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식작가 Feb 01. 2024

밥 한 그릇 짓기

  집밥과 제가 하는 요리는 크나큰 차이들이 있지만 아무래도 밥이 그 분위기를 판가름하는 것 같습니다. 햇반을 즐겨 먹었던 저는 오랜만에 집을 가서 집밥을 먹으면 그 첫 입부터 무언가 다르다는 것을 알았죠. 요리법부터 식재료까지 모든 것이 다르지만 바로 앞에 놓인 눈앞의 밥 한 공기가 가장 다른 것 같습니다.


  햇반도 전자레인지에서 충분히 데우면 뜨거워집니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고 쌀알 하나하나가 눈에 박힙니다. 입에 넣으면 단맛도 꽤나 잘 나고요. 하지만 집에서 먹는 그것과는 사뭇 다릅니다. 집밥의 밥은 입을 꽉 차는 열기가 있습니다. 달큼함보다는 고소합니다. 투박하지만 거슬리지 않습니다. 내 입을 스치기만 하는 얕은 뜨거움이 아니라, 무언가 가득한 온기를 품고 있습니다.


  처음에 먹는 그 밥이 어쩌면 집밥과 제 요리를 갈라놓는 가장 큰 간극이 아닐까요. 과장일지 모르겠으나 집밥을 영원히 따라갈 수 없는 것은 그 때문이 아닐까요.


  최근에 전기밥솥을 들였습니다. 중고로 쓰던 것을 물려받은 것이지만 문제없이 작동했습니다. 자취 몇 년 만에 즉석밥 생활을 청산했습니다. 부랴부랴 전기밥솥으로 밥 짓는 법을 찾았습니다. 인터넷으로 백미를 샀습니다. 흰쌀밥은 건강에 좋지 않다기에 부랴부랴 잡곡도 함께 갔습니다. 성심껏 쌀을 씻었고, 진득하게 불렸습니다. 그리고 전기로 밥을 지었습니다.


  치익치익하는 소리가 집 안을 메웠습니다. 익숙한 듯, 어색하게 들리는 그 소리. 집이라는 안정과 평온이 깃드는 소리. 몇 년 만에 비로소 집으로 인정받은 그 소리가 퍼져나갔습니다. 소리는 냄새와 함께 찾아왔고 오래지 않아 밥솥의 기계음은 밥의 완성을 알렸습니다. 모락모락 김이 피는 그 장면을 이제 오래도록 볼 수 있었습니다.


  맛있었습니다. 번거롭고, 사실 진짜 경제적인 것인지 잘 모르겠는 밥이지만 맛이 있었습니다. 입을 채우다 못해 코로 뿜어져 나오는 밥 향이 제법이었습니다. 여전히 압력솥에서 지어진 집밥의 밥보다는 못하지만 나도 그럴싸한 밥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감각을 몸에 새기었습니다. 여러 사정으로 밥은 금방 냉장고로 들어갔지만 나는 언제든 밥의 기운을 재현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먹는 끼니를 총칭하는 말도 밥이고, 쌀로 지어진 우리의 주식도 밥입니다. 밥 한 끼 먹자의 밥도 밥이고, 공깃밥의 밥도 밥입니다. 파스타도 밥이고, 피자도 밥입니다. 먹는 밥에 다 들어갑니다. 평생을 먹을 끼니에 밥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을 보면 밥은 어지간히도 중요했던 모양입니다.


  쌀을 밥으로 만들 수 있게 된 나였지만, 한 그릇 밥이 생각보다 중요한 것을 알게 된 나였지만 그럼에도 저는 집밥에 닿지 못했습니다. 어쩌면 정말 평생을 집밥 재현의 꿈에 다다를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일지도 모릅니다. 맛이 있었지만 동시에 맛이 없었습니다. 나는 절대로 밥을 제대로 지을 수 없다는 것을 오히려 깨닫게 된 그 순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전 06화 핸드드립도 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