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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식작가 Oct 07. 2022

시골에 사는 것이 곧 여행

귀촌을 한 뒤로는 가족여행을 가본 적이 없다, 단 한 번도

  우리 집은 내가 어렸을 적부터 여행을 정말 많이 다녔다. 유년 시절에 떠오르는 가족과의 추억 대부분이 여행지에서 쓰였다. 아빠는 바쁜 직장 생활을 했음에도 한 달에 한 번은 꼭 짐을 꾸려 국내 곳곳을 여행 다녔다. 심지어 아빠는 나만 데리고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덕분에 나는 모든 친구들이 한 달에 한 번은 여행을 가는 줄 알았고 계절마다 그에 맞는 관광지를 가는 줄 알았다. 모든 가정이, 대다수의 가정이 그러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생각보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였다.



  국내 관광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지방 곳곳의 맛집을 돌아다니기도 하고 소도시의 아름다움을 구경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 집의 여행 대부분은 시골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시골 산속에 위치한 한적한 펜션에 방을 잡고 나무와 풀이 내뿜는 공기를 마시며 쉰다. 저녁에는 장을 봐온 것으로 고기를 구워 먹었고 다음 날에 지역 맛집에서 점심을 먹고 집으로 돌아왔다. 우리 집 여행의 대부분은 이렇게 진행되었다. 엄마와 아빠는 지금 유행하는 힐링의 개념을 정확히 알았던 것 같다. 어쩌면 그때부터 엄마와 아빠는 산과 나무가 좋았을지도 모른다. 그때 눈치를 챘어야 했는데.



  아빠는 아날로그 인간이다. 2G폰을 무려 2010년대 중반까지 사용했다. 남들이 컴퓨터를 손에 들고 다닐 때, 아빠에게 컴퓨터는 책상에만 존재하는 것이었다. 내비게이션은 내가 초등학교 4학년이 되었을 무렵에야 장만했다. 목적지까지 가는 길은 사전에 외워갔고 헷갈릴 때는 큼지막한 지도책을 보고 길을 찾았다. 티비도 오랫동안 브라운관을 애용했다. 아빠의 소비관은 굳이 필요하지 않으면 물건을 구매하지 않는다였다. 사치를 하지 않았고 검소했다. 그랬던 아빠가 여행만큼은 트렌드를 읽었다. 귀신같이 그 시대의 여행 트렌드보다 한 발자국 앞서 갔다. 하나의 여행 테마에서 우리가 뽑아 먹을 만큼 즐기고 슬슬 지겨워질 때쯤 유행하기 시작해서 사람이 바글바글했다. 우리는 이미 다른 여행 테마로 넘어갔을 때의 일이다.



  지금은 자연휴양림이 유명하지만 15년 전까지만 해도 아는 사람만 아는 곳이었다. 국립공원 안에 위치하여 자연을 즐기고 그곳에서 숙박을 할 수 있는 시설이다. 취사가 엄격히 금지된 국립공원에서 취사를 할 수 있었고 국가가 운영하는 만큼 저렴한 가격으로 시설을 이용할 수가 있다. 게다가 서울 근교에 그럴싸한 자연휴양림이 많았다. 우리는 자연휴양림의 VIP였다. 마일리지 제도가 있었더라면 잔뜩 쌓을 수 있었을 텐데. 자연휴양림 자체를 아는 사람도 적어서 극성수기를 제외하면 예약하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힐링이라는 키워드가 떠오르면서 자연휴양림의 인지도도 상승했다. 결국 휴양림을 예약하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가 되었다. 서울 근교라면 난이도는 더더욱 올라갔다.



