 강원에서 보냈지만 청소년기에 서울로 상경하여 성수 인근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회사에 취직했다. 아빠를 만나 결혼을 했고 아빠와 함께 송파에 기거하다 남양주에 둥지를 틀었다. 나도 우리 가족의 역사에 몸을 실었다. 송파에서 유년기를 보내고 남양주에서 추억을 쌓기 시작했다.



  가끔 먼 친척들이 시골에 살긴 했지만 말 그대로 '먼' 친척이었다. 살면서 한 두 번 볼까 말까 한 그런 먼 친척. 할머니 입에나 가끔 오르내리는 그런 친척들. 우리가 일 년에 몇 번이고 찾아가는 친가와 외가는 모두 서울에 있었고 엄마와 아빠의 형제자매들, 그러니까 내 고모들과 이모 삼촌들 역시 서울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우리 집은 한마디로 시골과 연관이 없었다. 우리 가족이 뼛속부터 도시인이라 하기에는 오묘하지만 그래도 도시인의 피가 진하게 흐르고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여행이 아니라면 딱히 시골에 갈 이유가 없었다.



  오히려 이것이 시골이 우리를 부른 결정적 이유가 되지 않았을까. 우리가 귀촌하기 바로 직전 해, 엄마와 아빠는 집에서 차로 15분 거리에 있는 주말 농장에 자그마한 밭뙈기 하나를 분양받았었다. 상추부터 감자와 고구마까지 각종 농작물을 소규모로 재배했었다. 하지만 나는 엄마와 아빠의 속셈을 몰랐었다. 그 당시에는 한창 주말농장 붐이 일었을 때다. 너나 할 것 없이 작은 밭을 분양받아 농사를 짓고 싶어 하는 로망이 있었고 나는 엄마와 아빠가 그런 작고 아담한 소망을 품고 있는 줄 알았다. 이것이 우리가 귀촌해서 지을 농사의 프로토타입이었다는 것은 꿈에도 몰랐다.



  나는 우리 집의 귀촌이 결정 난 뒤, 시골에 집을 지어 이사를 가고 전학을 갈 때까지 그렇게 꽤 오랜 기간을 그 주말농장 전후로 하여 우리 집의 귀촌이 기정사실화 되었다고 생각했다. 주말농장을 경영하면서 귀촌의 로망을 싹 틔웠거나, 주말농장은 귀촌의 연습이었다고 인지하고 있었다. 내 생각의 뿌리는 주말농장까지만 뻗쳐 있었다. 하지만 지금 되짚어 보면 우리 집 귀촌의 시작은 서울에서 남양주로 이사를 결정한 그 순간이었으리라.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이미 송파에서 남양주로의 이주가 결된 그 순간, 우리 가족의 미래는 시골에 가 있었다. 그저 충동적인 단기 프로젝트라고 생각했던 우리 집의 귀촌은 상상 이상으로 장기 프로젝트였던 셈이다.



  남양주는 엄연한 도시다. 하지만 서울에 비하면 푸르름의 정도가 다른 것은 사실이다. 아파트와 빌라가 다닥다닥 붙어 있는 송파에서 어린 내가 쉽게 볼 수 있는 녹지는 개롱공원이 전부였다. 하지만 천마산 아래에 자리 잡은 아파트 단지는 뒷 창문으로 고개만 빼 하고 내밀면 산과 나무가 보였다. 개발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덕분에 사람도 적었고 공기가 좋았다. 산에서 흘러나온 계곡물이 서울에서는 그토록 보기 힘들었던 깨끗한 하천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지금은 사람도 바글바글 들어오고 각종 인프라와 개발이 이뤄졌지만 우리가 이사할 당시만 해도 천마산 아랫동네는 자연에 조금 더 근접한 곳이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과 녹지다. 각각 서울에 가장 많고, 서울에 가장 없는 것이다. 이것은 반대로 엄마와 아빠가 각각 가장 멀리하고 싶어 하는 것과 가장 가까이하고 싶어 하는 것이었다. 요즘 흠칫흠칫 놀라는 순간이 있는데 그건 내가 사람과 있으면 힘을 얻는다기 보다는 힘을 소비한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엄마와 아빠는 MBTI 검사를 해보지 않았지만 나는 두 분 다 'I'라고 장담할 수 있다. 외향적이기보다는 내향적이다. 사람을 많이 만나기보다는 최대한 적게 만나는 것을 좋아한다. 나는 그런 두 분의 자식이었고, 두 분은 그런 나의 부모님이었다. 젊었을 때는 몰라도 나이를 먹으면서 사람에 대한 기대와 정을 크게 가지지 않았다.  



