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진 신화를 써내려간 포켓몬빵과 띠부띠부씰
어린 시절의 나는 스마트폰은 고사하고 컴퓨터도 쉽게 만지기 힘들었기에 놀기 위해서는 놀이터로 나가야 했다. 노는 방법은 셀 수 없이 많았고 시대에 따라 유행이 변했다. 나는 무언가를 수집하고 모아서 뽐내거나 자랑하는 것이 유행인 시대에 유년 시절을 보냈다. 수집 대상은 카드이기도 했고 딱지이기도 했으며 스티커가 되기도 했다. 딱지는 메이플스토리 딱지가, 카드는 유희왕 카드가 최고였다. 그리고 스티커는 포켓몬 띠부띠부씰이 독보적이었다. 한국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가장 성공한 만화 중 하나인 포켓몬스터. 귀여운 외모와 독창적인 능력들, 매력적인 소년 만화 스토리는 각국의 어린이들을 홀리기에 차고 넘쳤다. 티비 앞에 앉아서 지우와 피카츄의 성장기를 눈이 빠져라 지켜보았다. 그런 아이들은 보는 것으로 만족하지 못했다. 나도 지우처럼 멋지고 귀여운 나만의 포켓몬을 가지고 싶었다. 간절히 빌면 이루어진다고 아이들에 눈에는 포켓몬 그림이 그려진 빵이 눈에 들어왔다. 그 속에는 포켓몬 스티커가 들어있었다. 이 스티커를 가진다면 나도 내 포켓몬을 가진 것은 아닐까.
포켓몬 그림이 그려진 빵과 그림 속 포켓몬과 얼추 비슷한 콘셉트의 빵이 들어 있는 봉지 속에는 스티커가 함께 동봉되어 있었다. 어떤 종류의 포켓몬이 그려진 스티커가 들어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이 자그마한 랜덤의 스티커는 아이들로 하여금 수집욕을 불태우게 했다. 옆자리 친구보다 더 많은 종류의 스티커를 모으고 싶었다. 소위 말하는 희귀 포켓몬의 스티커를 더 많이 가지고 싶었다. 스티커가 뭐라고 그렇게 가지고 싶었을까. 포켓몬빵은 어린이들의 경쟁심에 불을 붙였고 그것이 원동력이 되어 빵은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우리 모두가 포켓몬빵과 띠부띠부씰에 미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의 추억 속에 묻힌 지 오래다. 우리는 모두 어른으로 자랐고, 포켓몬은 기억의 구석으로 자리를 옮겼다. 하지만 그 추억이 다시금 부활했다. 포켓몬빵이 다시 나왔더랬다. 추억을 건드리자 그때의 기억이 마음 속에서 와르르 쏟아진다. 스티커 하나에 기뻐하던 내가 보인다. 두근거리며 빵을 뜯던 내가 있다. 피카츄가 나에게 안녕하고 다시 인사를 건넨다.
띠부띠부씰. '띠었다 붙였다 띠었다 붙였다'의 줄임말로 여기저기 아무 곳에나 척척 잘 붙고 깔끔하게 뗄 수 있는 스티커를 말했다. 하지만 이 스티커는 실제로 붙이고 꾸미는 용도가 아니다. 스티커라는 도구의 기능이라기보다는 흠집 하나 나지 않게 귀하게 보관되어 그 자체로 가치를 지녔다. 사용도 하지 못하는 스티커인데 수집의 대상이 되었다. 스티커를 얻기 위해 빵을 사서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스티커를 열어보고, 친구와 비교하거나 교환하고, 나보다 더 좋은 것을 가진 친구를 시샘했다. 띠부띠부씰 컬렉션을 모으는 것은 유행이었다. 만화 속 나오는 포켓몬스터를 종류별로 모으는 것은 놀이이자, 유희였다. 그래서 스티커라기보다는 일종의 수집품처럼 여겨졌다. 더 많은 스티커, 더 좋은 스티커를 위해 빵은 날개 돋친 듯 팔렸고 사람들은 빵보다 스티커에 집중했다. 포켓몬빵은 아이들을 유혹하는 마성의 단어인 뽑기와 수집을 모두 붙여놓은 제품으로 어른들이 입을 모아 상술이라 말했다. 하지만 그것은 극찬이었다. 상술임에도 아이들이 자꾸만 구매하니 미칠듯한 노릇이었던 부모님들이 포켓몬빵을 대상으로 한 극찬.
