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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식작가 Oct 21. 2022

시골에 깊은 애도를 표합니다

고령화를 피부로 체감할 수 있는 시골의 운명 

  나라가 늙어가고 있다고 한다. 태어나는 아이가 없어 나라가 늙어가고 있단다. 나는 이것을 고령화 사회라고 카랑카랑한 목소리를 가졌던 초등학교 담임선생님에게 배웠다. 하지만 정작 나는 그것을 배울 때, 고령화 사회를 피부로 체감할 수 없었다. 한 반에 30명이 넘는 학생이 꽉꽉 들어찬, 학령인구가 넘쳐나는 마지막 세대였던 나는 절대로 알 수 없었다. 나라가 늙어가고 있다는 것은 푸르른 새싹이 넘쳐나는 학교에서는 참으로 배우기 어려운 개념이었다. 하지만 시골로 이사를 간 뒤, 텅 빈 교실이 익숙해지고 아이들보다는 어르신들을 더 많이 마주치면서 나는 비로소 고령화 사회를 배울 수 있었다.   



  할머니는 몇 살부터가 할머니일까. 나의 외할머니는 이른 결혼을 해서 엄마를 낳았고, 우리 엄마도 이른 나이에 결혼에 나를 낳았기에 외할머니는 젊은 나이에 할머니가 되었다. 우리 가족 구성원 중에 할머니는, 그리고 할아버지는 자식이 자식을 낳은 그 순간부터 조부모가 된다. 하지만 생판 모르는 남은 다소 젊어 보이는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무어라 불러야할까. 아줌마와 아저씨라 부르기에는 조금 나이가 들어보이는 그 순간이 할머니와 할아버지라면 시골에서는 가혹하기 그지 없는 것이다.  


 

  환갑. 60살은 할머니일까? 적어도 내 기준에서는 그렇다였다. 60년을 살아온 것을 기념하기 위해 환갑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가. 나에게 앞자리 숫자 6은 당사자가 아줌마인지 할머니인지를 결정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무슨 소리, 시골에서 환갑은 팔팔한 아줌마다. 농담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마을에서 60대 여성들을 부르는 호칭은 공식적으로 아줌마다. 당연히 60대 남성을 부르는 호칭도 아저씨다. 이사를 간 첫 해, 나는 물론이고 엄마도 아빠도 그 사실에 모두 놀랐다. 마을 사람들은 자꾸만 옆 밭의 아줌마라고 부르는데 우리는 암만 눈을 씻고 찾아봐도 옆 밭에는 아줌마가 없다. 분명 꼬부랑 할머니 한 분이 밭일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시골에서 60대는 젊은 편이었다. 유출은 많고, 유입이 적은 시골의 특성상 평균 나이는 자꾸만 높아져갔고 60이라는 나이는 평균적으로 아줌마에 속하는 편이었다. 실제로 대부분 60대 아주머니들은 거동에 불편함이 없었고, 여전히 쌩썡하게 밭일을 했으며 마을의 대소사에 관여했다. 마을회관이라는 커뮤니티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주체들 역시 60대였다. 사실상 청년회장을 맡아도 무리가 없는 수준이었고 모두가 인정하는 젊은이였다. 그들 스스로도 할머니나 할아버지라고 불리면 불쾌한 기색을 내비쳤다.  


 

  이런 상황 속, 우리집은 마을에서 굉장히 특이한 집이었다. 지금은 무슨 바람이 불어 인근 도시에서 우리처럼 귀농/귀촌을 한 도시인들이 마을에 몇 가구 들어섰다. 물론 다들 장성한 자식을 독립시키고 여생을 편안히 보내기 위해 내려온 50~60대였다. 우리집은 이런 다른 귀촌/귀농 가구가 들어서기 전까지 꽤 오랜 시간동안 마을에서 유일한 귀촌 가구였다. 마을의 평균 연령을 대폭 낮춰 준 공신이었고 오랜만에 유입된 '젊은' 인구였다. 심지어 젊다는 표현도 아까운, '어린' 인구였다.   



  사회 전반에 걸친 고령화로 인해 아무리 국민 연금의 수령 나이가 점점 늦춰지고 있다지만 보통 60대는 지금까지의 인생을 한번 정리하고 새로운 2막을 살아가는 나이대다. 왕성한 사회활동과 경제활동과는 사뭇 거리가 있는 연령대로 보통 은퇴를 생각하는 나이다. 그런 60대가 시골에서는 시골 사회를 떠받치고 있는 청년 인구라는 것은 이미 고령화가 심각하게 진행되었다는 뜻이다.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버린 것일 수도 있겠다.  



  전체 인구 2만의 아주 작은 군, 그곳에서도 자그마한 마을인 우리 마을. 고향 친구들과 종종 우스갯소리로 몇 십년 안에 우리 마을, 더 나아가 우리 지역이 사라지지 않겠냐는 씁쓸한 소리를 하곤 한다. 이것 우스갯소리가 아니다. 정말 얼마 가지 않아 지도상에서 우리 군의 행정구역이 근처 시 단위 도시에 편입될지도 모른다. 서울의 좀 규모 있는 아파트 단지의 인구만도 못한 지역이라니. 사람이 없어진다. 유입인구가 극도로 적다. 반면 유출되는 인구는 많다. 나를 비롯한 내 고등학교 친구들의 대부분은 고향을 떠나 다른 곳에서 대학 생활을 하고 있고 졸업을 하고서도 고향으로 돌아올 것 같지는 않다. 고향에 남은 친구들마저도 얼마 안 가 이탈을 할 예정이다.   