  애석하게도 두 분은 도시에서 자랐고 지겹도록 사람을 보아왔고 이리저리 휩쓸렸다. 아빠는 직장생활을 하면서 많은 사람과 부딪혔고 시간이 가면 갈수록 사람을 많이 만나야 했다. 엄마는 지금 내 나이에 결혼을 해, 나보다 한 살 많은 나이로 나를 낳았다. 어린 나이에 도시에서 나를 키우면서 남모를 고충이 있었고 힘겨운 시기를 보냈다. 어쩌면 외로움을 느꼈던 것 같다. 어린 시절에는 나를 키우느라 그랬고, 나이가 들고는 그런 나를 키우며 놓친 것들 때문에 그랬던 것 같다. 도시 속에서 키워온 서로의 고충은 그것이 꼭 도시 때문만은 아니더라도 자연스레 도시에 대한 정을 떼게 했던 것 같다.



  그리고 푸르름을 좋아했다. 사람들의 말소리가 잘 들리지 않고 바쁘지 않아도 됐다. 여유롭고 한가로워도 됐다. 이리저리 치이지 않아도 그 누가 뭐라 하지 않았다. 여행이라 그랬을 수도 있지만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엄마와 아빠는 자연을 여행하면서 요즘 말로 힐링을 했던 것 같다. 그리고 자연에 정을 붙이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즈음 남양주로 이사하면서 자연으로 한층 더 가까워지고 사람과는 한 발자국 더 멀어졌다. 그리고 평소 음식과 먹거리에 관심이 많았던 엄마와 아빠는 주말농장을 접했다. 거기서 아빠는 사람에 치이지 않고 반드시 이뤄내야 할 목적과 목표에서 잠시나마 해방될 수 있었고 반대로 엄마는 자신의 손으로 무엇을 일궈낸다는 목표의식을 가질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가 살던 천마산 아랫동네가 입소문을 타고 사람들로 북적이기 시작할 때, 엄마와 아빠는 사람이 없고, 녹지가 많으며 농사를 지을 수 있는 곳. 그곳, 시골로의 귀촌을 실체화하기 시작했다.



  사실 엄마와 아빠는 남양주보다는 시골이고, 지금 살고 있는 곳보다는 도시인 곳에 땅을 봐 두었었다. 아주 오랜 기간 동안. 그 당시에는 지금처럼 정말 날 것 그대로의 시골로 귀촌해서 농사를 짓는 것보다는 전원주택에서 전원생활을 꿈꿨던 것 같다. 하지만 이런저런 이유들로 그것이 무산되고 남양주에서 숨죽여 기회를 기다리다가 타이밍 맞게 시골로 귀촌을 한 것이다. 결국 엄마와 아빠는 진짜 오래전부터 도시와의 작별을 미리 고하고 있었다. 사람이 싫고, 녹지가 좋으며 농사에 재미를 붙인 덕분에 전원생활이 아니라 귀촌 생활이 될 것이라곤 그때 생각하지는 못했겠지만.  



  이것은 물론 내 생각이다. 정작 이렇게 말하는 내가 모르는 깊은 속사정이 어디선가 툭 하고 튀어나올지도 모른다.  나는 그냥 시골이 가기 싫어 무작정 가기 싫다고 떼를 쓰던 어린 시절 때를 제외하면 단 한 번도 엄마와 아빠에게 진지하게 왜 우리가 귀촌했는가에 대한 질문을 해본 적이 없다. 사실 굳이 할 필요도 없었다. 엄마와 아빠는 농사를 좋아했고 산와 들과 나무를 좋아했다. 풀과 꽃처럼 무용한 것을 좋아했지만 그것을 유용하게 바꾸는 것에도 관심이 있었다. 사람에 지쳤고 도시에서의 시간이 의미가 없다고 느꼈다. 그것이 눈에 보인다. 농사를 지을 때 두더지가 밭을 갈아엎어 놓고 비가 안 내린다며 울상일 때도 있지만 그것 때문에 시골로의 귀촌 자체를 후회하지 않는다. 그것이면 되었다. 우리가 귀촌을 한 진짜 이유는 딱히 없다. 단순한 이유들로 인해 그냥 시골이 도시보다 더 좋았을 뿐이다. 다른 이윤 없다. 그저 그뿐이다.



         

  



   

이전 13화 리틀 포레스트를 찍게 된 사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