띠부띠부씰은 왜 빵 속에 들어있었을까. 포켓몬빵 이전에도 과자나 스낵류에 즐길거리를 넣어 놓은 것은 분명 존재했다. 치토스의 장난감이 그러했고 껌에 들어있는 미니 만화나 판박이 스티커가 그러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제품 판매의 보조역할에 그쳤고 주객이 전도되는 일 따위는 없었다. 아마도 포켓몬 빵을 기획할 때 달콤하고 자극적인 빵에 인기 만화였던 포켓몬 관련 즐길거리를 넣어놓으면 타깃 고객인 어린이들을 유인할 수 있었을 것이라 생각했다. 예상보다 유인은 더 잘 됐고 유인을 넘어서 주객이 전도되는 사태가 벌어졌을 뿐이다. 빵이 인기라기보다는 포켓몬스터의 인기가 하늘을 찔렀기 때문이다. 결국 '빵을 샀는데 띠부띠부씰이 들어있네'가 아닌 '띠부띠부씰을 샀는데 빵이 들어있네'가 되어버렸다. 빵보다는 띠부띠부씰에 무게를 둔 구매가 성행했다. 포켓몬빵이 빵이 아니라 띠부띠부씰로만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은 띠부띠부씰의 인기를 실감케 했으나 결론적으로는 포켓몬빵의 몰락을 초래했다.
최근 포켓몬빵이 부활했다. 하지만 부활이라는 것은 죽음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 인기가 하늘을 찌르던 포켓몬빵이 역사 속으로 사라졌던 시기가 있었다. 몇 번의 단종을 겪었고 제조사 변경과 함께 몇 차례 부활했다. 하지만 초기의 인기를 되살릴 수가 없었다. 우선 유행이라는 것은 너무 일시적이고 어린이들 사이에서의 유행은 그 수명이 더욱 짧기 마련이다. 불꽃같은 인기를 누리다 사그라졌다. 빵 자체가 맛이 있었더라면 빵을 먹기 위해 찾는 소비자들이 있었을 텐데 사실 포켓몬빵의 본체는 띠부띠부씰이라 할만큼 빵 맛은 뒷전이었다. 아이들이 스티커만 가지고 빵은 길거리에 마구 버리는 탓에 뉴스에도 종종 나왔다. 나도 아무리 기억을 뒤져봐도 빵 맛에 대한 기억은 없다. 그냥 적당히 달고 퍽퍽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건 중요치 않았다. 빵 맛보다는 내가 산 빵에서 희귀한 띠부띠부씰이 나오느냐가 더 중요했다. 그러나 아이들은 금세 띠부띠부씰에 시들해졌고 다른 흥밋거리를 찾아 거리를 배회했다.
단종과 부활을 반복하면서 포켓몬빵은 꾸준히 팔렸지만 이전의 영광을 누리지는 못했다. 띠부띠부씰이라는 소재에 쉽게 질렸고 포켓몬스터가 이전만큼 영향력 있는 만화가 아니었다. 포켓몬빵은 만화의 인기와 함께 상승했던 터라 만화가 종영되고 다음 시즌의 인기가 이전보다 못하자 포켓몬빵의 인기도 당연히 떨어졌다. 사실 빵 자체의 맛보다 띠부띠부씰의 인기에 의존했던 만큼 짧은 수명은 예견되어 있었다. 음식이라기보다는 장난감으로 보면 되겠다.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장난감은 유행에 민감한 만큼 포켓몬빵도 그 운명을 같이 했다. 그렇게 포켓몬빵은 추억의 앨범에서나 찾아볼 수 있었다. 간혹 집 정리를 하다가 어린 시절 용돈 모아 열심히 수집하던 띠부띠부씰 스티커 북을 보면 떠오르는 정도였다. 하지만 웅크리고 있던 포켓몬빵은 최근 화려한 부활을 알렸다. 과거의 영광을 그대로 재현하는 데 성공했다.
