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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식작가 Sep 30. 2022

아파트를 벗어난다는 것

시골 전원주택에서 살아남기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주거형태는 뭘까. 아무리 봐도 나는 아파트라고 생각한다. 다른 나라에서는 일부 고급 아파트를 제외하면 아파트는 대부분 서민 중의 서민이 사는 주거형태라고 한다. 하지만 유독 한국에서는 집 하면 아파트고 사회적인 성공의 척도가 아파트 한 채를 가졌느냐가 되었다. 이렇게 인기가 좋은 아파트의 단점은 명확하지만 그 장점들을 무시할 수 없다. 많은 이들이 아파트에 거주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그 이유 중 가장 큰 매력 바로 편리하다는 것이다.



  나도 도시에 살 때는 당연히 아파트에 사는 무수히 많은 어린이 중 한 명이었다. 몇 번의 이사를 하고 동네와, 도시가 바뀌기는 했지만 아파트에서 아파트로의 이사였기 때문에 주거형태의 변화는 없었다. 꽤 오랜 시간을 아파트와 친하게 지냈고 그곳에 익숙했다. 딱히 아파트가 대단히 편리하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불편함도 없었던 것 같다.



  시골로 이사하면서 나는 처음으로 아파트가 아닌 곳에 살게 되었다. 애초에 그 산속에 아파트가 있을 리 만무했다. 우리가 그곳에 살려면 맨땅에 집을 지어야 했다. 집을 짓는 것은 매우 매우 거창한 일이지만 돈과 시간만 있으면 충분히 가능하다.(생각해보니 이것들로 못 하는 것이 없다) 집을 짓기 적당한 땅을 물색하고 시공업체를 찾아서 원하는 도면으로 의뢰하면 그만이다. 그렇게 세 식구가 살기에 적당한 집이 6개월 만에 뚝딱 지어졌다. 주변에 집이라곤 눈 씻고 찾아볼 수 없는 산자락에 하얀색 단독 주택이 전입신고를 했다. 새 집에서 나는 인공적인 냄새가 주는 설렘과 함께 아파트가 아닌 곳에서의 첫발을 내딛었다.



  두 개의 방과 한 개의 거실과 주방. 화장실 하나와 창고, 다용도실이 갖춰진 알맞은 집이었다. 우리가 살기에 너무 크지도, 너무 작지도 않은 집이었다. 설계부터 우리가 살기에 가장 이상적인 집으로 만들어졌다. 우리가 원하는 데로 설계할 수 있는 것은 집을 직접 짓는 것의 가장 큰 행복이었다. 앞에는 자갈이 깔린 마당이 있었고 뒤에는 밭이 있었다. 왼편에는 보리밭이, 오른편에는 산줄기가 있었다. 위치부터, 입지와 집의 구조, 인테리어까지, 마음에 들지 않는 곳이 없었다. 나는 집의 위치와 입지를 제외하면 새 집에 꽤나 만족했었다. 어찌 되었든 '새집'이었고 아파트 거주민들이 한 번씩 꿈꾸는 마당 딸린 단독주택이었으니까.



  기본적으로 단독주택이 가지는 장단점이 있다. 마당은 단독주택에 사는 이유다. 마당 덕분에 삶의 질은 올라간다. 기본적으로 활동적인 일을 할 때 공간이 주어진다. 슬리퍼만 신고 나가면 거실 창에 보이는 마당에 도달할 수 있다. 한편에는 작은 텃밭을 일구고 고기를 구워 먹는다. 물론 마당이 생기면 자주 고기를 구워 먹을 줄 알았지만 방문객이 오지 않는 한, 귀찮음과 번거로움을 이기지 못한다. 날이 선선해지면 캠핑 의자를 가지고 나가 앉아 있어도 좋다. 밤이 되면 별이 보인다. 어렸을 때 산 천체 망원경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덕분에 한동안 내 취미는 별보기가 되었다. 목성과 토성을 선명하게 보았으니 나름 성공적인 취미였다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집을 직접 관리해야 하는 것은 큰 단점이다. 왜 정원사라는 직업이 존재하는지 어렴풋이 알 것 같기도 했다. 우선 우리 집은 지하수를 먹는다. 마을에 연결된 상하수도를 연결할 수도 있었지만 지하수를 파는 비용과 비슷해서 그냥 지하수를 팠다. 그래서 우리 집에서 나오는 모든 물은 음용 가능하다. 심지어 화장실에서도 말이다. 하지만 애초에 이 지하수의 용량은 10년 정도로 측정되었었다. 10년은 이미 넘었으니 사실 물이 언제 끊겨도 이상하지 않다. 물이 끊기면 다른 지하수를 파거나 마을 상하수도를 끌어와야 한다.