  하지만 우리 가족은 휴양림이 유명하기 전에 뽕을 다 뽑아 먹었다. 서울 근교부터 전국 곳곳의 자연휴양림을 누볐고 휴양림이 인기를 끌어 예약하기가 힘들어지고 사람이 바글바글해진 시기, 우리 가족은 이미 손을 털고 다른 여행 방식을 개척했다. 그것은 바로 캠핑이었다. 힐링의 범주에 캠핑이 들어가기 전, 역시나 캠핑은 마이너한 여행 방식이었다. 사서 고생을 한다는 인식이 강했고 비싼 장비는 진입 장벽을 높였다. 하지만 아빠는 너무 비싸지 않은 선에서 최소한의 캠핑 장비를 하나 둘 구매했고 우리는 주말이 되면 캠핑장으로 떠났다.



  지금은 티켓팅 수준의 예약 난이도를 보이는 서울 근교의 유명 캠핑장을 섭렵했고 자연휴양림에서 제공하는 캠핑장도 애용했다. 그래서 가금 티비에 나오는 유명 캠핑장들을 보면 감회가 새롭기도 하다. 우리 가족이 한창 캠핑을 하던 당시, 그냥저냥 캠핑족들이 찾는 적당한 캠핑장이었던 곳이 핫플레이스가 되어 변해버린 것을 보면 우리 가족이 캠핑을 얼마나 이른 시기부터 즐겼는지를 깨닫곤 한다. 하지만 힐링이라는 트렌드가 떠오르자 캠핑은 많은 이들의 로망이 되어 무수히 많은 캠핑족을 양산했다. 그리고 그렇게 캠핑의 인기가 하늘을 치솟던 때, 거짓말 같이 우리는 시골로 귀촌했다.   



  귀촌을 하고 깨달은 것이 하나 있는데 엄마와 아빠는 여행을 좋아했다기보다는 사람이 없는 산속이 좋았던 것 같다. 도시에서 지친 몸을 나무들이 둘러싼 산에서 회복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왜냐하면 귀촌을 하고 난 뒤에는 이렇다 할 가족 여행을 간 적이 없었다. 우리가 애용했던 캠핑 장비들은 마당에 놓였다. 더 이상 이동할 일이 없는 것처럼 바닥에 깊게 박혀서 빠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타프, 텐트, 의자, 테이블, 램프들은 마당을 수놓았다.



  내가 언제 물어본 적이 있다. 우리 이제 캠핑 안 가? 아빠의 대답은 손바닥을 펼쳐 마당을 가리키곤 여기가 캠핑장인데 왜 캠핑을 가냐고 웃으며 내게 말했다. 여행의 목적이 한적한 시골에서의 힐링이었기 때문에 이미 한적한 시골에서의 힐링을 잔뜩 하고 있는 우리는 굳이 시골로 여행을 갈 필요가 없었다. 그것이라 말로 사서 고생을 하는 일이고 필요 없는 소비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여유와 기회가 없는 것도 한몫했다. 일주일에 두 번의 휴일이 보장된 도시인과는 달리 시골인은 휴일이 보장되지 못한다. 밭일이라는 것이 해도 해도 끝이 없고, 일감이 줄어들지 않아서 도저히 쉴 수가 없었다. 봄에는 파종을 해야 한다. 밭을 가다듬고 농사를 시작하기에 바쁘다. 여름에는 악마같이 자라는 잡초를 뽑고 해충과의 사투를 벌이며 자라는 농작물을 어르고 달래야 하기 때문에 바쁘다. 가을에는 그렇게 고생해서 키운 농작물을 수확해야 하기 때문에 바쁘다. 네 번의 계절 중에 세 번의 계절이 바쁘다.