오랜만에 포켓몬빵의 원조인 삼립에서 재출시된 포켓몬빵은 완벽히 부활에 성공했다. 편의점을 유통 체인으로 사용했고 매진의 매진을 반복하면서 편의점들은 한동안 신음했다. 너무 인기가 많아서. 웃돈을 주고 포켓몬빵을 사가는 사람들이 생겼고 점주와 아르바이트생의 빼돌리기 논란이 터지는 등 너도나도 추억의 향수를 맡고 싶어 했다. 과거와 유사한 콘셉트로 출시되었지만 타깃은 어린이가 아니었다. 20년 전, 어린이었던 어른들이 타깃이었다. 코 묻은 용돈을 모아 겨우겨우 빵 하나 사던 아이들은 이제 경제력을 갖춘 어엿한 성인이 되었고 포켓몬빵을 박스 체 사기에 이른다. 경제력은 변했지만 띠부띠부씰을 수집하고 싶어 하는 욕구는 변함이 없었다. 요즘 아이들은 포켓몬이 뭔지도 잘 모른다. 우리와 같이 지우와 피카츄에 울고 웃던 세대들이 주요 고객이었다. 우리는 돈이 있다. 소확행이 무엇인지 알고, 레트로와 뉴트로의 시대에 살며 여전히 만화를 좋아한다. 우리는 모두가 키덜트고 어른이다.
덕후. 사실 이건 국내에서 멸칭에 가까운 말이었다. 지금이야 특정 분야에 열정을 보이는 사람 정도로 사용되어 부정적인 느낌을 많이 벗었다지만 과거에는 애니메이션이나 만화를 좋아하는 음습하고 음침한 사람들을 지칭하는 말이었다. 하지만 각종 미디어에서 덕후 기질을 가진 인플루언서들이 덕후의 긍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유튜브 콘텐츠들이 그들의 인식을 바꿔주었다. 일본 애니메이션을 접할 기회가 더 많아졌고 성인이 되고도 만화를 보는 것에 거리낌이 없어졌다. 우리 모두 가슴 속에 품고 있던 덕후 기질을 마음껏 분출할 수 있었고 코흘리개 시절에 보던 만화를 추억하는 것을 넘어 다시 소비했다. 재출시된 포켓몬빵은 이런 시대에 날개 돋친 듯 팔렸다. 어른이 되어서 만화나 스티커나 만지작 거리는 한심한 사람이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것을 정당한 비용을 지불하고 누리는 당당한 사람이 되는 세상이었다.
빵 자체에 대한 개선도 많이 이뤄졌다. 20년 전, 최초의 포켓몬빵이 언론의 도마에 올랐던 것은 떨어져도 너무나 떨어지는 빵 맛이었다. 하지만 삼립은 그 20년의 세월을 허투루 보내지 않았고 과거의 실수를 답습하지 않는 현명함을 보였다. 이제 편의점에서 파는 다른 빵에 뒤지지 않는 맛을 보여줬다. 띠부띠부씰 말고도 구매할 이유가 하나 더 생긴 것이다. 다양한 맛의 빵이 출시되었고 각각의 맛도 평균 이상을 보여주며 호평을 받았다. 나도 최근에 포켓몬 빵을 구해서 먹어볼 수 있었는데 생각보다 맛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띠부띠부씰을 뜯는 긴장과 설렘을 조금이나마 다시 느껴볼 수 있었다. 물론 이름도 모르는 포켓몬이 나와서 실망했지만 그 감성을 다시 느껴볼 수 있다는 것이 그저 신기할 따름이었다. 아마 포켓몬빵을 구매하는 대다수가 이런 향수를 다시 느끼고 싶어서라고 생각한다. 여러모로 삼립의 전략은 제대로 먹힌 셈이다.