  종종 집에 가면 마을 회관 앞에 관광버스가 세워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마을 사람들이 봄날맞이 나들이를 위한 관광버스면 참 좋겠지만 흰색 바탕의 버스 앞 유리에는 "弔"가 쓰인 종이가 붙어있다. 그리고 마을에서 방송이 울려퍼진다. 아무개가 돌아가셨으니 장례에 참여하시고자 하는 마을사람은 장례버스에 탑승을 바란다는 방송이다. 일년에 한 번 정도 있을법 했던 장례식은 날이 갈수록 그 횟수가 많아졌다. 연로하신 어르신들이 마을에서 떠나고 있었다. 빈집이 늘어갔고 마을에는 괜한 서늘함이 감돌았다. 


  

  걸어서 통학을 했던 중학교 시절, 집으로 가는 마지막 사거리 코너에 있는 집에는 거동이 불편하신 참전용사 어르신이 살고 계셨다. 굉장히 풍채가 좋으셨고 날이 좋은 날에는 한 손에 지팡이를 쥔 채, 항상 마당 의자에 태산 같이 앉아 계셨다. 내가 인사를 하면 늘 반갑게 인사를 받아주셨고 항상 아는 먼저 아는체 해주셨다. 말씨가 또렷하지는 않았지만 내실이 있는 목소리로 근엄하게 인사를 해주셨다. 그러나 이제 그 의자는 마당에 덩그러니 놓여있다. 먼지가 제법 쌓여있다. 오랜만에 걸어서 집을 간 적이 있는데 햇살이 좋은 날이었지만 할아버지는 나오지 않으셨다. 몸 상태가 좋지 않아 자식들이 모시고 갔다는 소식을 들은 것은 시간이 꽤 흐르고 나서였다.  



  중학교 통학 버스를 타는 자그마한 공터가 마을에 있었다. 걸어서 15분이면 가는 학교지만 겨울날에는 날이 제법 추워 통학 버스를 타곤했다. 버스가 서는 작은 공터에는 컨테이너 하나가 붙어 있었는데 그곳에는 할머니 한 분이 살고 계셨다. 온갖 기구한 사연으로 컨테이너에 기거하고 계셨고 그 컨테이너 문 옆 의자에 가끔 앉아계셨는데 종종 인사를 주고 받았던 기억이 있다. 겨울에 유독 더 자주 앉아계셨는데 그늘진 컨테이너 안에 있는 것보다 햇살이 더 따스해서 밖에 앉아계셨던 것 같다. 그래서 겨울에 공터로 향하면 할머니가 컨테이너 옆 의자에 앉아계시는지 고개를 돌리는 것이 루틴처럼 자리 잡았다. 그리고 시간이 꽤 흐른 지금에도 나는 가끔 그 공터를 지날 때면 고개를 돌려 컨테이너를 확인하는데 할머니가 앉아있는 모습을 영영 볼 수 없었다. 늘 서늘해보이는 컨테이너였지만 인기척이 없는 컨테이너는 유독 더 한기가 느껴져 보였다. 


  

  이런 식이다. 내가 시골 집에 살면서 시골 학교에서 집까지 통학을 하던 시절에 인사르 주고 받던 어르신들이 보이지 않으면 대부분은 유명을 달리하신 경우다. 마을은 늙어가는 것을 넘어서 급속도로 사멸하고 있었다. 빈집이 늘었고, 빈집은 관리가 되지 않아 을씨년스러웠다. 온기가 점점 죽어가서 시한부를 선고받은 것처럼 고요하고 한산해졌다. 다행히 외부에서 귀농, 귀촌 가구들이 종종 들어왔지만 그들도 우리 가족과 같이 시골으 느끼기 위해 들어온만큼 마을 중심부가 아닌 마을 외곽에 자리를 잡았다. 결국 어르신들이 떠난 마을 중심부는 텅 비어갔다.   



   사람이 없다. 없어도 너무 없다. 이것은 비단 우리 마을뿐만이 아닐 것이다. 전국의 모든 시골이 앓고 있는 열병이라 생각한다. 고령화 사회를 몸으로 체감하기에 이것보다 좋은 교보재가 없다. 갈수록 황폐해져가는 마을 보며 시골의 멀지 않은 미래를 생각해본다. 썩 좋은 쪽으로 생각이 뻗지는 않는다. 내 소년기를 보낸 시골이, 내 새로운 고향이, 내려갈 시골마을이 사라지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울적한 일이다. 사람이 모여 살았던 마을이 사라진다는 것은 그 이야기들이 모두 역사가 되어 버린다는 것. 추억해야만 떠오를 수 있는 것. 시골은 위독하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금방이라도 끊어질 듯한 숨을 거칠에 몰아쉰다. 늙어져버린 시골에, 고난해질 시골에 미리 깊은 애도를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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