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가 마지막이 될 김장에 대하여
지난주에 우리집 김장이 끝났다. 그래서 나는 며칠 전 김장김치를 택배로 받을 수 있었다. 아직 덜 익었지만 확실히 우리집 김치였다. 매해 간은 조금씩 달라지지만 우리집 김치에는 우리집만의 맛이 담뿍 담겨있다. 내가 아주 어린 시절부터 김장은 아주 중요한 연례행사였고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진행되어 온, 사실상 명절이나 다름없었다. 김치를 너무나도 좋아하는 우리 가족에게 김장은 김치를 만드는 것,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기도 한다.
우리집은 하나부터 열까지 직접 한다. 배추를 소금에 절이는 것부터 시작한다. 내가 어렸을 때에도 김장을 하지 않는 친구들이 꽤 있었다. 절인 배추를 사서 하는 경우도 많았지만 포기김치를 주문하는 집도 많았다. 우리 집에서 김장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잘 알았던 나는 김장을 하지 않는 집들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그러나 시간은 흘렀고 나는 1인 가구가 되었다. 본가가 있는 시골은 여전히 김장이 흔한 풍경이지만 서울에서 김장이란 더욱 찾기 힘든 풍경이 되었다. 배추를 소금에 절이는 것은 고사하고 절인 배추를 사서 김장하는 집도 많이 없는 눈치였다. 사실 너무 당연했다. 손가락 하나로 모든 음식을 문 앞에 놓을 수 있는 시대에 배춧잎 한장한장 김치 속을 넣는 것은 너무 번거롭다.
근현대 대한민국을 제외하면 우리 조상들은 전통적으로 농업국가의 백성이었다. 온대 기후의 농업국가에서 겨울이란 너무나도 혹독했고 밭은 물론, 산에서도 먹을 것을 찾기 힘들었다. 그래서 김장은 절실했다. 겨우내 먹을 식량을 만드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대에는 다르다. 김치는 여전히 우리의 소울푸드지만 김치가 아니더라도 먹을 것이 넘쳐난다. 김장은 더 이상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 아니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중요성을 잃었다.
그럼에도 21세기 이전에는 정겨운 풍습을 지키려는 집이 많았던 것 같다. 물류와 유통망의 발전이 절정으로 치닫고,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의 대격변이 일어나면서 김장을 포함한 많은 풍경이 스러졌다. 우리는 더 바빠졌고 신경 써야 할 것들이 많았다. 굶주림에서 탈출한 지 고작 백 년도 안되었지만 갖은 이유들이 그 위에 얹어지면서 결국은 김장을 하지 않는 것으로 결론이 나고 있다.
그리고 사 먹는 김치의 맛이 이제 적정한 궤도에 올랐다. 수요가 늘어나면서 당연하게 시장의 규모가 커졌다. 우리가 잘 아는 종가집부터 비비고 등의 대기업 브랜드나 중소기업 제품까지도 확연히 맛이 올랐다. 어쩌면 우리의 입맛이 길들여진 것일지도 모른다. 나를 포함한 많은 청장년층 소비자들은 김치를 사 먹는 것에 큰 거부감이 없다. 어쩌면 완성품 김치 시장에서 가장 큰 걸림돌이었을 인식과 전통이 많이 옅어졌기 때문이다.
인터넷에서 돌았던 짤이었던 것 같다. 인도인에게 너네는 맨날 카레를 먹냐는 질문에 돌아온 너네는 맨날 김치 먹냐는 반문. 그에 대한 대답은 '응'. 맨날 김치 먹고, 모든 것으로 김치를 만들고, 모든 음식에 김치를 넣는다. 심지어는 김치 전용 냉장고도 있다. 김장 문화가 고꾸라지고 식습관이 서구화되었다지만 한국인에게서 숨길 수 없는, 숨기고 싶지도 않은 김치 사랑은 여전하다.
실제로 김치 산업은 꾸준히 성장 중이다. 물론 해외라는 새로운 시장도 포함되기 때문에 단순히 수치만으로 한국인의 김치사랑은 여전하다고 판단할 수는 없다. 하지만 모두들 체감한다. 모든 한식당에서 김치는 기본 밑반찬이고 하루에 한 번쯤은 김치를 먹는다는 사실을. 변한 것은 그 김치의 생산 주체가 점점 가정에서 기업으로 변모하고 있다는 것이다.