원래 제품을 구성하는 것 이외의 것을 더해서 파는 것. 단순하고 흔한 마케팅 기법이다. 식품이나 외식뿐만 아니라 여타 제조업에서 아주 손쉽게 찾아볼 수 있다. 햄버거 프랜차이즈에서 장난감을 같이 주는 어린이 세트를 파는 것. 껌 안에 판박이 스티커를 넣어놓는 것. 모두 최근에 굿즈라고 불리는 것들이다. 허니버터칩이 보물 취급을 받았던 때, 각종 제품에 허니버터칩을 붙여서 소비자를 유혹한 것. 작금의 빵에 띠부띠부씰을 넣은 것. 모두 비슷한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마케팅에 잘 걸리는 것은 지금까지 주로 어린이다. 물론 마트에서 이런 플러스 상품들이 진열되어 있으면 장난감이 아니더라도 생필품이나 라면을 준다는 유혹에 어른들도 쉽게 넘어간다. 하지만 대게 어른들은 생필품에 현혹된다. 아이들은 장난감과 재밌는 것에 끌리기 마련이다. 이런 굿즈 상품이 더해지면 죽도 밥도 아닌 품질이 나오는 것을 경험상 체득하지 못하고 장난감에 쉽게 현혹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마케팅은 보통 10대 언저리에 있는 유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지만 재출시된 포켓몬 빵과 최근 나온 캐릭터 굿즈 제품들은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것을 증명했다.
하고 많은 것 중에 왜 하필 음식이었을까? 스티커만 팔 수도 있었고 다른 장남감도 많았을 텐데 왜 식품에 굿즈를 끼워 넣었을까. 아마 음식이 가지는 특성 때문이지 않았을까. 우리는 장난감과 즐길거리 없이는 조금 지루할지라도 살 수 있다. 하지만 음식 없이는 살 수 없다. 이런 인간의 원초적인 욕구를 자극한 것이다. 주린 배를 채우는 김에 즐길거리가 더해지면 더 좋으니까. 우린 매일 배가 고프니까 매일 사 먹을 수 있다. 일상 속에 더 잘 침투할 수 있다. 그리고 부담이 없다. 태초의 이 마케팅의 대상이 된 아이들은 돈이 없었다. 만 원짜리 포켓몬 인형보다는 오백 원이면 살 수 있는 빵과 띠부띠부씰을 주는 포켓몬빵이 더 손쉽게 구할 수 있다. 없는 살림에 먹을 것과 스티커 등의 장난감을 한 번에 주는 것이 어린이들 생각에 더 가성비가 있었을 것이다. 이것은 어린이들이 자라 성인이 되고도 변함이 없었다. 헤비하게 즐기기보다는 라이트하게 즐기고 싶을 때 이만한 것이 없다. 1,000~2,000원짜리는 사면서 낭비와 과소비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팍팍한 일상에 나를 위한 하루의 소박한 소비라고 생각한다. 배도 채우는 김에 굿즈도 사는 내가 현명한 소비자라고 생각되게끔 유도한다.