  번개는 비 오는 날 가끔 있는 이벤트가 아니다. 재해와 재난에 속한다. 언젠가 번개가 치던 날 집에서 매캐한 냄새가 난 적이 있다. 그 냄새의 발원지는 두꺼비집이었다. 새까맣게 타버린 두꺼비집. 바로 차단기를 내려서 별 탈이 없었지만 정말로 불이 날 뻔했다. 원인은 '접지' 문제였다. 접지선이 땅에 묻혀있어 번개가 치면 피뢰침을 통해서 땅으로 흘려보내야 하는데 이게 말썽을 일으켰다. 이것을 고치기 위해선 대공사가 필요하기 때문에 번개가 치는 날 우리는 모든 콘센트에서 코드를 뽑는 것으로 혹시 모를 불상사를 대비했다.



  도시에 위치한 단독주택이었다면 모르겠지만 우리 집은 시골에 위치한 전원주택이다. 각종 유해조수들로부터 우리를 지켜야 했다. 여름이 되면 벌들은 호시탐탐 우리 집 처마를 노렸다. 벌을 광적으로 무서워하는 나에게는 끔찍한 일이었다. 고라니와 멧돼지는 어디에나 있는 존재들이었고 너구리는 길고양이처럼 돌아다녔다. 날이 따듯해지면 뱀을 조심해야 했다. 슬리퍼 차림으로 풀숲에 들어가는 것은 금기시되었다. 자칫하면 뱀에 물릴 수도 있었으니까. 한 해만 해도 꽤 많은 수의 뱀이 '마당'에서 잡힌다. 꽃뱀과, 실뱀, 독사 등 종류를 가리지 않고 나온다. 한 번은 하교를 하는데 도로에 수직으로 까치살모사가 누워있었다. 정말이지 기절하는 줄 알았다. 재주껏 피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학교에 왔다 갔다 하면서 뱀에 물릴까 걱정을 해야 한다니.



  이것 이외에도 잡초, 쓰레기 처리, 난방 등등해야 할 것이 수두룩하다. 엄마와 아빠는 이것을 기꺼이 감당했지만 나는 조금 버거웠다. 쾌적한 아파트가 좋았다. 친구들이 많은, 놀이터가 있는 아파트가 좋았다. 지금에야 마당이 단독주택의 압도적인 장점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 당시에는 알게 뭔가. 마당이고 뭐고 싫은 것, 무서운 것 투성이었다. 물론 거의 모든 일들은 엄마와 아빠가 했지만 그래서 사실 내가 직접적으로 감당한 것은 없지만 그저 그곳에서 사는 것이 나에게는 감당해야 할 것이었다.


  만약 단독주택이 주어진다면 나는 자신이 없다. 나에게 가꾸고 관리해야 할 집은 어렵기만 하다. 전원주택에 살면서 좋은 점을 모르지 않으나 아직도 잘 모르겠다. 전원주택의 장점들이 단점을 잊게 할 만큼 달콤한 것인지 여전히 나는 잘 모르겠다. 10년이 훌쩍 넘은 지금, 엄마와 아빠는 이제 어지간한 것은 고칠 줄 안다. 깊은 산골에서 무언가 고장 나면 수리기사를 부르기가 너무 힘들다. 미안하기도 하고. 그래서 독학으로 많은 것을 해결해나갔다. 유튜브와 블로그는 두 분의 좋은 선생님이었다. 이것저것 만져보고 뚝딱뚝딱 고쳐나갔다. 그렇게 해결해나가면서 경험을 쌓고 이제는 익숙해졌다지만 여전히 힘들고 어려운 것처럼 보인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왜 아파트 관리비가 다달이 통장에서 빠져나가야 하는지 알 것만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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