덕분에 김치 산업 내에서 가정에서 생산한 김장 김치와 기업에서 생산한 포장김치 간의 규모 차이는 날이 갈수록 줄어드는 추세다. 전체 김치 산업에서 주류는 가정에서 담근 김치다. 그러나 시장 전체에 타격을 줄만한 이슈가 나오지 않는 한, 점점 그 차이는 줄고 어느 시점에는 포장김치가 김치 산업에서 주류를 이루는 날이 올 것이다.
자취를 처음 시작했을 무렵, 나는 포장김치를 사 먹었다. 그냥 마트에 보이는 종가집, 비비고 같은 것들 말이다. 먹을만했으나 이걸 평생 먹는다고 생각하면 사실 조금 우울해졌다. 아삭하고, 시원하고, 적당히 매콤했으며 상큼했다. 그럼에도 무언가 채워지지 않는 한 가지가 있었다. 가볍다는 표현이 맞을까.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집김치를 택배로 받았다. 김치에 한없이 냉정하고 예민한 나, 혹은 우리.
그래서 소위 말하는 대기업 제품들의 맛이 상향됐다지만 어디까지나 먹을만한 수준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가끔은 중소브랜드에서 택배로 판매하는 김치가 의외로 맛이 좋을 때가 있다. 나도 집에서 김치를 받지 않았더라면 아마 가장 입에 맞는 포장 김치를 찾으라 여기저기를 배회하는 김치 유목민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맵고 짠맛이 살짝 부족하지만 시원하고 아삭한 맛이 최고인 내가 아는 그 김치에 가장 가까운 그것.
김치는 지역별로, 계절별로, 심지어는 집집마다 천차만별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결국 입맛은 통일되고 평균에 수렴하는 맛에 이끌리겠지만 지금이 어떤 시대인가? 맞춤화와 차별화의 시대다. 이번에 알게 되었는데 몇 해 전만 하더라도 종가집에서는 나만의 김치라는 상품을 선보였었다. 맵기, 젓갈의 정도, 짠맛 등을 소비자가 입맛대로 선택해서 배송받는 서비스였다. 굉장히 시대를 앞서간, 탁월한 전략이라 생각했는데 현재는 진행하는 않는 것으로 보인다. 수익성 관련 이유가 가장 크지 않을까 추측해 본다.
규모적인 면에서나, 브랜드 인지도에서나 종가집과 비비고는 포장김치 산업의 양대산맥이다. 그럼에도 중소브랜드도 만만치 않다. 우린 평생 김치를 먹었기에 어지간한 미식가 수준이다. 어떤 사람은 다른 집 김치를 못 먹는 사람도 있다. 반대로 말하면 입맛을 사로잡는다면 로열티가 강한 고객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대중의 입맛을 지향해야 하지만, 김치야 말로 가장 개인적인 입맛의 영역이기에 그 딜레마 극복이 가장 관건이지 않을까?
이제는 그 흐름을 막을 수 없을 것 같다. 김장을 하지 않던 가정에서 갑자기 매해 겨울에 김치를 담글 일이 얼마나 되겠는가. 항상 사 먹던 포장 김치가 그 집의 집김치로 자리하는 것이다. 전문화와 세분화의 물결이 김치에게까지 도달했다. 배추를 대신 절여주고, 재료를 다듬어 주는 것에서 결국은 완성된 김치를 대신 만들어 주는 것으로 발전했다. 김치를 소비하는 문화가 큰 틀에서 변화하지 않는다면 포장김치는 마트 매대에서 더 큰 공간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내가 미래에 내 가정을 꾸리거나, 혹은 1인 가구로 계속 살아가더라도 김장을 할까? 아닐 것 같다. 안다. 집김치가 정말 맛있다는 것을. 하지만 그만한 공간도, 시간도, 능력도 부족한데 김치를 담가 먹을까. 우리집 김장을 도우면서 그 과정을 지켜본 나는 섣불리 김장을 이어받아하겠다는 말이 쉽게 나오지가 않는다. 어쩌면 시간이 흘러 우리집에서 김치를 생산할 수 없는 날에, 나는 스무 살 때처럼 '맛있는 포장 김치' 검색하고 있을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