  심지어 겨울도 한가한 것은 아니다. 다음 해 농사를 준비해야 하고 눈이 내린다. 남쪽임에도 고원에 위치한 우리 집은 눈이 많이 내린다. 눈이 많이 내리고 길이 얼면 차를 마을 밖으로 뺄 수가 없어 고스란히 고립된다. 그리고 우리 집에는 사람 말고도 돌보아야 할 동물이 있다. 봄부터 가을까지는 적당히 물과 먹을 것을 잔뜩 주면 며칠은 버틸 수 있지만 1시간도 안되어서 물과 먹이를 포함한 모든 것이 얼어버리는 겨울에는 방도가 없다. 닭과 개를 한겨울에 혼자 둘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리고 겨울에는 변수가 많다. 앞서 말한 동물들의 건강을 돌보아야 한다. 눈이 내리면 집에 들어갈 수가 없어 꾸준히 눈을 치워야 한다. 나무 보일러의 불이 꺼지는 것은 곤란하다. 한파가 닥쳐서 수도가 얼면 더욱 곤란해진다. 결국 신경 써야 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봄과 여름, 가을은 애초에 바빠서 여행을 생각할 수가 없고 겨우 시간이 나는 겨울은 정작 집을 비울 수가 없어 여행을 가지 못한다. 겨울에 여행을 가려면 셋 중에 한 명은 집에 남아야 한다. 고작 세 사람뿐인 가족 구성원에서 한 명이 빠지면 그게 어디 가족여행인가.


  

  이런저런 이유들로 가족여행은 한 동안 이뤄지지 못했다. 물론 모든 귀촌 가정이 이렇지는 않을 것이다. 수상할 정도로 농사에 진심인 엄마 아빠와, 동물들의 존재, 우리 집의 특성이 모두 겹쳐져 나온 결과다. 그리고 사실 아빠의 말마따나 여기가 캠핑장인데 굳이 캠핑을 따로 가는 것도 웃기다. 숯불 피워 고기 구워 먹고, 풀과 나무가 그득한 곳에서 잠을 청할 수 있는데 바리바리 짐을 싸들고 여행이라니.



  하지만 아쉬운 것은 사실이다. 주변 친구들이 가족여행을 간다는 소리를 들으면 기분이 묘하다. 도시인이던 시절, 가족 여행이 너무나도 당연해서 여행을 가지 않는 친구들이 신기했다면 시골인이 되면서 가족 여행을 가는 친구들이 신기하게 느껴진다. 집을 떠난다는 설렘과 집이 아닌 공간이 주는 감각은 분명 여행만이 줄 수 있는 선물이다. 익숙한 곳을 떠나 낯선 곳으로의 이동은 꼭 살고 있는 곳과 비슷한 풍경이라고 해서 그 의미를 잃어버리는 것은 아니니까.



  나는 누군가의 챙김을 필요로 하고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나이에만 가족 여행을 다녔다. 그래서 나는 항상 여행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이 정해져 있었다. 떼를 쓰지 않고 얌전히 여행길에 몸을 싣는 것. 그것뿐이었다. 하지만 이제 내 몸 정도는 건사할 수 있고 여행의 골자를 짤 수 있는 지금, 친구들이 부모님을 모시고 여행을 갔다고 하면 조금은 부럽다. 내가 부모님을 챙길 수 있는 나이가 되었음에도 여행과 멀어진 작금의 상황이 아쉽다. 물론 내가 적극적으로 여행을 추진하지 않은 탓이 가장 크지만 내가 여행을 계획해도 엄마와 아빠가 선뜻 나를 따라올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소원이 생겼다. 30살이 되기 전, 반드시 가족 여행을 하리라. 겨울에 우리가 좋아하던 강원도로 가고 싶다. 얼마가 들고, 시간이 얼마나 소요되는지는 상관없다. 엄마와 아빠는 옛날에 캠핑하러 갈 때마다 점심으로 먹었던 막국수를 가끔 그리워하곤 한다. 메밀향이 담뿍 담겨있고 적당한 양념으로 깔끔하게 넘어갔던 노포의 막국수를 기억한다. 차의 뒷자리가 아니라, 앞자리에 앉아서 엄마와 아빠를 데리고 여행을 가는 것. 낯선 풍경에서 잠들고 막국수를 먹는 것. 사라진 우리 가족의 여행 DNA를 다시 일깨워 주는 것. 그게 내 소원이다. 여행이 가고 싶다. 가족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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