포켓몬빵의 성공 이후, 메이플스토리와 짱구 등등 지금의 20~30대가 어렸을 적에 유행하던 만화나 게임들과 콜라보를 한 제품들이 우후죽순으로 나왔다. 대부분 스티커와 미니 피규어 같이 작은 굿즈 상품들이 들어있었다. 포켓몬빵과 같은 매진 사태를 불러일으키지는 않았지만 과거에 이름을 날렸던 만화나 게임들이었기 때문에 인기가 꽤나 좋았다. 물론 포켓몬빵도 한창 때에 비하면 그 인기가 사그라들었고 다른 캐릭터 굿즈 상품들도 롱런하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아무래도 같이 묶여있는 굿즈의 인기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 보니 전통적인 식품들과는 결이 다르니까. 하지만 단기간 높은 이익을 거둘 수 있고 훌륭한 미끼 상품이 된다. 포켓몬빵을 포함한 굿즈 상품들 대부분이 가장 세련된 유통 채널인 편의점에서 판매된다. 편의점 입장에서는 상품 하나만으로 소비자를 끌어들일 수 있기 때문에 긍정적인 점이 많다. 또한 제조사 입장에서도 자신들의 브랜드에 대한 친숙도를 올릴 수 있다. 이렇게 단기적인 측면에서 캐릭터 굿즈가 묶여있는 제품은 장점이 많다. 게다가 제품을 잘 가다듬고 꾸준함을 유지한다면 단기가 아닌 장기 제품으로 전환될 수도 있다. 세상에 키덜트는 많고 어른이들은 널렸으니까.
삼립의 포켓몬빵 성공을 보고 너 나 할 것 없이 띠부띠부씰 전략을 취했고 의외로 먹혀들었다. 과거에는 단순한 상술 취급을 받아 손가락질을 받았던 마케팅 기법이 이제는 알고도 당해주는 전략으로 변모했다. 왜냐하면 띠부띠부씰이 귀여우니까. 수집해서 소소한 행복을 누리고 싶고 인스타에도 올리고 싶으니까. 그만큼 시대가 변했다는 뜻이다. 과거처럼 단순히 스티커나 굿즈에만 치중하지 않고 식품의 질도 함께 올려서 사 먹어도 아깝지 않은 캐릭터 굿즈 식품이 나온다면 이 시장도 상당히 잠재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당장 나만해도 몇 번 사 먹었다. 추억에 이끌려 구매해서 의외의 맛에 놀라 몇 번을 더 사 먹은 것이다. 포켓몬빵에서 피카츄가 나오기를 기대했던 우리는 그대로 어른이 되었다. 빵 정도야 대수롭지 않게 살 수 있는 경제력을 갖춘 어른이 되었다. 누가 우리에게 잔소리를 하겠는가. 내 돈으로 내가 사 먹고 만족하겠다는데. 누군가는 추억을 팔아 얼마나 성공할 수 있겠냐고 하겠지만 단순히 추억만 파는 것은 아니다. 2D 세상에 대한 거부감이 많이 줄어든 시대에서 현재를 팔 수도 있다. 포켓몬이나 짱구처럼 인기 있는 만화가 언제든 등장해서 20~30대의 마음을 울릴 수도 있는 노릇이다.
포켓몬빵의 아버지 격인 삼립은 제빵 기업으로 시작해 각종 외식업에 손을 뻗치면서 거물로 성장했지만 굴곡진 역사 속에서 삼립을 일으켜 세운 것은 결국 빵이었다. 그중에서도 포켓몬빵은 과거에 불꽃처럼 피어올랐다 사라졌지만 제 몫을 톡톡히 해냈다. 삼립이라는 브랜드의 재정비 기회를 사사했고 결국 현재로 이어지는 역사를 만들었다. 포켓몬빵 하나의 역할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포켓몬빵과 같은 굵직한 제품들이 모여 삼립을 만들었다. 하지만 결국 빵이 말썽이다. 빵 공장에서 파생된 논란이 삼립을 흔들고 있다. 나는 여전히 삼립이 건재하다고 생각한다. 문제와 논란이 터져도 당장 삼립을 대체할 기업은 국내에 없다. 포켓몬빵을 성공시킨 것을 보면 그 능력도 여전하다. 그러나 모두가 열광했던 포켓몬빵이 사라진 것처럼 영원한 것은 없다. 아직은 무너질 것 같지는 않지만 이런 치명적인 자충수를 몇 수 더 둔다면 이제는 위험하다. 단순히 묻어두고 넘어갈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 잘못을 가리고, 책임을 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